개미의 역습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2020.01.07
발리 응우라라이행 비행기에 타기 전
우리 삼 모녀는
간단한 요기를 하기로 했다.
사실 할머니 최여사와 나, 소피의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제주도, 세부, 괌에 이은 네 번째 해외여행.
공항 라운지를 알뜰이 이용하기 위해서
나는 현대 다이너스카드 가족카드를 만들어 놓았다.
해외여행이 꽃은 또 라운지니깐!
지금은 현대에서 단종시켜버린 다이너스카드는
연회비 3만 원에 가족 총 4명까지 라운지 이용이
무제한으로 가능해서 해외여행 좀 한다는
스사사 같은 카페에서는 꽤나 유명한 카드였다.
다이너스카드를 손에 쥐고,
우리 셋은 탑승구 근처의 hub 라운지로 들어갔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맥주 한잔부터 가득!
라운지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은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나만의 성스러운 의식이다.
최여사는 라운지에 먹을 게 없다며 투덜거리면서도
뷔페에 온양 두 접시를 채워왔다.
소피는 짜파게티를 몇입 먹더니 금세
아이패드의 영상에
시선이 빼앗겨버렸다.
맥주 한잔에 기분이 좋아진 내 입에서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왠지 이번 여행에서는 덜 싸울 것 같아!’
최여사 왈
‘니승질만 죽이면 만사 오케이여~’
흠,, 맞아,, 내가 성질이 좀 불같긴 하지;;
근데 내가 누구 닮았더라,,?
하면서 최여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흥~하고 고개를 돌리는 최여사…
라운지의 꿀 같은 시간이 지나고 비행기 탑승.
우리의 응우라라이행 전세기는 가루다항공!
풀 예약이 아니 자리가 꽤 비어있어서
우리는 2자리를 차지하며 꽤나 쾌적하게 자리를 잡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좌석 앞 모니터에서 영화도 고르고,
소피는 게임도 하고, 최여사는 드라마도 보기 시작했다.
뭔가 행복한 여행의 한 장면 같고만 하고 생각하던
내 생각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여행시간 총 7시간 중 절반 정도가 지났을 즈음부터였다.
갑자기 좌우로 출렁이듯 움직이는 비행기.
비행기는 쉽게 난기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조금 덜 흔들린다 싶다가 다시 흔들리고,
또 괜찮다 싶으면 또 흔들리고ㅠ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멀미는 나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장장 2-3시간의 멀미는 나를 떡처럼 납작 엎드려 있게 했다.
기내에서 꼭 즐기는 맥주 한잔도 못 마실 만큼 괴로웠던 망할 멀미.
나는 기내식도 거절하고 엎드려서 빨리 도착하기만을
엎드려서 기도하고 있었다.
딸 소피도 영 속이 좋지 않은지 기내식은 깨작깨작 손만 대더니
다시 좌석 앞 모니터에 빠져들었다.
최여사는 난기류 따위에는 흔들리지 않는
거친 60 평생을 살아온 부싼할모니!
우리가 거의 손도 안 댄 기내식이 아깝다며
2개를 열심히 먹었다.
이것이 공항을 도착해서 겪을
예상 못한 폭풍과 같은 사건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나는 그저 엎드려서, ‘와, 울 엄마 대단허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말렸어야 했는데..)
드디어 괴로운 7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부산에서 온 우리 삼대모녀
발리 응우라라이 공항에 도착.
발리 응우라라이 공항은 인도네시아에서
2번째로 번잡한 공항이다.
발리는 줄리아 로버츠 주연 영화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에서
기도를 담당한 곳이었을 정도로 전 세계인(특히 서양인)이 사랑하는 곳이다.
그런 발리의 응우라라이공항에는
전 세계 흑인 백인 동양인들이
입국을 위하여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비행기를 내리니 나의 멀미는 한결 좋아져서
다시 여행 가이드 모드 버튼을 on!
최여사와 소피, 입국 심사서를 잘 챙겨서
가장 짧은 입국심사 줄을 골랐다.
가장 짧다고는 하지만 이미 앞에는 5-10m 정도의
빨간 머리 노란 머리 까만 머리 입국객들이 복작복작였다.
특히 우리 삼모녀 앞에는 노란 머리 백인 젊은이들이
겨드랑이가 보이는 나시와
가벼운 차림으로 서있었다.
이걸 본 최여사의 입술이 씰룩씰룩했다.
평소 외국에서 입국할 때 자유분방한 외국인의 의상을 보면
최여사는 입술이 씰룩씰룩하며
‘저 사람들 좀 봐!’하는 표정으로 장난을 치곤 했다.
‘”아, 진짜! 이 할매가!!”
부산할매 최여사가 또 시작했구나 싶어서 화가 나기 시작한 나.
입술을 꽉 깨물고 ‘흐지마라구..그믄흐라구,,’
나지막하게 얘기했다.
그런데 최여사가 멈추질 않는다.
소리를 조금 높여서,
“아, 진짜!!! 왜 그래??!!” 하는 순간
최여사가 웩!! 하고 토했다.
.
.
.
오 마이 갓!
.
.
.
알고 봤더니 최여사는 장난을 친 것이 아니었다.ㅠ
멀미 나는 비행기에서 2-3개의 기내식을 먹은 데다가
정신없이 내려서 줄을 섰는데
앞에 바짝 붙어 선 서양인 특유의 암내에 위장의 어택이 온 것이었다.
(과한 기내식은 이렇게 위험합니다..)
이 와중에도 최여사는 손으로 토를 받아냈지만,
연달아 올라오는 구토에 어쩔 줄 몰라하고
나 역시 살짝 멘붕이 와서 우왕좌왕하는데
초1밖에 안된 소피가 자기 가방에서 비닐을 꺼내서 흔들었다.
“할모니!! 이거 써! 이거!!!”
평소 멀미가 심해서 소피의 가방에 비닐을 넣어두는데,
이 귀여운 천재 그걸 기억하고
할머니의 폭토에 가장 차분하게 대처한 것이다.
응우라라이 공항 바닥을 폭토로 장식할 뻔
우리의 위기상황을 (어글리 코리아 될 뻔ㅠ)
소피의 기지로 최여사는 다행히 비닐로 조용히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당시 주변에 사람은 많고 화장실이 전혀 안보였기에
소피의 비닐이 아니었으면
어디 유튜브에 찍혀서 나올 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여사는 기내식을 다소 개어내고 나서는
속이 좀 편해졌는지 표정이 편안해졌다.
입국심사를 잘 마무리하고 외국청년들과 멀어지고 나니
더 진정이 되었는지 최여사는 어휴 이제 살겠네라고 했다.
(엄마, 나도 살겠다 진짜ㅠ)
입국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짐을 찾고 나서
KLOOK 직원이 서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KLOOK직원이 능숙하게 USIM을
핸드폰에 갈아 끼우자
‘깨깨깨톡’이 울렸다.
걱정 많은 최여사의 남편, 내 아부지이자
소피 할아부지에게서 온 수많은 톡들.
“잘도착햇니? 연락 다오!!!”
할 말은 많지만 나중을 기약하고
걱정 마시라고 잘 도착했다는 답을 남기고,
우리는 KLOOL직원을 따라서 차량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발리에 오기 전 KLOOK이란 앱으로 USIM과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차량을 미리 예약해 두었는데,
이건 무척 잘한 일이었다.
참고로,
발리의 택시기사님들은 우리나라 기사님들보다
무척! 백 프로! 완전! 기가 쎄다ㅠ
(우리 기사님들은 돈을 퉁치는 정도라면,
여기 기사님들은 무언가 위협적이다.)
특히 공항에서 택시 요금도 따블로 퉁치기는 예사.
잠깐만! 발리 여행 TiP!
발리로 여행 오기 전에 필수로 깔아야 하는 앱은
그랩, 왓츠앱, KLOOK이다.
그랩(GRAB)은 동남아의 우버로 택시 호출뿐 아니라
음식 배달, 마트 장보기, 마사지 부르기까지 가능하다.
그리고 발리의 카카오톡인 왓츠앱으로 기사님, 마사지사님들이
연락을 주기 때문에 필수로 깔아 두는 것이 좋다.
KLOOK 역시 가성비 좋은 액티비티 예약에 좋기 때문에
발리 여행 가기 전 꼭 깔아 둘 것을 추천한다.
KLOOK 직원은 입구 옆에 주차해놓은
이동 차량으로 우리를 안내했고
삼모녀는 기분 좋게 쭐래쭐래 따라갔다.
벌써 발리 시간으로 자정에 가까운 시간.
숙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대에 부풀어
차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발리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발리는 인도네시아에서 드문 힌두교들이 모인 곳.
일명 신들의 섬이라고 불리는 섬이다.
지상낙원이라고 표현한 영화 덕에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우리의 3주간 발리 생활을 책임질 곳은
수도 사누르(SANUR)에 있었다.
발리에 3박 4일 여행 오시는 분들은
보통 관광지인 꾸따, 스미냑, 누사두아에
숙소를 잡지만
우리는 1달간 영어캠프도 보내고 생활을 할 예정이라
발리 현지인들이 주로 사는
수도 사누르(SANUR)에 숙소를 정하였다.
이번 발리 한 달 살기를 하기 전
많은 검색을 해보았는데,
발리 여행을 치면 꾸따, 스미냑, 누사두아의
맛집과 가야 할 곳에 대한 블로그 글은 넘쳐도
사누르(SANUR)에 대한 글은 상당히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삼대 모녀가
사누르(SANUR)도
얼마나 즐길 거리가 많은지 제대로
알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한마디로,
꾸따 누사두아만큼 사누르(SANUR)의 매력도 상당했다는 말씀!
차는 20분쯤을 달려서 큰길에서 어느새 작은 골목골목 사이로 접어들었다.
현지인 집들이 가득한 동네.
여기에 진짜 내 숙소가 있는 거야?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발리어로 달콤한 망고라는 이름의 애증의 숙소.
숙소의 겉은 망고처럼 달콤하고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발리 경비원은 늦은 시간인데도 밝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의 캐리어를 끌고 1층 우리의 방으로 안내했다.
룸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와!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였다.
2 room 1 living room 3 bathroom으로 크기가 꽤나 컸다.
각 베드룸에는 개인 욕실이 붙어있고
가운데 거실과 부엌이 있는 구조.
저기 커튼을 열면 바로 기다란 풀이 보이는
베란다가 나왔다.
게다가 음식을 해 먹는 것이 가능하고 가스비나 전기비
일체 포함된 가성비 짱인 숙소.
경비원이 돌아가고 나서 최여사는 짐을 풀고,
신이 난 소피는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나는 방을 체크하러 돌아다니고 있었다.
벽에 걸리 발리 작품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꺅! 하는 소리가 났다.
안방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
“소피! 무슨 일이야??”
놀라서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니
소피의 손가락이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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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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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조금 혐오스러운 사진 나올 수 있습니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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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없는 개미떼들이 화장실 세면대 대리석 아래 구석에서
기어 나와 있었다.
아니, 기어 나오고 있었다.
줄지어서 걸어 다니고 있었다.
살면서 난생처음 보는 광경.
발리에 도착한 후 두 번째 멘붕이 왔다.
게다가 우리나라 개미와 체급이 다른
발리의 개미들.
날개도 달려있고 크기도 손톱 한마디 정도로
거대해서 무섭기까지 했다.
(왠지 나한테 말을 걸 것 같은 느낌;;)
최여사의 폭토 사건 후 발리 숙소의 개미떼 습격.
화도 나고 당황한 나는 밖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던
경비원을 급히 소환했다.
“There is not my house. There is ants’s home! Man!!!”
화가 나니 말도 안 되는 영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