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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o Dec 22. 2021

발리에서 생긴 일 (삼모녀 발리한달살기)

발리의 맛 박소!

2020.01.08


(발리 숙소에 도착 후 개미의 습격을 겪은 지난 편에서 계속..)


욕실 대리석 바닥에 수없이 흩어진 개미를 보고 화가 잔뜩 난 나는 발리인 경비원에게 전투형 영어를 쏴 댔지만, 그는 정말 거의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ㅠ




한 달간 발리 생활을 돌이켜보면 발리인들의 영어실력은 우리나라 중학생 이상은 되었다. 특히 택시기사, 가게, 식당, 리조트 등 서비스업을 하는 발리인들은 영어는 꽤 훌륭하지만 동시에 경비원, 마사지사들은 영어를 거의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 숙소 '달콤한 망고' 풀빌라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는 영어를 못할지언정 눈치는 빠른 편. 화가 낸 내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내가 지르는 "앤트! 앤트!! 버그!!" 소리에 오케 오케하면서 무언가를 가지러 갔다. 잠시 후 나타난 그의 손에 들려진 전문가용 살충제 칙칙이.




그는 목이 긴 깔때기의 살충제 통을 들고 우리 방으로 향했다. 발리 말로 Don't worry Don't worry 같은 말을 하면서.. 그리고 전혀 놀랍지 않다는 표정으로 칙칙 살충제를 뿌려서 개미를 박멸하고 청소기로 쓱쓱 치워줬다. 오히려 놀라서 기겁한 표정의 세 한국 여자와는 완전 정반대로 평온한 표정으로 '이제 괜찮지?' 같은 인도네시아어를 던지고 have a nice day! 하고 사라졌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놀라지 않는 경비원의 표정을 보고 ‘와, 얘네들이 나한테 늘 개미 나오는 악성 매물 아니 방을 던졌구나! 이렇게 경비원이 익숙할 정도로!’라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하지만 이것이 오해였다는 것은 다음날 영어를 잘하는 풀빌라 관리인 위위와의 대화를 통해서 풀렸다.




발리의 일반 시민들은 우리들과 달리 집안에 벌레가 들어와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벌레 친화적이다;;; 거짓말 같은가?? 진짜다!! 내가 머물었던 곳이 리조트가 모여있는 곳이 아니라 발리인들이 사는 일반 동네여서 더 자세히 그들의 생활을 볼 수 있었기에 이건 확신한다! 게다가 발리는 신들의 섬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모든 생명을 존중?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발리인들은 벌레나 동물들 살생을 피한다는 것을 발리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점차 알게 되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런 고급 풀빌라는 벌레 관리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개미의 역습은 그들도 난생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머무는 동안 그들도 이 개미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관리인, 기술자들이 수차례 방을 방문해서 거의 벽을 뜯어낼 기세로 개미집을 찾아보았다.




아무튼 당시 발리에 도착한 그날의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 삼모녀는 개미의 습격으로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터프한 부싼할매 최여사는 ‘ 와! 할매 어릴 때 시골에서 살 때도 방에서 개미는 안나왔듸!’ 중얼거리고, 순수한 초1 소피는 ‘개미 무서워! 개미 무서워!!’ 하면서 내 등에 붙어있었다. 




나는 영어를 못하는 발리 경비원을 붙잡고 얘기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라고 판단, 우선 급한불은 껐으니 왓츠앱을 통해 친구 추가를 해놓은 풀빌라 관리인 위위에게 영어로 장문의 톡을 보내고(숙소에 개미! 나 너무 화가 나! 내일 출근하면 당장 해결해죠! 으아! 살려죠! 이런 내용..) 배고파하는 소피를 위해 그랩 앱을 켰다.



여기서 나오는 발리 한 달 살기 TIP 하나!



발리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게 없었으면 어떻할 뻔? 할 정도로 유용하게 썼던 그랩 앱!

다시 발리로 돌아가기 전에 딱 하나만 준비하라고 한다면 나는 그랩 앱을 고를 정도로 grab은 발리 한 달 살기의 필수품이었다. (여러분들도 발리 여행에 grab은 꼭! 꼭! 준비하쎄요!)




그리고 한국에서 발리 출발하기 전 깔아놓은 그랩 앱에 내 visa카드까지 입력을 해놓았기 때문에 발리 도착한 첫날 쉽게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grab앱에 visa카드 미리 인증받아 놓으실 것을 추천!)




비행기 멀미 폭토로 속이 안 좋은 할매 최여사와 낮선음식은 잘 먹지 않는 초1 소피를 위해 뭘 주문을 할까 고민 고민하다가 내가 선택한 발리 음식은 박소.




박소는 우리나라 어묵 완자처럼 생선, 닭, 소고기 등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다양한 맛의 완자를 만들어낸 후 멸치육수 같은 시원한 국물에 면과 함께 넣어주는 발리의 대표 서민음식이다. 사실 당시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그랩 앱에서 배달이 가능한 것이 별로 없었고, 그중에서도 그나마 우리나라 어묵탕과 비슷해 보여서 고른 것이 박소였다.




박소를 시키고 그랩 앱을 열어보니 배달원이 음식을 픽업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그랩 앱에서는 배달원이 픽업하는 순간부터 배달원의 위치가 지도에 귀엽게 표시된다. 

배달원이 숙소 근처로 왔다고 지도에서 깜박깜박 거리길래 나는 입구 로비로 나갔다.




음식값은 그랩 앱 안의 visa카드로 계산했지만 배달비는 잔돈(우리나라 돈으로 800원-1300원)으로 직접 배달원에게 줘야 하기 때문에 나는 한국처럼 거스름돈을 받을 생각으로 발리 돈 만원 정도를 배달원에게 건넸다. 




한국에서 루피아로 환전 당시 대부분 큰돈으로 바꾸고 일부만 만원 단위 잔돈으로 바꾸며 이걸로 충분히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경기도 오산이었다! 배달원이 어쩔 줄 몰라하며 ‘no change’라고 말했다. 자기는 이렇게 크게 바꿔줄 잔돈이 없다는 뜻! 보통 발리 배달원은 발리 돈(루피아) 오천 원 이상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당시엔 몰랐던 것.




배달원과 나는 서로 어쩔 줄 몰라서 ‘나 잔돈 없는데?’ ‘ 나도 없는데?’  ‘너 없어?’ ‘ 나없는데?’ '어쩌지?' '나도 몰라;;' 이렇게 서로 삐걱삐걱 대고 있는데 예의 눈치 빠른 발리 경비원이 허허 웃으며 '내가 내줄게!' 이런다. 그리고 나를 보고 인도네시아어로 나중에 줘! 이런 느낌으로 손짓 발짓을 했다.



하 씨.. 이 낯선 땅에서 받은 호의라니!! 



아까 소리 질러서 미안해요 아즈씨...왠지 모를 고마움에 뭔가 울컥 올라왔다. 처음 숙소에서 개미를 봤을 때만 해도 진짜 화났었는데, 경비원한테 괜히 미안해졌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 나도 발리식으로 손을 모아서 인사하고 박소 봉지를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큰 기대 없이 산 박소를 숙소의 그릇에 붓고 거실에서 엄마와 소피를 불렀다.


‘엄마, 소피! 어서 와서 먹어!’


그리고 나도 한입!


와우! 그런데 이 박소. 맛이 장난 아니다!



소피도 ‘ 엄마, 할모니! 이거 소고기 뭇국이야??’하면서 거의 박소를 마셨다.. 특히 멀미로 속이 안 좋았던 최여사도 박소 국물을 몇 번이나 들이켰다. 초1 소피는 박소 완자가 입이 맞는지 몇 개를 집어 먹었다. 깊은 맛이 나는 고기 맛 어묵탕 국수랄까. 이렇게 박소는 부산할매 최여사, 나, 초1 소피 세 여자의 입맛을 다 사로잡아버렸다. (부싼 국밥 느낌이랄까요...)



당시에는 블로그를 하지 않아서 박소 사진을 찍어 놓지 않았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맛이 생각난다.  LOL 게임처럼 미션과 같은 지친 비행을 마치고 개미도 죽이고 낯선 앱으로 배달도 시키고 숙소에서 어두운 불 아래에서 할머니, 엄마, 딸 셋이 마시던 그 박소의 맛.



‘내일은 사누르 비치(beach)로 나갈 테니까 모두 일찍 자자!’

다 먹은 박소 그릇을 치우며 내가 말했다.



"난 할모니랑 같이 잘래!"

"좋아! (엄청!)" 애미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깊게 동의했다! 완전 좋아!! 허허!



"오늘부터 한달동안 우리 셋이서 발리에서 사는 거야! 내일은 동네 구경해야 하니깐! 푹 자자!"



‘응 엄마! 할모니! 잘 자!’


졸린 소피의 목소리가 어느새 쌕쌕 숨소리로 바뀌었다. 이렇게 길고 긴 하루가 끝나고 내일 발리에서 시작할 날을 기대하며 우리 삼모녀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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