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부재와 정서의 저작권에 대하여
당신은 늘 말머리에 ‘아니’를 붙였다. 아니 그것 좀. 아니 내 말은.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부정이 처음부터 들리는 문장은. 처음부터 나를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아니라고 할 때마다. 마음 안이 아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당신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길을 건넜다. 아니 어딜 간다고 하는 거야. 나는 당신께 말하고 싶었다. 아니 사랑할 수 없어서 사랑한다고. 마음 안이 인이 박혔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라고. 당신은 이곳이 아니고 저곳에 있었다. 당신은 아니고 나도 아니고 안이고 밖이고 나는 이제 당신보다 아니라는 말을 더 쓰며 살았다. 아니라는 말의 저작권이 당신에게 있는 것처럼. 나는 마음부터 이미 당신에게 빚져 있었다. 하지만 아니라고 해도 당신에게는 들리지 않을 거라서 나는 마음껏도 아니해도 되었다. 우리가 다시 만나면 서로 첫마디부터 아니 아니하며 또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꺼내지 못할 것이다. 마음 안이 온통 복제된 당신의 아니로 되어있고. 아니 그러니까. 말을 하려다가 당신의 말을 베낀 나는. 아니 아니 이제 내가 아니고 내가 당신인 줄 알았다.
어쩌면 말에도 원본이 있다면
나는 지금 당신의 저작권을 침해 중이었다.
우리는 자주 누군가의 말투를 베낍니다. “아니”라는 말머리가 내 안에 침투하면서, 내가 점점 그 사람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결국 그 사람이 되어갑니다. 감정도, 언어도, 자아도 복제됩니다. 그리고 찰나 하는 순간에 그 말도 내 것이 되어버리고, 원래 내 것이었다고 자신을 속이며 삽니다. 이 시에서 ‘아니’라는 부정어를 통해, 관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말의 복제, 감정의 침투, 정서의 저작권 침해를 탐구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