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에게 나를 걱정시키고 싶었다. 아픈 척을 하고 싶었다.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은 날. 억수 같이 비가 내리면 그 내리는 비보다 나를 더 걱정했으면 싶었다. 나보다 나로 더 젖어있길 싶었다. 온통 나로 흠뻑 젖어 옷을 벗어 말려도 턱이나 손가락 끝에서 내가 뚝뚝 떨어졌으면 싶었다. 걱정하다가 걱정하다가 그게 미움으로 바뀌어서 다시 그 미움만큼 나를 사랑했으면 싶었다. 벽돌로 지은 90년대 연립주택 매끈한 신주계단 위에서 대뜸 당신과 마주하고 싶었다. 그런 계단이라면 내 못난 마음도 동일한 질감으로 이해받을 것 같았다. 당신 세계의 단 하나의 먹구름이고 싶었다. 이미 축축해진 징조이고 싶었다. 내일도 마땅히 할 일이 없고 나는 실컷 걱정이나 시키며 당신을 울리고 싶었다. 내 세상은 온통 당신으로 물들고 나는 사랑받을 준비가 되었다. 당신의 구석진 시선 끝에는 항상 내가 있을 거라고. 그제야 돌계단 같은 고백 비스무리한 것 정도는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긍정과 부정이 나오는 에너지의 원천은 같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소녀가 고무줄놀이를 할 때 그 고무줄을 왜 끊고 도망가겠는가. 어떤 이들은 그런 식으로 밖에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 잘했고 못했고는 나중의 문제다. 멀리뛰기를 엉거주춤하게 뛰어 멀리 가지도 못하고 선 앞에 떨어지고 마는 사람들. 표현에 서툰 사람들. 자신의 마음을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들. 안타깝지만 주변에 수도 없이 많다. 관심이 곧 사랑이다. 그러나 관심을 줄 이들은 많지 않다. 괴롭힌다는 것은 그 부정적 에너지가 긍정적 에너지로 변환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다. 어차피 사랑받을 수 없다면 일단은 미움이라도 사고 보는 것. 그럼 나를 한 번이라고 봐주겠지. 나빴다고 한 번 더 생각해 주겠지. 그런 못난 소년의 마음은 어른이 되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고도로 발전되기도 한다. 너무 사랑하면 사랑받기보다 미움받는 것이 덜 무서울 때도 있다. 더 나빠질 것이 없으니까. 기형적인 안도감에 위안받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겁쟁이들.
이 시 또한 가학적인 사랑의 관한 시다. 당신을 울려서라도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는 아주 못난 감정으로 쓴 시다. 언젠가 비가 내리고 데리러 온다던 당신이 늦자 나는 일부러 전화를 안 받고 혼자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그게 웬 심술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갑자기 사랑받고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그렇게 될까 봐 겁이 났던 거다. 그래서 내가 먼저 버림받았다는 설정을 해버리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런, 겁쟁이! 물론 두 번째 전화가 울렸을 때는 받았고 아무렇지 않게 누가 태워줘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둘러댔지만 이미 당신은 나를 엄청 걱정해 버린 뒤였다.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사실 당신의 걱정이 내심 좋았다. 그동안 소소하게 된장처럼 엉킨 응어리가 뜨거운 물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 걱정이라는 것이 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아무나 걱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걱정은 사랑처럼 상위의 감정이 아닐까. 나는 걱정이라는 마음의 간절함이 좋다. 걱정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이지만 그 단어의 함의된 것은 긍정이다. 당신을 긍정하기 때문에 튀어나오는 부정적 단어다. 못된 소년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흥! 삐뚤어질 테다! 하며 살고 있다. 월세 한 번 받아본 적 없지만 아직 나가라는 말은 못 꺼내겠다.
나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도 쓰고 글도 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조금은 마음이 병든 자들이 예술을 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진단서나 처방전 같은 것이다. 좋은 시를 한 편 쓰면 그날은 꽤 마음이 단단해진 느낌이다. 반대로 마음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사실 시도 노래도 필요가 없다. 그런 것은 여흥의 소재지, 이들은 자연에서도 관계에서도 아니 그냥 일상 속에서도 재생력이 좋다. 감정기복이 없다. 주변의 사람들을 안심시켜 주고 불면증도 없다. 밥도 잘 먹고 지나가는 동료에게 참! 오늘 생일이라며 축하해! 하며 관심을 쏟을 체력도 된다. 아 물론, 애인이 늦게 데리러 온다고 집으로 가버릴 못난 짓도 하지 않는다. 나는 가끔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을 만나면 주눅이 들곤 한다. 절대 나와는 다른 종의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간단히 동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내 마음은 너덜너덜하다. 건강한 마음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 너덜너덜한 곳을 이어 붙이는 게 저런 시인 것이다. 당신에게 못난 나를 고백하고 못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못나면 어때! 하고 부정을 긍정하는 것. 내 마음속 소년 같은 당신들의 소년도 혼자가 아니다. 내가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은 겨우 그런 것이다. 이것 봐, 나도 엉망이잖아. 하고 시를 쓰는 것.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렇게 중얼거리다 보면 지옥에 떨어진 죄인의 기도문처럼. 어쩌면 한줄기 빛 같은 게 나를 비춰주지 않을까. 그런 말도 안 되는 확신 같은 것도 드는 것이다. 아멘.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