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강이 시작되는 곳

by 슴도치

노인은 느리게 몸을 닦았다. 물에 젖은 자갈이 파랗다. 멀지 않은 곳에 수원지水源地가 있었다. 그것을 알려준 이는 지금 죽고 없다. 산장지기가 모아둔 나뭇가지가 그늘에 수북이 쌓여있고. 잠이 막 깬 독사는 약이 바짝 올라있다. 나는 며칠 만에 또다시 산에 올랐다. 산을 넘으면 강이 있고 강을 건너면 마을이 있고. 마을을 지나도 당신이 있는 곳까지는 먼 길이었다. 봄이라기에는 아직 해가 짧고. 작은 돌 틈으로 더 작은 물줄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받아 마신 나는 내 몸속에도 작은 물줄기 하나 정도는 있는 걸 알았다. 작은 뼛조각 같은 흰 달이 능선을 따라 천천히 오르고. 그제야 나를 발견한 노인이 주섬주섬 옷을 챙기며 일어났다.










* 그리움을 형체화 시키면 그것은 아마 물줄기 같은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땅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지하수 말이다. 마시면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 그렇다. 정도가 심한 그리움은 따뜻할 수가 없다. 그것은 무척 차가워야 한다. 이가 시리고 가슴이 시릴 정도로 찬 물이어야 한다. 그 찬물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미지근해지는 거고 그 정도가 되었을 때 떠올려도 삼켜낼 수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슴 깊은 물줄기가 있다. 그리움의 수원水源. 거기서부터 여러 갈래로 흐르는 얼굴들이 있다. 반가운 얼굴도 있고 아픈 얼굴도 있다. 그러나 결국 근원은 같다. 아름답지 않은 그리움은 없다. 그 아름다움은 미완未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움이란 것은 어떻게든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가능하다. 완성되지 못한 관계. 그리움이란 감정은 미완의 관계에서 오는 안타까움이다.


이 시는 꽤 오래전에 썼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시다. 질질 끌지 않고 군더더기 없는 글을 지향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본문 같은 글 말이다. 간단하고 쉽고 전달이 담백한 글. 하지만 그런 시는 자칫 잘못하면 뻔해지므로 나는 이야기를 섞는 것을 좋아한다. 원래 나타내고 싶은 색에 다른 색 하나를 섞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자 한다. 앞뒤의 상황은 차치하고 스냅샷처럼 이야기 중 어느 한순간만을 확대해서 시를 쓰는 작업을 몇 년 전부터 하는 중이다.


이 시의 주인공은 애송이 여행자다. 그런데 본인도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어디를 가야 하는지 잘 모른다. 사실 자신의 그리움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소년이다. 그렇게 정처 없이 길을 헤매다 산에 올라 노인을 훔쳐본다. 그 노인은 긴 세월 살아오며 자신이 무엇을 찾았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이다. 몸에 끼얹는 그리움조차 망설임이 없다. 소년은 순간 노인을 동경한다. 하지만 노인은 누군가 나타나자 태연하게 자신의 내면을 갈무리한다. 왜냐하면 그리움이란 알몸처럼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니까.


그 소년이 결국 자신의 그리움과 마주했는지, 소년의 '당신'을 만나러 갔는지 나는 잘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어쨌든 미완은 아름다우니까. 그 여백을 분명 남겨두고 싶다. 왜냐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채워나갈 여지도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답은 없지만 있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유일한 정답이란 없다. 각자의 정답만이 있을 뿐. 나는 소년의 다음 발걸음을 응원한다. 그 차디찬 그리움이 조금은 미지근해지길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의 두 손을 붙잡고 무척 보고 싶었노라고 고백하는, 마침내 모든 그리움을 증발시킨 소년의 모습도 상상해 본다. 그러면 나는 퍽 위로받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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