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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by 슴도치

몇 년째 혈압이 높았다. 진료를 받기 전에 혈압을 잰 간호사는 그동안 왜 혈압약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몇 년째 바빠서 병원에 가지 못했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분명 바빴다. 의사는 오래된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는 바빠서 병원에 가 보지를 못했다고 또 똑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아무도 혼내지 않는데 혼자 겁을 먹고 그랬다. 다들 그렇게 핑계를 대고 병원에 가지 않죠. 그럼 이제 알약 하나만 먹어봅시다. 혈압이 높은 사람들은 보통 이 약으로 시작해요. 오래된 의자에 앉은 오래된 의사가 말했다. 그럼 죽을 때까지 먹어야 되나요? 나는 갑자기 갑갑증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 이야기 같았다.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데 또 다른 반전으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말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에는 진력이 났다. 이제 오래된 의자가 된 오래된 의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살아있는 동안만 먹으면 돼요. 그 말에 나는 과연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나도 오래된 의자에 앉아 언제까지고 오래된 의사의 말을 듣는 얌전한 사람이 되었다. 수납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려는데 간호사가 나를 붙잡고 약봉지를 뜯어주며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한 알 드시고 가세요. 더 미루지 말아요. 그것이야말로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된 나를 위한 염려 같았다.










*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대책 없는 인간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덮어두고 긍정적인 인간도 아니었는데. 선택적으로 대책이 없고 선택적으로 긍정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두렵거나 불안한 것은 한쪽눈을 감고 피하고 아무 일 없는 척해버린다. 편리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손쉬운 결정은 꼭 탈이 나고 만다. 홍수가 나서 난리통이 된 집 안에서 불을 끄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척하는 것처럼. 집이 물에 잠기고 세간살이가 물에 둥둥 떠다니고 침대에 걸터앉은 채 내 발가락마저 젖어가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야 마는 것이다. 잠깐 내 신발은 어디 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 다 고장 나고 부서지고 나서야 아쉽다. 그전까지는 낙관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명랑함은 정신병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조증. 진실에 직면하는 울증. 어떻게 병원에 입원해서야 쉴 수 있는 것일까. 그 전에는 자의든 타의든 가만히 있는 법을 모른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만나기 싫은 인간을 만나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안면근육이 마비된 것처럼 웃기도 한다. 수많은 책임회피 기안문서와 내 돈이 아닌 회계 관련 숫자를 보고 끝나지 않는 일을 술 한 잔 마시고 잊은 듯 끝내고 깨지도 않는 숙취에 새벽 같이 일어나 다시 어제 한 일을 반복한다.


병원에서는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다. 시간이 되면 소등과 점등을 해준다. 밥이 나오고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는다. 사람이 한 없이 수동적이 된다. 그것은 어쩌면 즐거운 일이다. 그제야 나는 나를 아끼게 된다. 내가 꽃처럼 느껴진다. 가꾸고 아껴야할 생명체처럼 여겨진다. 내 안부를 묻는 사람이 가족 말고도 생기고 그들은 나를 아기처럼 대한다. 그럼 나는 누워서 내가 필요한 것을 말한다. 신체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나는 치유 받는다. 아프지 않으세요. 괜찮으세요. 아침마다 묻는 진부한 표현부터 조금 따끔합니다. 하고 미리 알려주는 경고성 문장에서조차 나는 위로 받는다. 아프지 않아요. 괜찮아요. 아얏! 그런데 선생님 이건 따끔 수준이 아닌데요.


요즘 사람들 대부분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집에서 돌아가시는 분이 많았다. 그만큼 돌봐주는 사람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아픈 사람을 먹이고 씻기고 병원에 모셔다 드리는 일을 그때는 가족 모두가 혹은 가까운 이웃이 두 팔 걷어부치고 돕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었다. 지하철 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는 의인처럼. 어떤 댓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 '눈 앞에 보이니까' 반응하는 것이다. 뜨거우면 피하고 위험하면 붙잡 듯. 계산이 아닌 행동이 먼저 선행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아프거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관심이 있을 때 가능하다. 어쩌면 우리는 물이 부족한 식물처럼 관심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신체적인 병은 대부분 치료제가 있지만 마음의 병에는 약이 없다. 거의 잠이 오게 만드는 약이 대다수인데 그 말인즉슨 결국 자가치료인 것이다. 남이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고쳐야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중요한 것을 나는 안다. 괜찮으세요. 아프지 않아요. 이제 따끔한 건 지나갔어요. 하는 말들.


짧은 입원 생활이지만 나는 이제 쉰다. 그 사실이 마음에 든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잉여롭게 하루를 보내도 괜찮다. 치료 받고 밥을 먹고 약을 먹는 일이 지금 내게는 가장 중요하다. 나를 보호하는 소중한 일이다. 이런 날도 필요하다. 멈춰가는 날도 필요하다. 너무 애를 쓰고 살면 하늘이 이런 날도 만들어준다. 조금 쉬었다 가라고. 이럴 때마다 신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교리는 믿지 않아도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은 늘 필요하다. 인간에게 겸손해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부분에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른 시간에 저녁이 나오고 나는 아주 오래된 신께 감사 기도를 드리기 전에 함께 나온 약봉지를 본다.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에 아니 최대한에 염려를 본다. 아프지 않아요. 괜찮아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해줄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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