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by 슴도치

내 손 같은 당신 손을 잡고 착하고 순하게 살고 싶었다. 그만큼 나도 연하고 옅어지면 좋았다. 계란으로 국을 끓이고 흰쌀로 밥을 짓고 계란과 밥처럼 따뜻한 집을 짓고 내 살에 딱 맞는 옷을 짓고 당신과 집 옆에 난 우리 어깨너비만 한 좁은 길로 매일 다니고 싶었다. 내 손 같은 당신 손을 잡고 동쪽 바닷가 작은 땅뙈기, 나 모르는 곳에 가 나 모르게 살고 싶었다. 여름에는 그늘께 서늘한 바람에 살 부비고. 한 겨울 방 안쪽 따뜻한 온돌에 누워 아 우리 집은 외풍이 심하지 해도 찬 바람은 내 등으로 가리며. 착하고 순한 당신이 날 보고 웃으면 오, 나도 만든 지 하루 된 두부처럼 순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함께 하는 사람의 영향이란 얼마나 큰 것인가. 옛날부터 어른들은 친구를 잘 사귀라고 하였다. 축구를 잘하는 친구를 사귀면 매일 축구를 하며 놀 것이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사귀면 잘하진 못하더라고 옆에서 만화책이라도 읽게 되는 것이다. 또 '맹모삼천지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맹자의 집이 묘지 근처에 있어 묘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며 즐겁게 놀자 맹모孟母(맹자의 어머니)가 시장으로 이사를 하였고 맹자가 이번에는 장사꾼처럼 행동을 하니 그다음에는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였고 비로소 맹자가 학업에 전념을 하여 위대한 학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만큼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고 곁에 누구와 있느냐가 인생을 좌우한다.


지금보다 나이가 들면 동해 쪽 작은 해안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 그곳은 나를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나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부엌이 딸린 몇 평 되는 집에서 당신과 나. 단 둘이 지내보고 싶다. 늘어지게 잠을 자고 늦은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먹고 바닷가를 걷고 시장에 들러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요리를 하고 당신은 내 옆에서 이런저런 말을 끊임없이 재잘거리고 함께 밥을 먹으며 따뜻한 정종 한 잔을 하고 우리는 또다시 이불속에서 잡다한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드는 것이다. 온전히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사람도 일도 걱정거리도 없이 오로지 너와 나. 둘 만으로 충만한 하루.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계속해서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는 여정이다. 가족을 위해, 명성을 위해, 돈을 위해, 그러나 무언가를 위해 사는 삶이란 결국 내 삶이 아니다. 가족의 인생이고 명성의 인생이고 돈의 인생이다. 거기에 나는 없다. 결과만 있을 뿐. 뉴욕에 높은 집세가 부담스럽던 어느 재택근무 직장인은 느닷없이 크루즈 여행을 신청했다고 한다. 이유는 어차피 뉴욕의 집세와 크루즈 여행의 여비가 별반 다르지 않고 자신은 재택근무이니 인터넷만 되는 곳은 어디든 직장이 될 수 있어 여행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가 지금도 남태평양 너른 바다 위에서 자기 자신과 온전히 마주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면 괜스레 위안이 된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나는 매번 진다.


그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역시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어서이다. 하지만 그 경제적인 부분이라는 것도 남처럼 살고 남처럼 소비하고 남처럼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결국 그 기준도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다. 하지만 말이야 쉽지 사회에서 그런 것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쉽지가 않다. 자녀가 장성할 때까지는 어찌 되었든 나의 책임이기 때문에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자의적으로 내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기쁜 일들이 있으니 감수해야 된다. 어찌 되었든 인간사는 등가교환이다.


지금 돈을 모으고 저축을 하고 깨지도 않는 숙취에 새벽같이 일어나는 이유도 등가교환이다. 나중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 나중만이 중요하다? 동해 쪽 바닷가 마을이 내 인생 궁극의 종착점일까? 정말 바라는 삶이긴 하지만 그것이 끝이라면 역시 조금 이상하다. 내가 바라는 삶이지만 그것만을 위해 산다는 것은 어쩐지 허무하다. 금세 맑았다가 거짓말처럼 비가 쏟아지고 마는 강릉의 날씨처럼 말이다.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고 지금 불행하자는 것은 너무 가학적이다. 지금부터 행복하면 안 될까. 여기가 바닷가는 아니지만 당장 누울 집이 있고 이렇게 글을 쓸 여유가 있고 내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책임이 못마땅하지 않다. 오히려 즐겁다. 내 삶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삶이라도 즐겁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기 때문이다.


사실 동해 쪽 바닷가 마을에서 산 적이 있다. 어렸을 적 직업군인을 했을 때였다. 그러나 그때는 직업도 직업이지만 늘 불안하고 날이 서있었다. 현실을 즐기지 못했다. 회 한 번 나가서 마음 편히 사 먹은 적이 없었다. 늘 부대와 집만 오고 갔고 지금 이것이 내 삶인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때도 그랬다. 행복을 뒤로 미뤘다. 나중에 제대하게 되면 펼쳐질 내 삶을 고대하고 그때 다시 내 인생이 시작될 거야. 하고, 게임에서 얼른 죽고 에너지가 가득 찬 캐릭터로 다시 시작하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지금은 관광지로 가려면 며칠을 비워둬야 갈 수 있는 그곳을, 창문을 열면 파도소리가 들리고 조금만 걸어 나가도 시장이 있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던 그곳을 나는 애써 외면하고 참아내야 될 것으로 여기고 버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련한 겁쟁이 같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행복하기로 했다. 지금 이곳이 동해 바닷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어쨌든 내가 필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 다 있다. 늘 꿈꾸면서도 지금 내 삶에 감사하기로 했다. 조금 더 물렁해지고 순해지기로 했다. 나중은 없다. 끊임없이 원하고 갖고 욕망하고 바라면서도 지금 내 삶을 만족하는 것. 순한 당신을 닮아 내가 더 순해지기를.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은 지금뿐이 없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이 순간 당신과 있다. 그리고 내 사람들과 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늘 집중하며 살고 있다. 이것은 기도문처럼 주문처럼 간직하는 나의 지극히 사적인 고백이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에 족하기로 했다. 창문을 열면 파도 소리가 아닌 차도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내 눈에는 파도가 보인다. 당신과 내가 마음 편히 살 우리의 작은 집도 보인다. 그 창문을 열고 나란히 서있는 착한 당신이, 착한 내가 보인다. 나는 그런 것으로도 지금 너무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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