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처럼 자고 있었다. 문을 연 그곳에 당신은 빙판처럼 있었다. 놀란 나를 보며 당신은 왜? 내가 죽었어? 하고 물었다. 집 앞에는 누군가 공들여 만든 눈사람이 있고 그러나 내일 정오쯤에는 능숙한 거짓말처럼 녹아있을 것이다. 우리는 얼어붙은 내리막길에 있었다. 자의로 멈추지도 나아가지도 못하는 그런 길. 왜? 내가 죽었어? 당신은 한 번 더 같은 말을 하였다. 당신의 죽음 앞에 나는 어떤 추도문을 읽어야 할까. 퍽 고민을 하느라 조마조마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 문을 닫고 들어간 당신은 겨울처럼 자고 있었다. 늦은 아침 집 앞에 나가보니 반쯤 녹은 눈덩이를 눈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사람은 나뿐이 없었다.
* 아예 망가진 관계라는 것이 있다. 마치 깨진 유리잔이나 찢어진 종이처럼. 어떻게든 복구하고 없던 일로 만들고 싶지만 모른척할 수 없는 자국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미 끝장나버린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데 한동안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괴로운 것은 그때부터다. 진짜 끝났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망쳐버렸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고, 실망해 버린 감정도 있다. 그것은 흉터처럼 마음 곳곳에 생채기를 남긴다. 누구의 잘못이었나. 아니 누구의 잘못이 컸나. 그런 것을 따져볼 여유도 없다. 교통사고처럼. 이미 상황은 벌어져 있고 수습할 사람은 없다.
사람을 잃는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공을 들인다는 것은 탑을 쌓는 일과 같다. 산에 올라 돌탑을 쌓다가 내가 올린 작은 돌 하나에 무너져도 속이 상하는데 인간과의 관계가 무너진다는 건 그것과 비교할 수도 없다. 그것은 서로에게 있어 죽는다는 의미와 같다. 이제 세상에 없는 사람. 아니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사이.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에서는 헤어진 커플이 기계를 이용해서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고 한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와의 기억 속에서 나쁜 기억만 있었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둘만의 아름답고 내밀한 기억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기억이 지워지는 것을 뒤늦게 후회한다.
퀴블러-로스의 죽음의 5단계는 다음과 같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이것은 끝이 나는 관계에서도 비슷하다. 일단 분노와 부정은 함께 온다. 그것은 처절하고 극렬하며 이 5단계 중 가장 뜨겁다. 대부분의 사건, 사고도 이때 발생한다. 헤어진 연인 집 앞에 찾아간다거나 끝없이 전화를 건다거나 협박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때에는 '내가 지금까지 준 선물 전부 내놔' 따위를 시전 하면서 관계를 조금이나마 더 이어나가려고 하는 찌질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끝나가는 관계를 붙잡기 위한, 부정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그러나 끝나는 관계를 끝이 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선다는 것은, 영원한 나의 우군인 줄 알았던 혈맹이 국교단절을 해버렸다는 것은 한 나라의 국운이 걸린 일이다.
차라리 이유라도 알면, 그리고 이별의 징조라도 있었다면 받아들이기가 조금 수월하다. 문제는 카톡이나 문자로 이별을 통보하는 유형이다. 이때는 차라리 상대방이 죽을병에 걸렸다고 믿는 편이 정신 건강에 유리하다. 계속 생각해 봐야 그 이유는 이별을 통보한 당사자만이 아는 것이고 용이 지키는 미궁의 보물상자를 여는 것만큼이나 진실을 알기란 어렵다. 하지만 그런 이유도 몇 년이 지나면 풍문으로 들리기 마련이다. 'A가 1년 전에 의사랑 결혼했다며?' 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충 자신의 이별 시기와 겹쳐지는 것이다. 어쨌든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불행정도야 가볍게 여기는 종인 것은 분명하다. 오래된 가사처럼 사랑했으니 보내준다는 말로 위안해야지 어쩌겠는가. 환승이별한 것들은 평생 치질이나 걸려버려라.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했던 이들의 행복을 빌어줄 수밖에 없다. 어쨌든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조금 더 성장했다. 앞으로 나아갔고 행복했고 미래를 그릴 줄 알았다. 모든 관계는 나라는 인간의 자양분이 된다. 더군다나 사랑했던 사람과의 관계의 특별함은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 녹은 눈덩이를 눈사람이었다고 기억하는 이는 역시 그 눈사람의 처음을 아는 자들이다. 당신이 어딘가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아프지 말고 밀가루 많이 먹지 말고 함께 있는 그와는 나보다 더 행복하길 바란다. 고대하던 프랑스 여행을 갔다가 소매치기를 당해 여권을 잃어버리고 식중독까지 걸려 설사만 하다가 귀국했던 여행일지라도 그곳의 냄새와 프랑스어의 억양과 맑은 날 올려다본 에펠탑의 전경은 소중하게 남듯이. 정말 사랑했다면 나빴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이 항상 선두에서 우리를 맞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나에게 죽고 나도 당신에게 죽고 없는 사람이지만. 그때의 우리는 순수하게 사랑했고 많이 아꼈고 끝까지 서툴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