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7분 30초

by 슴도치

달걀은 완벽하다. 완벽한 달걀 두 알을 물에 삶는다. 7분 30초만 삶는다. 그것이 완벽한 비법이다. 다 삶은 완벽한 달걀을 찬물에 식힌다. 달걀 껍데기가 돌아누운 당신 등을 닮았다. 깨진 껍질 사이로 완벽한 흰자가 스며 나와 있다. 냄비에 곱게 놓아줄 걸 그랬나. 그랬다면 조금 나았을까. 우리는 요즘 완벽한 달걀 삶는 시간보다 완벽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늘 다른 한쪽이 미리 차가운 물을 틀어둔다. 어딘가에서는 완벽하게 부화된 달걀이 7분 30초보다는 오래 세상에 남아있겠지. 그런 생각은 나름 완벽하게 희망차다. 나는 껍질부스러기를 손바닥으로 완벽하게 모은다. 마지 채 부화되지 못한 당신과 나의 단어들처럼.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우리의 시간들처럼. 우리는 여전히 완벽한 미완성이다.



* 연인이라는 것은 사람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세상도 함께 오는 것이다. 그 말은 완전히 다른 두 나라가 서로 합쳐진다는 의미다. 유럽이 식민지였던 아프리카를 땅따먹기 하듯 선을 그어 국경선을 나누었던 역사를 보자. 민족이 다른데 갑자기 한 나라가 된 그곳은 지금도 내전이 끊이지 않는다. 아무렴 사람을 나라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 별반 다르지도 않다. 의복이 다르고 입맛도 다르고 사상도 핏줄도 다른 두 인간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어코 짝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느 때는 달걀을 삶는 시간 동안에도 이쁜 말을 할 수가 없다. 또다시 상대를 깨뜨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그녀)를 아프게 해야만 내가 사는 이유. 얼마나 지옥 같은가 말이다. 총부리를 겨누고 암구호를 요구하고 내가 원하는 답이 들리지 않으면 '빵!' 하고 다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떠한 타인도 나와 같을 수가 없기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렇다! 타인은 참아내기 괴롭다. 하다못해 점심 메뉴를 결정하면서 조차 갈등이 생기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 '나는 아무거나 다 잘 먹어. 네가 방금 전에 말한 그것만 빼고' 그래, 진짜 미쳐버리는 짓이다.


사람이 다 같다면 세상의 분쟁과 갈등이 없겠지. 하지만 그것도 생각해 보면 끔찍한 일이 분명하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모두 하기 싫을 거고 내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모두 멍청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다. 만약 내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면 모두 아이스크림 회사 주식만 사겠지. 장래희망은 아이스크림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고 아이스크림은 더욱 귀해지고 국가에서 아이스크림의 생산량을 결정하고 아이스크림이 금보다 비싸질 것이고 아이스크림 때문에 각 나라들은 각축전을 벌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건 유가油價(기름값)가 아니라 유가乳價(우유값)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제3차 아이스크림 대전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더 먹기 위해 일어난다면 모두 분기하여 자신들만의 단맛을 지키기 위해 싸울지도 모른다. 끔찍한 개소리지만 세상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욕망을 갖는다는 건 그만큼 끔찍한 일이다.


이렇듯 다들 다르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에 주제로 돌아와서 우리는 어째서 지옥처럼 괴로운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가. 평생을 찾아 헤매고 괴로우면서도 함께 있고 싶은 것인가. 사실, 그것은 이성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리고 인간은 애초부터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란 이성적일 수 없기 때문에 남과 싸우고 때로는 남을 위해 희생한다. 부모님이 무서우면서도 일탈을 하고 도둑질이 나쁜 걸 알면서도 남에 물걸을 탐내고 세상에! 둘만 모이면 꼭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씹는다. 결국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인 것이다. 그리고 그 욕망 중에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은 사랑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국 상대라는 불행을 감수하는 것이다. 1+1을 2라고 할 수 없는 영역인 거라고. 그 사랑이라는 게.


사랑하면 그 상대와 나를 동일시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순간부터 그(그녀)는 타인이 아니라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에, 연인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되길, 천국이 되길 원하기에 나와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나 나와 다른 생각만 가져도 화가 치미는 것이다. '너는 나인데 왜 나랑 다르게 행동해?'라는 감정이 깔려있기 때문에. 그것은 굉장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지만 또 이기적인 것으로는 인류를 따라갈 종이 없다.


그러나 나는 한 차원 높은 사랑의 개념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상대가 바뀌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상대에게 맞추는 사랑일 것이다. 염치 불고하고 진정한 사랑을 정의하자면 그것은 사랑의 기준이 내가 아니라 상대에게 있다는 데 있다. '네가 나에게 맞춰!'가 아니라 '내가 너에게 맞출게'라는 것이다. 걸음걸이가 느리면 기다려주고 설거지를 싫어하면 대신해 주고 추위를 많이 타면 보일러 온도를 조금 높여주는 그런 것. 물론, 상대도 나를 기다려주고 맞춰줄 때 그 사랑은 달걀처럼 완벽해진다. 서로를 50:50으로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사랑도 그렇지 않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더 사랑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 상대가 덜 사랑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내 기준인 것이지 그도 당신에게 정성을 다하고 있다. 나의 사랑을 고맙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 고마움을 다시 사랑으로 변환시키는 것. 오늘의 나는 완벽한 사랑을 하고 있나. 어쨌든 완벽한 달걀을 삶긴 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충분히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사랑을 삶는 나만의 완벽한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