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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pr 15. 2024

아빠와 딸

무뚝뚝한 부녀

아빠와 친하지 않다.




내게 아빠라는 존재는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존재다. 언제부터 이랬을까.

다가가면 멀어져야 될 것 같고, 멀어지면 다가가야 될 것 같은 '아빠와의 거리'



세상에서 아빠와 딸이라는 관계 중 무뚝뚝해도 이렇게 무뚝뚝한 관계가 더 있을까.




요즘 TV조선에서 <아빠하고 나하고>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와 출연자의 아버지랑 같이 나오는 가족 동반 예능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보면 ‘세상 누구보다 가깝지만 때론 누구보다 멀리 느껴지는 아빠와 나. ..!! 이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아버지..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라고 적혀 있다.


방송을 보면서 유독 백일섭 배우님과 그의 딸 백지은님의 방송이 인상깊었다. 성이 다르지만 이름이 같아서 더 마음이 같던 것 같기도.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실 가슴 한구석에 미워하는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건 물론 다른 이유겠지만 유독 백지은님이 나오신 방송을 보고 있으면 꼭 나와 아빠의 관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빠가 나에게 다가올려하면, 난 아빠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지 못했고, 내가 아빠한테 다가가면 뭔지 모르게 거절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말 그대로 가깝고도 멀고, 멀고도 가까울 수 밖에 없는 뭐 그런 이상하고도 쉽지 않은 관계. 근데 요즘은 아주 살짝 개선한 것 같기도. 밥을 같이 먹는 것 자체가 관계개선의 긍정신호라 본다.


”아빠와의 거리“


둘이 같이 한 공간에 있으면 정말 절간이 따로 없다. 사실 아빠가 너무 어색하고 같이 있으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 다른 집 딸들은 애교 많고 먼저 다가가서 살갑게 말이라도 건다는데 안타깝게도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아니 원래부터 없었다. 애교가 뭐냐. 먹는 건가 하는 born to be K -장녀의 무뚝뚝함이다. 애교 같은 거 개미 똥만큼도 없다. 그저 늦은 밤. 아빠가 방에서 잘 때, 불을 켜고 잤나. 끄고 잤나 확인하고 자는데 해로운 불이 켜져 있으면 불빛을 끄고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아직도 방에 난로가 있는 아빠 방에는 난로가 켜졌나. 안 꺼졌나 거의 매일 밤 확인할 뿐. 뜨거운 난로가 아빠의 다리 밑에 켜져 있으면 자고 있는 아빠가 뜨거울까 얼른 난로를 조용히 끈다. 아빠가 이불을 덮지 않고 잘 때는 그냥 아무 일 없는 듯 무심히 이불을 덮어주고 베개가 없을 경우 조용하게 살며시 베개를 머리 밑에 놓아준다. 동생 방과 아빠방이 더 가까워도 항상 내가 체크를 해야 될 것 같다.


그뿐이다.


아빠가 방에 불을 켜고 자나. 끄고 자나 확인을 확실하게 한 뒤에야, 내 방에 들어가야 마음이 놓인다.

참 이상하다. 왜 그럴까. 아빠를 싫어하지도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왜 아빠를 신경 쓰고 마냥 미워하지 못할까. 나에겐 아빠란 과연 어떤 존재며, 아빠한테 나란 어떤 존재일까? 다가가면 멀어지는 것 같고 멀어지면 다가가야 될 것 같은 아빠와의 거리. 둘이서 밥을 먹으면 달그락 소리와 주변 소음밖에 안 들리는 너무 조용한 관계. 정말 세상에서 제일 친해지기 어려운 우리 아빠다. 그런데 동생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뭔가 나보다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훨씬 더 가까워 보이는 건 왜일까.


아빠의 캐릭터는 진짜 무뚝뚝함의 정석이다. 기쁜 일에는 환호보다는 '걱정'. 기쁘다는 감정보다는 '우려'가 먼저 앞서는 사람이다. 걱정이 많아 신중하고 꼼꼼하고 모든 일에 계획적이고 철두철미하다. 기쁘고 행복하다는 표현 대신 혹시 모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대한 '대비'와 '대책'을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가. 엄마는 아빠랑 성격이 반대다. 비슷한 것 같은데 같지 않다. 엄마는 아빠에 비해 낙관적이고 진취적이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대한 추진력이 강한 약간 여장부 스타일.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면 회사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어서라도 어떻게든 자신의 커리어의 꼭대기를 찍을 줄 아는 방법을 아는 엄마다. 아빠가 계획적이라면 엄마는 즉흥적이다. 아빠의 기본 캐릭터는 무뚝뚝함의 정석인 경상도 남자다. 난 태어나서 아빠가 엄마한테 '사랑한다.' '사랑해'라고 말하는 걸 진짜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래서 사실 그런 아빠가 어떻게 엄마의 마음을 흔들어서 결혼까지 갈 수 있게 마음을 돌렸는지 아직까진 확실하게 잘 모르겠지만 가끔 아빠의 행동을 보면 왜 엄마가 아빠랑 결혼까지 골인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의 사랑은 매 순간 중요한 포인트에서 결정적이었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가만히 무심하게 아무 말도 없이 있다가 기가 막히게 정확한 타이밍을 딱 잡으면 너무 확실하게 행동을 한다. 그러니까 결정적이고 정확한 타이밍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의 대한 아빠의 사랑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따라 경제적 능력으로 발휘했다. 꼭 필요한 차를 선물해 준다던지, 엄마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했던 승진한 순간에 빨간 장미꽃 100송이를 사무실에 배달을  해준다던지, 20년도 더 된 냉장고와 안방의 침대와 같은 가전제품과 가구는 오로지 엄마의 선택과 안목에 집중되어 구매하는 등의 케이스다. 평소에는 무뚝뚝하고 굳이 '사랑'이라는 표현을 말로 해야 될까라는 물음을 가진 남자와 평생을 함께 사는 엄마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엄마가 아빠한테 "평소에 사랑한다라는 표현 좀 해봐.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야 내가 알지. 물론 당신이 사랑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지만, 그래도 표현의 중요성이 있지 않을까?"라고 말을 하면, 아빠는 "굳이 뭐 그런 표현을 하는 게 중요한가. 마음속에 항상 가지고 있으면 되지."라는 어언 30년 부부의 대화. 그리고 그 대화를 들은 즉시 나는 생각한다. "아.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던데. 나도 애정 표현이 없는 남자 만나면 어떡하지."라는 우려 섞인 걱정이 꼬리를 문다. 곧바로 생각을 굳힌다. "에이. 설마~ 아빠보다 더 애정표현이 없는 남자가 이 세상에 또 존재는 하겠어?"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근데 사실은 나도 아빠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굳이 말로 '사랑해'라는 표현을 해야 될까 싶기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냥 서로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그런 소중하고 귀한 말일 수록 결정적인 순간에 뱉어버리면 더 감동이 배가 될 것 같은데. 맛있고 비싼 소고기도 매일 먹으면 질린다.


뜨거웠던 감정을 뜨끈 미지근하게 따뜻하고 예쁘게 잘 가지고 있다가 온도를 적당히 조절해서 감정의 온도를 다룰 줄 아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굳이 막 엄청 애정 표현 해주는 남자를 찾진 않겠지만 뭔가 아빠보다는 표현을 할 줄 아는 남자가 앞에 나타났으면 좋겠다. 단, 표현은 과하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꼭 요즘 시청률 20%인 오래간만에 애정하는 드라마에서 백현우가 홍해인에게 하는 딱 그 정도 말이다. 백현우는 진짜 너무 멋있다. 무슨 일이 생겨도 해인이만 생각하는 그 마음이. 진짜 너무 부러워. 현실에 백현우 같은 남자가 있을까. 오랜만에 또 과몰입한 드라마를 다음 주도 보기 위해서 오늘을 살아간다.


"백현우!! 홍해인!! 내가 꼭 다음 주도 닥(치고) 본(방)사(수)할게!!!!..!!!!!!"

"꼭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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