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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록 Oct 24. 2023

하록필름, 창간호

잔상, AFTER IMAGE


  유년시절부터 경험한 여름의 잔상은 마음과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활동명을 여름 하(夏)에 푸를 록(綠)이라 지은 것과 같이,  사진과 영상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나의 목표는 그 시절 보았던 여름의 풍경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름의 풍경 만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 시절에 집착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과 수를 써도 카메라에 온전히 담을 수 없었다. 이미 그것은 사라졌고,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사라진 것에 대해 슬퍼했고, 스쳐 지나간 것에 아쉬워했다. 


  그렇게 슬퍼하고 아쉬워하는 사이, 몇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시 사진과 영상을 할 용기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속 깊이 머물러야 할 피사체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여름이 지나갔을 때, 정말 우연히 내가 찍은 사진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는데, 분명 사진 속 풍경들은 그 시절과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잔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에게 벌어진 이 현상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고민하며 정의한 바로는, 이미지는 찰나의 순간이었고 내가 담은 피사체는 그 너머의 잔상이었던 것이다. 


   모두 각자의 기억이 있고 추억이 있다. 그에 따라 경험하는 잔상의 형태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이 매개체가 없으면 쉽게 희미해져 버리는 잔상을 오랫동안 명확하게 간직하고 싶은 공통된 마음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내가 담아야 할 피사체는 그 자체로 발현되는 잔상이라는 현상이 되었다. 이 시대, 우리가 당장 눈앞의 형상에 매몰되어 있는 사이 잊힌 진정한 이미지의 가치. 그래서 캐치프레이즈를 잔상, AFTER IMAGE로 표했다. 이미지를 넘어 그곳에 있는 잔상을 마주하고 간직하길 바람에서다.


  여름이 끝나고 계절이 겨울로 향하는 지금, 나는 어린 시절과 변함없이 또 한 번의 여름을 기다린다. 이 기나긴 여정을 거치며 다시 한번 여름을 마주할 때, 유년시절의 것을 넘어 새로이 간직할 잔상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 잔상이 어떤 형태임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다시 한번 나아간다. 그 잔상을 간직한다면, 그리고 그곳에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23. 이하록 올림

하록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harok20_1c/

하록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harok20_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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