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tryJee Oct 29. 2021

대학원 꼰대의 라떼는 이야기-#5

#5. 대학원생의 슬기로운 질병생활

라떼도 석사 병아리 시절에는 건강했고, 실험실에서 힘꾸러기를 담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냉장고도 밀어 옮겼고,  못 여는 병이 없었으며 (autoclave로 압력이 걸린 병이라고 해도 말이다), 매일 밤 10시 11시까지 일을 해도 다음날 거뜬히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0시가 뭔가, 8시만 넘어가도 허리와 다리가 너무 아프고 손이 덜덜 떨리고, 1일 야근하면 4일은 쉬어야 회복이 된다(1주일에 최대 하루만 야근이 가능하단 소리다). 어찌 됐든, 앞일을 예상하지 못한 미련한 대학원생이 꽃 같은 시간과 건강을 연구실에 쏟아 부은결과, 지금은 없는 병이 없고 없는 약이 없으며 비상으로 들고 다니는 약이 일고여덟 종류 정도 되며 집에 약서랍이 2개이다 (약상자 아니다. 약서랍이다).

라떼의 약서랍. 좌; 처방약 위주, 우; 상비약 위주. 다 내꺼. 남편 꺼는 없음.


여러분도 남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질병생활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라떼는 조금 많은 경우지만, 주변 동료 라떼들에게 물어봐도 아픈 곳 두세 군데쯤 없는 라떼는 없다. 오늘은 대학원생의 질병 생활은 언제부터 시작되며, 어떤 질병들이 생길 수 있는지 소개하고, (아무도 실천하지 않겠지만) 슬기로운 질병생활을 실천하는 방법을 제안하도록 하겠다.


1. 대학원생의 질병생활을 결정짓는 요인

1) 나이

말해 뭐하겠는가. 당연히 질병과 나이는 비례한다. Imotalized(불멸) 하게 만든 세포주도 계대배양(세포 증식을 위해 세포가 배양접시를 가득 채웠을 때 세포의 수를 낮추어 새로운 배양접시에 배양하는 방법)을 지속하면 모양이 변하고 상태가 나빠지는데, 수명이 한정된 인간이 무슨 수로 버틸까?

2) 실험실 경력

실험실 경력과 질병은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듯 하다. 처음에는 해가 바뀔 때마다 몸이 안 좋아지는 것 같지만, 5년 차 이상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건강이 뚝뚝 떨어진다. 또 석사들은 대부분 이십대라 그런지 별로 안아픈데,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나이도 나이고 스트레스도 증가해서 한두군데씩 아프기 시작한다.

3) 빌런의 존재

실험실에 빌런급 동료가 존재한다면, 혹은 그 빌런이 교수님이라면? 우리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할 것이고 우리 모두 알다시피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 질병이 빨리, 많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2. 질병 종류

1) 위장병, 소화불량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나이 먹으면 소화 능력이 떨어지기도 하니 자신의 경우를 잘 돌아보도록. 소화제만 먹지 말고 진경제와 제산제도 챙기도록 하자.

2) 두통-두통, 편두통, 긴장성 두통

참지 말고 진통제를 복용하도록 하자. 하지만 두통이 잦아지거나 진통제가 잘 안 듣는다면 꼭 신경과에서 진료를 받아보기를 추천한다. 두통에도 종류가 많다. 머리와 목 뒤 근육이 굳어서 생기는 긴장성 두통도 있고, 혈관과 신경계통의 원인으로 편두통도 있다.    

라떼는 심한 편두통을 가지고 있다. 편두통에 대해서는 몇 꼭지를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이다. 여기서는, '편두통이 한쪽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는 것만 말하도록 하겠다. 욱신거리거나 찌르는 듯 한 두통에 다른 증세-속이 메슥거리거나 눈이 침침하거나 눈이 부시거나 귀가 잘 안들 리거나 오한, 목이 뻣뻣해지거나 등등이 동반하면 편두통이다. 워낙 동반 증상이 많아서 라떼가 진료를 가서 '교수님 혹시 이런 증상이 나타났는데 혹시...?'라고 하면 '네, 편두통입니다.'라고 하신다.

두통약은 약을 자주 먹지 않는다면 타이레놀, 다음 단계로는 펜잘, 게보린이 있고, 긴장성 두통이나 편두통엔 마이드린, 미가펜을 약국에서 살 수 있고 이 모든 게 잘 듣지 않는다면 당신은 심각한 수준이니 병원에 가라. 꼭.

3) 거북목/라운드숄더/디스크

우리는 필연적으로 컴퓨터를 많이 쓰기 때문에 대부분 가지고 있는 질환이다. 바른 자세밖에 답이 없다. 라떼의 실험실엔 커블을 공동구매했다. 척추에는 도움이 되는데 거북목에는 도움이 안된다. 의식적으로 바로 앉자.

4) 안과질환

안구건조와 노안이 있다. 웃지 말길. 현미경을 많이 보다가 혹은 어두운 데서 형광현미경 사진 찍다가 30대 중반에 노안이 온 선배가 실제로 있다. 약은 없다. 예방이나마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줄이길.

5) 관절질환

그냥 관절 많이 써서 그렇다. 라떼는 '방아쇠증후군'이 생겼다. 손을 안 쓰고 쉬어야 한다는데, 손 안 쓰고는 실험을 할 수가 없더라. 왼손이었는데, 우리가 생각보다 실험할 때 왼손을 많이 쓴다는 걸 알았다. 튜브 뚜껑은 모두 왼손으로 여닫고 모든 받치고 잡는 것도 왼손이다. 다행히 아직 관절염은 아니라더라.

손목이나 손가락이 아픈 경우는 파스 붙여보고 찜질하고(무조건 온찜질이랬다. 선생님이) 실험이나 마우스를 많이 쓰게 되기 전에 미리 관절에 파스나 테이핑을 한 후에 일을 하면 좀 덜 아프다. 이건 병원 가도 소용이 없다. 관절에 염증이 생기거나 물이 차지 않는 한 이상 없는데요 라고 한다.

6) 면역력 저하로 인한 잡다한 질병 - 감기, 장염

뭐.. 그렇다. 30 넘어간 이후로 떨어지지가 않는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가족은 괜찮고 나만 화장실에 간다. 감기는 초장에 잡는 게 중요하다. 목이 칼칼하다 싶을 때, 재채기가 나올 때, 오늘 추운 날씨가 아닌데 왜 나는 좀 춥지? 싶을 때, 감기약을 먹어라. 증상에만 듣는 코감기약이나 목감기약보다는 종합감기약을 먹는 게 좋다. 왜냐하면 감기는 어차피 종합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감기 오는 것 같다고 항히스타민제 먹으면 콧물은 나지 않지만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고 오한이 날것이다.

장염은 약이 따로 없다. 먹는 걸 조심해야 한다. 한번 먹고 탈 난 음식은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이니 되도록 먹지 않도록 하고, 평소 유산균을 꼭 챙겨 먹도록 하자.

7) 우울증

이건 뭐... 가벼운 단계에서 심각한 단계까지 다양할 것 같다. 가벼운 우울증이야 누구나 있지 않나? 실험이 잘 안될 때, 현타가 올 때, 교수님께 까일 때 등등. 아는 교수님은 아직도 삼 개월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하신다고 했다. 교수가 돼도 힘든 건 힘든 건가 보더라. 가능하면, 일(실험실)과 생활(집)을 분리하는 걸 추천한다-정신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휴식을 갖자. 온전한 휴식을. 중요한 건 일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8) 귀 관련 질환

라떼는 최근에 이명이 생겼다. 삐이- 하는 소리가 나는 건데, 그러다 만다. 근데 이게 하루 종일 나면 큰일이니 이비인후과를 가도록. 원인은 주로 스트레스라고 하더라. 동료 라떼 박사님은 귀가 먹먹하게 잘 안 들리다가 난청으로 발전하셨다. 흔치는 않지만 이석증도 있다. 이석증은 어지러운 건데, 일반적으로 어지럽고 현기증나는 느낌이 아닌 눈앞이 회전하듯이 빙빙 도는데, 특정 방향으로 머리를 두면 회전감이 사라지고 다른 방향에선 회전감이 느껴지면 이석증이다. 이비인후과에 가면 고글 같은걸 씌우고 머리를 빙빙 돌려서 이석을 제자리에 넣어주신다.


3. 슬기로운 질병생활

1) 운동

이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만고 불변의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변에 운동을 하는 대학원생은 10%도 되지 않는다. 라떼는 건강검진에서 겨우 숨만 쉬고 살 정도의 근육량을 가졌다고 했었고, 연구실이 있는 20m도 안 되는 낮은 오르막 오르는데도 숨이 차서 헉헉댔다. 라떼는 이러다가 남편을 두고 일찍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운동을 시작했고 첫 번째 목표는 연구실 오르막을 숨 안차고 오르는 것이었다. 라떼는 등산하다 기절해본 적도 있다. 여러분, '오래 살고 싶으면'이 아니고, 말년 혹은 중년에 병원에서 호흡기 달고 보내고 싶지 않으면 꼭, 꼭 젊을 때 운동해라. 그리고 운동은 약간 숨찰 정도로 해야 하는 것 같다. 이건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처음에 걷기 두 시간 할 때는 체력이 오르지 않았지만 약간 숨차게 운동 삼십 분씩 했더니 오히려 체력이 좋아졌다. 이 분야는 다른 운동 전문가들의 도움을(블로그라도) 받기 바란다.

2) 스트레스 안 받기

아...... 오늘 포스팅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라떼는 성공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왜 '같은가' 하면 라떼가 병아리 시절엔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아 화를 내고 울컥하는 일이 잦았는데 요즘은 교수님한테 혼나든, 동료가 속을 썩이든 그러려니... 아 이놈이 또... 이러고 마는데, 오히려 그러고 나선 꼭 몸에 탈이 나곤 하니 말이다. 정신적 대미지를 방어했더니 물리적인 대미지로 변환해서 공격하는 것인지??

아무튼 매우 이론적이고 판타지 같은,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나라에서 가능할 법한 이야기이지만, 여러분은 실천해 보시고 성공하신 분은 답글 달아주시길 바란다.   

3) 아프면 약 먹어

아프면 약을 먹도록 하자. 주변에 아파도 약을 잘 안 먹는 친구들이 많다. 심지어 생리통에도 말이다. 정말로, 생리통에는 먹자. 한 달에 한 번인데 진통제 내성이라니. 그건 그냥 통증 유발물질(PGF2 alpha라고 한다)을 만드는 특정 효소(Cyclooxygenase라고 한다)를 억제하는 거다(전문적이어서 미안하다. 내가 이 얘기에 한이 많아서 그런다). 진통제 내성 같은 건 한 달에 스무 번씩 일 년 내내 두통약을 달고 사는 나 같은 라떼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위에서 질병 종류를 소개하면서 약도 같이 소개했다. 두통약, 소화제, 위장약, 감기약 등등. 위에 소개한 것에서 빠진 건 비타민 D(우리는 해를 못 보니깐), 아연(면역력에 좋다더라) 정도이고, 술 좋아하거나 간이 안 좋다면 밀크시슬도 챙겨 먹도록 하자.

4) 아프면 병원 가

안다. 병원 갈 시간 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하지만 우리가 연월차 없는 대신에 낮에 외출 정도는 가능하지 않나? 그리고 어릴 땐 약안 먹고도 낫고, 조금 지나면 약 먹으면 낫지만, 조금 더 지나면 병원 가야만 낫는 나이가 된다. (실험실 n연차가 되면 병원 약으로도 잘 낫지 않는다.  그저 안 아픈 게 최고다.)

편두통 심하면 병원(신경과) 가고, 감기도 초장에 약 먹고 안 나으면 바로 병원(내과) 가고, 안과, 이비인후과 질환은 무조건 병원 가라. 장염은 약국에서 주는 약이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차라리 한두 끼 굶고, 죽-> 밥을 순으로 식이를 조절해보고도 아프면 병원(내과)에 가도록.

마지막으로, 흔치 않은 경우지만 심한 우울증도 병원에 갔으면 좋겠다. 친한 후배는 실험실에서 졸업과 교수님의 괴롭힘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그 착한 녀석이 혼자 속 끓이다 병원에 갔다니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지만(그렇게 까지 힘든 줄 몰라서 미안해서 그랬다), 녀석의 결정엔 박수를 보낸다. 라떼는 전공이 신경과학이라 '우울증=뇌의 질병'이라는 인식인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팩트는 이거다. 우울증은 뇌의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인한 것이다. 자신 없고 불안하고 울 것만 같은 기분도 약 한 알로 평온해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감을 찾아서 한 발 한 발 나가면 되는 거다.


오늘은 라떼가 직접 겪거나, 주변에서 보고 들은 얘기를 토대로 대학원생이 많이 겪는 질병과 대처법을 소개해봤다. 몇가지는 흔하지 않지만, 대부분은 여러분도 흔하게 겪는 것일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대학원생이-오래묵은 대학원생일수록 아픈데가 많더라. 대학원생 뿐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여러분들이 불시에 아플때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됬으면 하며, 슬기로운 질병생활을 실천하시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대학원 꼰대의 라떼는 이야기-#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