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찬우 Apr 08. 2024

노후준비

돈과 시간의 상관관계

얼마 전 한 신문에 노후자금으로 평균 한 달에 360만 원가량 필요하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360만 원,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에서 딱히 경제생활을 하지 않고 그 정도의 돈을 매달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그리 많아 보이질 않는다. 


이 기사엔 노후에 매달 실제로 얻을 수 있는 돈의 평균치는 212만 원이라는 내용도 함께 있었다. 그러니까 기사 내용만 가지고 따지면, 노후에 필요한 돈은 360이고 실제로 벌 수 있는 돈은 210, 결국 평균적으로 매달 150만 원 적자라는 뜻이다.


물론 평균치의 함정이 가진 한계는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 이런 내용을 통해 자신의 노후에 대해서 생각해 볼 만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후에 대한 걱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나는 과연 퇴직 후 매달 360만 원이란 돈을 확보할 수 있을까? 그것도 겨우 평균치인데...


국민연금, 개인연금, 은행 이자, 주식 투자, 상가나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월세, 집을 담보로 받을 수 있는 역모기지론, 자녀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용돈, 이도저도 안된다면 재취업 등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360만 원이란 돈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서 결국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비슷한 결론이 나올 것이다. 돈을 벌 수 있는 동안 꽤나 운이 좋았다면, 혹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10년 동안 10억 모으기와 같은 목표로 돈만 모으고 살았다면 모를까, 딱히 별생각 없이 살아왔다면 머릿속에 노후에 대한 걱정이 자리를 잡고는 실제 노후가 올 때까지 떠나질 않을 것이다.


평범한 우리들의 노후는 원래 그렇게 희망이 없는 것일까? 물론 그 정도는 아니다. 일단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소한 먹고는 살 수 있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다. 우리는 훨씬 이전부터 살기 위해 먹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먹기 위해서 산다. 삶은 이미 양이 아닌 질로 정의되고 있으며, 다들 생존이 아닌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니 단순히 먹고만 살다가는 조금만 불행해져도 금세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이 삶을 왜 이렇게 꾸역꾸역 살고 있지? 그리 행복하지도 않은데 말이야' 


어떻게든 월 360만 원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도 최소한이다. 좀 더 인간다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마도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 벌었던 수준의 돈이 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더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퇴직과 함께 우린 축복이자 저주를 동시에 받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다. 직장에 얽매여서 쓰지 못했던 엄청난 시간이 축복처럼 주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남아도는 시간의 저주 역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추가적인 돈이 필요하다. 돈을 벌 땐 돈 쓸 시간이 없지만 돈을 안 벌 땐 돈을 쓸 시간이 남아돈다.


결국 그것을 실제로 이룰 수 있을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노후준비는 돈을 벌 수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돈을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머릿속엔 언제나 돈으로 가득 차 있다.


힘든 일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슬픈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번 잘 생각해 보자. 노후준비라는 것이 정말로 앞에서 나온 최소한 매달 360만 원을 확보하는 것이어야 할까? 우리가 철석같이 믿듯이 돈만 충분하면 노후준비는 끝난 것일까?


아니다. 원래부터 노후준비는 돈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노후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돈이 아닌 '시간'이다. 돈은 그저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필요하다고 믿어지는 꽤나 좋은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린 제대로 된 노후준비를 하기 위해서 시선을 돈에서 시간으로 옮겨야 한다.


우리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퇴직 후 나에게 주어질 수 십 년의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 삶을 통해 주어지는 막대한 시간들을 도대체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나는 그 시간들을 무엇을 하며 행복으로 채워나갈 것인가?


우린 지금껏 돈만 유일한 해결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오직 돈만 있으면 삶이 행복할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니 노후대책은 오직 돈만 모으면 완성이 된다.


하지만 심각한 착각이다. 만약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딱히 하고픈 것이 없다면 매일 주어지는 시간을 소비하기가 버거워서 심심함, 지루함, 더해서 우울함에 빠져 삶이 불행해지고 만다. 반대로 돈이 별로 없더라도 매일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만큼의 삶을 산다면 은퇴 후 제2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꼭 돈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다시 일을 하기도 한다. 돈을 벌면서 사실상 시간을 소비하려는 것이다. 나름대로 현명한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히 힘들면서 적당히 돈을 버는 일을 찾아야 한다. 운이 꽤나 좋아야 할 것이다.


퇴직 후 시골에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 새로운 취미를 배우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해보지 못한 여행을 하거나 힘들지만 자기 계발을 위해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TV나 유튜브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결국 각자에게 추가로 주어진 시간을 많은 돈을 쓰지 않고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면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노후준비가 된다. 단지 우리가 여기에서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바로 그 방법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부분이다.


퇴직 후 몇 년 동안은 정말로 행복하지만 너무 많은 돈이 들거나, 쉽게 질려버리거나, 하고 싶어도 몸이 따르지 않아서 못하게 되거나, 건강이 따라주지 않거나 하게 되면 그때부터 준비해 왔던 노후의 계획은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게 된다. 시간은 금세 저주가 되어 버리고 만다.


어떤 것들이 좋을까? 과연 무엇을 하면서 노후를 보내는 것이 좋을까? 돈도 많이 들지 않으면서 위험하지도 않고, 나이를 먹어도 충분히 즐길만하면서 적당이 즐거움도 있는 것, 과연 그런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또 어떻게 미리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사실 몇 가지 좋은 후보군이 있긴 하다. 단지 각자에게 잘 맞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책 읽기는 참 좋은 노후준비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엔 도서관이 참 많으며 거기엔 참 많은 책들이 있다. 다 공짜이다. 책을 읽는 취미를 가질 수 있다면 그만한 것도 없다. 무료인 데다가 질릴 리도 없고 더해서 나이를 아주 많이 먹어도 할 수 있다. 심지어 남들이 보기에도 그럴싸하다.


클래식 음악 듣기도 괜찮다. 너무 빠져서 연주회를 보러 다니거나 고가의 스피커 모으는 일만 하지 않는다면 초기 음반 구입 비용만 지불하여 참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


좋은 친구들을 적당히 사귀는 것도 아주 좋은 선택지이다. 단지 그 친구들과 함께 할 때 돈이 많이 든다면 그것은 노후를 위한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없다. 친구와 함께 골프, 음주가무, 공연, 여행 등을 즐긴다면 노후자금을 충분히 모아놨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글쓰기는 난이도는 꽤나 높지만 할 수 있다면 아마도 가장 좋은 후보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고, 자신을 돌아보는데도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이라도 얻게 되면 그만한 즐거움도 없다. 뭐, 꼭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게임을 하는 것도 괜찮다. 컴퓨터 게임은 일명 현질만 하지 않는다면 돈이 참 안 드는 행복한 행동 중 하나이다. 사람과 만나 수다를 떠는 것도 참 좋은 것들 중 하나이다. 커피 한잔 값이면 몇 시간이 그냥 지나간다. 특히 삶의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런 주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사귈 수 있다면 그것은 인생의 축복이라고 할 만하다.


꾸준히 하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하는 것도 좋다. 등산, 트레킹, 수영 같이 너무 격렬하지 않아서 나이를 먹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나 이상으로 반복해서 건강도 챙기고 시간도 잘 보낼 수 있으면 좋다. 같이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더 좋고.


요리를 배우는 것도 나름대로 좋다. 먹는 것은 죽을 때까지 필요한 일이고, 맛난 음식을 먹는 것은 꽤나 행복하다. 그리고 요리를 잘한다면 생활비도 나름대로 절약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접근이 쉽고, 꾸준히 반복 가능하며, 돈이 많이 들지 않고, 남에게 딱히 피해를 주지 않고, 늙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하면 된다.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내가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면 된다. 같이 할 친구를 구하면 더욱 좋다.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노후준비는 그것을 찾는 과정이어야 한다. 평균적으로 필요하다고 알려진 360만 원이라는 돈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나에게 잘 맞는 가장 저렴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돈은 그저 먹고살 수 있을 정도만 있으면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가능하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해야 쉽다. 나이 먹고 시작하면 모든 것이 어렵다. 


나이 먹고 처음으로 책을 읽는 것은 힘들다. 클래식을 듣는 것도 쉽지 않다. 운동을 하는 것도 어렵다. 요리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것들을 공통적으로 처음 할 때는 꽤나 힘들다. 책은 잘 읽히지도 않고 음악은 들으면 다 그게 그거고 운동을 하면 줄어든 근육이 못 견딘다. 내가 만든 음식은 도대체 맛이 없다. 하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꾸준히 하게 되면 점점 익숙해지면서 할 만 해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점점 행복해진다.


우리는 평생 커다란 착각에 빠진 채 헤어나질 못한다. 원래 돈은 쓰는 게 진짜 목적인데도 평생 돈을 버는 것을 목표로 하며 살아간다. 돈은 써서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진짜 목적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잘 쓸지에 대해서 정말로 많이 생각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벌 땐 그렇게 고민하면서 쓸 때는 그토록 충동적이다.


자신이 힘들게 번 돈을 가장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일, 그 방법을 통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주어진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자신을 적응시키는 일이 우리가 앞으로 다가올 노후까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걱정을 걱정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