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몇 해전 일본에서 한 만화책이 갑자기 크게 이슈화된 적이 있었다. 만화의 나라 일본이니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실제로는 드래곤볼이나 원피스 같은 유명한 작품도 아닌데도 그랬다.
만화책은 '내가 본 미래'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이었고, 그렇게 갑자기 유명해진 이유가 전혀 만화스럽지 않는 것이었는데, 바로 이 만화책이 미래를 예언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만화책의 제목처럼.
사실 이 만화책이 1999년 처음 나왔을 때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1년도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이후 만화책 내에서 해당 지진에 대한 예언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우리나라에서 조차 이 만화책의 최신본을 팔고 있다.
예언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마도 노스트라다무스일 것이다. 그 이외에도 타라빅 형제, 에드거 케이시, 바바 반가, 탄허스님 등등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예언가들이 역사 속에서 존재해 왔다. 그리고 그들의 예언을 본 사람들은 그들의 예언이 잘 맞은 것에 대해 매우 놀라워하거나 혹은 결국 꿰어 맞추기 식 해석에 불과하다며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잘 맞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고, 반대로 꿰어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다 보면 인간은 참 사기를 잘 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만약 혹시나 누군가 정말로 미래를 알 수 있다면 그것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그럴 수 있는 사람만 만날 수 있다면 나의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을 통해 다음 주 로또 번호를 미리 알 수 있는 것일까? 혹은 전쟁이나 인류의 멸망 여부를 미리 알 수 있는 것일까?
뭐, 분명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예언이 맞는다는 말의 의미에는 생각보다 무거운 진실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는 말에는 미래가 이미 모두 결정되어 있다는 가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약 매 순간 일어나는 사건들이 그저 우연에 불과하다면 처음부터 미래를 예언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만다.
과거에 프랑스의 유명한 수학자 라플라스는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것은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 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다"라는 표현을 했다.
그러니까 단지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뿐 만약 우리가 이 우주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주장을 결정론이라고 하는데, 이와 비슷한 운명론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종교적인 입장에서 미래가 신에 의해서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운명론이고 과학적 입장에서 나름대로 이론적인 근거를 통해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결정론인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이론 모두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니 예언이란 행위가 가능해지려면 미래는 반드시 둘 중 하나여야 한다.
물론 라플라스의 가정은 이미 틀렸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원자의 움직임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는 원자가 물질의 가장 최소단위였지만 지금은 훨씬 더 작은 양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양자는 절대로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없다. 그저 확률로만 예측 가능하다.
뭐, 아주 더 먼 미래엔 이 우주의 모든 양자에 대한 정보를 다 알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라플라스의 결정론이 결국엔 맞는 말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는 아니다.
미래가 운명론이든 결정론이든 상관없이, 만약 예언이라는 것이 진짜로 가능하고 그래서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대로 흘러간다고 했을 때 거기에 과연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 그저 우리가 미래를 미리 알 수 있어서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사실 예언은 생각보다 아주 무서운 가정을 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가졌다고 굳게 믿고 있는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가 부정되고 만다.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예언이 가능하다는 말이 가진 의미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매일 어떤 선택을 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을 실행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마치 똑같은 기능을 반복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그렇다. 매 순간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것을 반복할 뿐이다.
거기엔 어떠한 노력도, 의지도, 목적도 존재할 수 없다. 성공이나 실패, 누군가 이룬 성과도 개인이 달성한 목표도 무의미해진다.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니까.
그러니까 무당을 만나 이번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를 묻거나, 점성술사를 만나 이번에 만난 사람과 잘 될지 여부를 묻거나, 궁합이나 사주팔자를 보러 가는 순간 그 사람은 자신의 자유의지가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그런 사람들조차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믿으면서도 자신이 매 순간 자유의지로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의지와 노력을 통해 뭔가를 이뤘다고 믿는, 전혀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을 하고 있긴 하다.
여기에서는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믿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저 그렇게 믿으면서도 자신의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 아이러니함이 문제가 될 뿐이다. 둘은 동시에 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예언에 관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바로 도대체 왜 특정한 사람들만 예지몽과 같은 기이한 현상을 통해서 미래를 볼 수 있느냐에 관한 점이다. 그들은 뭔가 이미 알려진 시공간과는 다른,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별도의 채널에 접속이 가능한 특정한 능력을 타고난 것일까?
물론 이 모든 가정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사례를 기반으로 판단하기에 분명히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이 진실인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개인적인 관점에서 예언이란 행위가 가능하길 바란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사실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사라질 수는 있지만 사실 미래가 결정되어 있든 우연함의 산물이든 상관없이 결국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둘 모두 미래를 전혀 모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미래가 정해져 있으면 뭐 하겠는가? 모르면 똑같이 우연함으로 경험될 뿐이다.
현대의 과학에서는 예언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운명론보다는 결정론을, 결정론보다는 우연함을 기반으로 한 세상을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우리가 이 우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난 착각이라면?
그 착각의 증거로써 미래가 예언 가능하다는 것이 충분히 쓰일 수 있다. 그러니까 만약 정말로 예언이 가능하다면 빅뱅이 우연함의 산물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대로 일어났고, 이 우주가 우리가 모르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론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봄은 자신이 주장하는 홀로그램 우주론을 통해 이 우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차원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숨겨진 질서라고도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 우주는 그저 양자의 요동으로 인해 우연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그저 전혀 모를 뿐 어떠한 명백한 질서와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진화되어 가고 있는 중이란 뜻이다.
우리 인간도 이 우주의 일부로써 분명히 그런 존재가 될 가능성 있다. 그리고 홀로그램 우주론에 대한 실제적인 증거도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그러니까 아무 근거 없이 주장하는 사이비 이론만은 아닌 셈이다.
인간의 머리는 참 좋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 우주가 왜 생기게 되었는지 전혀 모른다.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부분은 빅뱅이론으로 어느 정도 정설화 되어 있지만 그 이유만큼은 전혀 모른다. 또한 우리 각자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생명의 탄생 과정은 이제 많은 것들이 밝혀졌고, 남녀의 만남 그리고 임신과 출산을 통해 우리가 태어나는 과정이 모두 밝혀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들 자신이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모른다. 물론 이미 종교를 믿고 있거나 지금껏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인 사람들은 신의 뜻이거나 혹은 그저 DNA의 연속성에 이바지하는 중간고리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겠지만, 무엇인가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목적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을 가능성도 있다.
현실적으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 초끈이론이나 빅뱅이론이 증명되거나 외계에서 인간 이외의 생명체가 발견될 가능성은 있을지 몰라도 이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내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미래가 예측 가능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위한 작은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본 미래' 속에 나오는 아직 실현되지 않는 하나의 예언이 실제로 일어날지 여부를 관찰해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 만화를 그린 작가 타츠키는 해당 만화의 완전판을 새롭게 내놨는데 거기엔 2025년 7월 5일 4시 18분에 일본과 필리핀 어디쯤에서 해저화산이 분화하여 거대한 쓰나미가 밀어닥칠 것이란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 쓰나미의 높이가 동일본 대지진의 세배 정도 될 것이라고 한다. 만약 실제로 일어난다면 2011년과 달리 우리나라 남부해안도 커다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당연히 이 예언은 맞지 않아야 하겠지만, 만약 일어난다면 거기에서 우리 스스로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가정이 다 거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어차피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면, 그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영혼의 존재를 믿어서 죽은 후에도 '내' 삶이 여전히 이어져서 천국에 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이 세상이 죽으면 끝인 그런 것은 아니었으면 하는, 작은 숨구멍이라고 믿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