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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Dec 12. 2022

욕망과 희망 사이

어떻게 살 것인가?

살다가 보면 이 세상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살지 못하고, 떠나고 싶은 곳으로 떠나지 못한다. 슬프기도 하고 때론 심한 좌절감이나 자괴감까지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제 파악을 하여 할 만한 것만 하고, 가질만한 것만 갖고, 살만한 곳에서만 살고, 떠날만한 곳으로만 떠난다.


이것은 일종의 현실적 타협이다. 그래서 다들 마음 한편엔 여전히 하지 못한 것, 갖지 못한 것, 살지 못한 곳, 떠나지 못한 곳에 대한 자석과도 같은 끌림이 존재한다. 이것은 마치 꺼진 듯 보이지만 사실은 결코 꺼지지 않을 재 속에 숨겨진 불씨이다.


그나마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것들, 그러니까 세상 경험이 적었던 젊은 시절에 원했던 해외 일주 여행이나 비싼 명품백과 같은 것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불씨조차 꺼져서 기억에서조차 사라지고 말지만 삶에서 필요한, 아니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꺼지질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점점 더 많은 연기를 만들어 내어 우리를 괴롭힌다. 그 괴롭힘의 강도가 커질수록 매일같이 실망은 좌절로, 좌절은 원망이나 피해의식 또는 자괴감으로 그 형체를 바꿔간다.


삶이 괴롭지 않을 수가 없다. 그냥 큰 욕심 내는 것도 아닌데 남들만큼 사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해결 방법도 없다. 지금껏 얻지 못한 것들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그나마 숨통이 틔이는 곳은 주식, 코인, 로또와 같은 행운이다. 하지만 당연히 쉽지 않다. 뭐든 내가 사면 떨어지고 내가 팔면 오른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들 대부분은 동네 슈퍼에서 하는 경품행사조차 변변히 당첨된 적이 없다.


삶이 너무 괴롭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다른 차선책을 찾아야 한다. 이때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법정스님의 '무소유'이다. 물론 그 책에 공감한다고 해서 우리가 법정스님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분의 말씀을 듣다 보니 내면에 어떤 변화가 느껴지며 평온해진다.


무소유뿐만이 아니라 많은 지혜로운 삶을 말해주는 책들에서 비슷한 말을 한다. 그 책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삶이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한다. 단지 문제는 그것을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마음속에 가득 찬 욕망을 내려놓으려 애쓰고, 남의 삶을 바라보는 일을 최대한 줄이려 하고, 최대한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남은 문제가 하나 있다. 그렇게 살다가 보면 평소엔 제법 괜찮은 데 아주 가끔씩 뭔가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난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있다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나,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졌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나, 내가 살고 싶은 곳에  살고 있다는 사람을 봤거나, 내가 떠나고 싶은 곳으로 떠난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었을 때가 그렇다. 내 안에 남아 있던 불씨에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물론 바람으로 일어난 불씨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다시 불씨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덜컹하는 마음을 경험한 우리는 그 일을 또다시 경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어쩔 수 없이 바람은 또 언젠가 불기 마련이니까. 그때가 되면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내가 괜찮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것보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착각에 빠져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마음을 비우면 그 불씨가 사라질 것이란 착각이다. 물론 마음을 비우면 불씨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 불씨가 사라지게 되면 우린 어떤 존재가 되게 될까?


과연 뭐가 하길 바라고, 갖길 바라고, 살길 바라고, 떠나길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그것들을 모두 마음속에서 내보내야 하는 것일까? 원하는 대로 그것들을 다 내보냈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무엇인가를 원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바로 '희망'이나 '소망'이다. 하지만 우린 비슷한 다른 말인 '욕망'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 둘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사전적 의미는 다르게 설명하겠지만, 희망에 집착이 달라붙으면 욕망이 된다. 그러니까 희망을 집착하기 시작하면 욕망이 된다는 뜻이다. 다른 좋은 것들인 열정이나 몰입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도 집착이 달라붙는 순간 마법과 같이 중독이란 단어로 바뀌고 만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 집착이 붙으면 편집증이나 속박이 되고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집착이 달라붙으면 똥고집이나 꼰대가 되고 만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집착이 달라붙는 순간 우리가 흔히 '나쁜 것'이라고 칭하는 것들로 바뀌는 것이다.


사실 뭔가를 바라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직 거기에 달라붙은 집착만이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뭔가를 바라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면서 나간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삶보다 훨씬 더 낫다. 그저 바라기만 할 뿐 집착하지 않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그 답은 참 쉽다. 우리가 처음부터 뭔가에 집착하려는 이유는 세상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물살이 센 시냇물에서 살아가야 하는 생명체는 물살에 떠밀려 가지 않기 위해서 가능하다면 근처 바위에 단단히 자신을 부착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떠밀려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게 될지 모른다.


삶의 본질은 흐르는 물과 같다. 그래서 예측 불가능하며 끝없이 변칙적이다. 그런데 그런 삶의 본질이 너무도 불안한 우리들은 가능하다면 어딘가에 자신을 단단히 고정시키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집착의 본질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것, 어딘가에 단단히 고정되고 싶은 것, 단단해 보이는 것들을 갖고 싶은 것, 이것이 바로 집착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까?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삶의 변칙성을 너무도 싫어해서 근처 바위에 자신의 몸을 부착하듯이 스스로를 어딘가에 단단히 메어두려고 한다. 사람에 따라 돈에, 관계에, 성공에, 명성에, 취미에, 생각에, 책에, 공연에, 여행에, 운동에, 술자리에, 여자에, 남자에, 가족에, 자식에 집착한다. 그러니 집착을 하지 않고자 한다면 그저 삶의 변칙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삶은 원래 그렇다. 삶은 결코 내 뜻이나 나를 위해서 흘러가지 않는다. 그것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집착이 설 자리는 없다.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살고 싶은 곳, 떠나고 싶은 곳은 오히려 많을수록 좋다.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삶을 에너지 있고 즐겁고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집착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거나, 포기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마음속 불씨를 안고 살아가면서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못하는 허깨비 같은 삶을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우리가 사는 동안 끝없이 뭔가를 원하는 이유는 그저 '살고 싶어서' 그렇다. 그러니 우리는 잘 살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것들을 원해야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토록 살길 원하는 삶의 또 다른 측면엔 언제나 죽음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희망은 이뤄질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다. 똑같은 희망도 어떤 사람에게는 이뤄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것 역시도 삶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희망은 품고는 있어야 한다. 로또가 되고 싶다면 적어도 로또는 사야 하지 않겠는가?


희망을 이루고 싶다면 그 희망이 잘 이뤄질 방법을 향해 나가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이뤄질지 여부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가 충분히 노력했다면 그것으로 됐다. 노력하는 동안 이미 충분히 행복하지 않았는가?


원래부터 삶은 과정을 즐기는 것이지 죽음이라는 결론에 도착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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