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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Jun 18. 2024

오늘 아무 탈 없이 잘 지내셨습니까

ft. <작별인사>, 김영하 저

김영하 작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말을 잘하고 아는 것 많다는 생각을 했다.  책은 제목처럼 삶에 대한 이별 정도로 생각했는데, 장르는 sf다.

김영하 작가말하는 것처럼 글을 썼다. 다양한 이야기를 흐름에 맞게 글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썼다. 기계가 인간처럼 살아가는 것, 또 인간이 기계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철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기계든 인간이든 수명을 다하면 끝이 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은 단 한 번 죽음에 대한 경험을 한다.  기계는 그렇지 않지만, 백업하면 그만인데, 다시 프로그래밍을 통해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은 죽음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두려워한다. 간접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슬픔을 겪고, 고통과 분노를 끓어 안으며 한동안, 혹은 평생 잊지못 할 경험을 통해 죽음으로부터 얼마나 살아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느끼는지에 대해 경험한다. 그래서 죽음이란 주제로 삶과 연결시켜 물음을 던지는 것은 아닐까. 만약유한할 것 같은 시간이 몇 시간 뒤 끝이 난다면, 절박하게 시간을 보내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 그냥 내게 주어진 것을 찾아 살아내고 살아가고, 그냥 살면 되는데, 쓸데없는 생각과 생각은 또 다른 어둠으로 이끌고 간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얼마나 인생이 허무할까. 정처 없이 길을 걷다가 보면 걷기가 싫을 때가 있다. 앉아서 쉴 곳이 있으면 다행인데, 없으면 계속 걸어야 하고, 배가 고프면 간식을 먹고 허기를 채우면 다행인데, 어쩔 수 없이 배고픔을 참고 이겨내야 할 때는 참아내는 수밖에 없다. 걷다가 목적지에 다다르고, 일을 보고 다시 돌아온 길을 향해 걷고, 또 걷는다. 제 각기 지나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간다. 돌아갈 집이 있어서 다행인데, 돌아갈 집이 없다면 오도 가도 못하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단숨에 걸어가 언덕의 고비만 넘기면 되는데, 걸음 무거워지고 힘 겨우면 쉴 곳을 찾아 앉는다.


벤치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과 산자락에 자리 집이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땀을 흘려 걷고, 온몸의 감각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천천히 한걸음 걸음 옮겨 바람을 맞아가며, 계단을 오르다 보면 집에 다다른다. 환경이 뒷받침이 되고, 여건이 충족되어 길을 걸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종종 발생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고, 걷고, 삶이 계속되는 한 걸어야만 한다. 나이가 들어 건강하게 살면 좋겠지만, 살아온 세월만큼 아픈 대가 있다. 이를테면, 눈치를 본다거나, 사람을 피해 은둔생활을 한다거나, 육신의 한계에 기본적인 생리현상조차 어렵게 될 때, 걸을 수 있다면 걸어야만 산다.

동네에 아이 말을 잘한다. 놀이터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뛰어다니는 아이 살아있다. 뛰어다니는 아이한테, "어디 가셔" 물으면, 다리는 움직이고 고개는 휙돌려 쳐다보고 그냥 간다. 나이 든 어른같은 부채를 들고, 같은 팀이라며 어제의 힘듦을 토로한다. "어제 힘드셨어?" "아이고, 말도 말어." 그리고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걷는다. 그러다 보면 두 다리힘이 생기고, 몸과 정신이 균형을 찾아가며, 편안함 휴식을 통해 오늘도 살아냈음에 감사해한다. 삶은 다 다르지만, 오늘도 안부를 묻는다. 오늘 평안하셨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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