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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 Jun 27. 2021

1. 진리, 자기 유사성의 오류

 "인간의 도덕, 윤리, 진리는 어디서 온 것일까? "


 과거 많은 철학자들은 이 질문의 근원적 대답을 종교, 신에게서 찾았다. 심지어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과학 역시,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현실에는 다양한 증거들이 존재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등 여러 증거가 신의 이름 아래 펼쳐졌던 많은 이론들을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도덕, 윤리, 진리에 대한 절대성은 20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절대성의 또 다른 이름은 독재였다. 제국주의, 세계대전, 대량학살. 인간이 찾고자 했던 절대적 진리는 서늘히 잘려나간 청년들의 팔다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상대주의다. 절대적인 사상은 없으며, 모든 사상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입장의 상대주의. 언뜻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 이 사상에도 커다란 결함이 있다. 모든 사상을 존중한다는 의미는 자신과 반의 관계에 있는 '절대주의'역시 존중해 줘야 한다는 의미다. 

 

 논리학에서 이와 유사한 문제점을 가진 명제가 존재한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

해당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문장을 흔히 거짓말쟁이 문장이라고 하는데, 이 문장은 참도 거짓도 아닌 문장이다. 참이라고 선언하면 문장은 거짓이 되고, 거짓이라고 하면 다시 참이 된다.

 이런 참 거짓이 순환하는 이유는 바로 '이 문장'이라는 명제에 있다. '이 문장'이라는 전체 명제의 한 부분이 전체 명제인 '이 문장은 거짓이다.'를 포함하게 된다. 이를 자기 유사성, 기하학에서는 프랙탈이라 한다.

 이제 상대주의로 돌아가 보자. 상대주의의 정의를 보면

"절대적인 사상은 없으며, 모든 사상을 존중해 줘야 한다."이다.

해당 문장을 A라고 하자. A라는 문장이 하나의 절대적 진리로 작용하여 생기는 오류다. 상대주의라는 명제를 선언한 순간부터 상대주의는 하나의 절대적 진리로 판단한다. 그리고 상대주의 자체 안에 자기 유사성을 지니게 된다. "절대적인 사상은 없다."로 인해 상대주의라는 하나의 절대적 진리는 참도 거짓도 아닌 순환 명제가 되어 버린다. "모든 사상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문장 역시, 상대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절대주의 역시 존중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이런 논리적 모순으로 인해,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일까? 이러한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는 ‘진리’라는 단어 자체에서 발생한 것이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라는 의미 자체가 하나의 절대적 진리처럼 설정되어, 상대주의라는 하나의 절대성에 갇혔다는 사실이 자신을 옭아매게 되는 것이다. 즉, 해당 문장을 언급하게 되면 그 문장도 하나의 상대성으로 포함하게 되는 자기 유사성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러셀의 역설이라고 하며, 기하적 모형에서는 이를 프랙탈이라고 한다.)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이 사실을 토대로 정리하면, 상대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하나의 절대적 진리에 포함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진리, 도덕, 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 자체로 절대성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라는 의미다. 쉽게 말해, 절대적인 것이 절대적인가?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얼마나 황당하고 어리석은 얘기인가?

 도덕과 윤리, 진리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신’처럼 적용했던 셈이다. 애초에 논리적으로 순환하는 개념을 논리로 찾는 행위는 철학적 유희에 지나지 않으며, 벗어날 필요가 있다. 


 (다음 쳅터에서는 신과 믿음, 의심에 대한 고찰과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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