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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 Jul 03. 2021

2. 믿음, 그리고 의심.

 절대적 진리, 만물 이론, 신. 인간은 왜 이토록 출발에 집착할까? 왜 기준에 집착할까?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존재한다.


 "뇌는 연역적인 사고를 좋아한다."


 뇌는 항상 최적화를 원한다. 자동화를 원한다. 살아가면서 많은 행동들을 무의식으로 처리하도록 전기적 신호를 고착화시킨다. 여러 습관을 만든다. 모든 행위를 의식하려 한다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배움은 모두 연역적으로 시작한다. 부모의 언어, 부모의 교육, 가치관, 생활양식, 문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의심 없이 말이다. 


  그럼 의심이란 무엇일까? 의심이라는 행위는 뇌의 최적화를 거스르는 활동이다.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무언가를 의식으로 끌고 오는 활동이다. 높은 사고력을 요한다. 흔히 창의력, 과학적 패러다임이 이 행위에서 출발하는 결과물이다.

 이토록 어렵고, 복잡하고, 불편한 행위를 인간은 왜 하는 걸까?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그것들이 사실임을 밝혀, 더 이상 의심이라는 곤혹적 활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최적화를 위해, 하나의 법칙, 규칙에 전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으로 갖추도록 유전자가 설계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의 믿음을 갈망하는 이유일 수 있다. 의심은 하나의 믿음을 찾고자 하는 행위의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다. 고대에 종교가 왜 출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보존되고 있는 보편적 도덕성, 진리, 종교, 과학을 의심하고 또 믿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보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하나의 진실, 하나의 믿음으로 다가가기 위해, 인간은 필히 의심이라는 행위를 해야 하는 셈이다. 과학은 그래도 비교적 쉽다. 왜냐하면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외부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쌓아 올린 믿음을 의심하도록 도와주는, 실험적인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한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도덕, 윤리, 진리와 같은 정신적인 법칙들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참으로 난감하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에 대한 의심이 들 때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수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학은 인류가 이루어낸 연역적 추론의 결정체이며, 인간의 연역적 사고를 의사소통하기 위한 일종의 언어다. 그러나 수학에서도 거짓말쟁이 문장처럼 참도 거짓도 아닌 명제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로 (소박한) 집합론에서 발생한 역설들이다. 수학자들은 이때부터 공리의 필요성을 깨닫고 매우 정교하게 공리들을 규명하기 시작했다. (공리란 수학 이론체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근거가 되는 명제다. 증명이 필요 없는 자명한 진리다. 대표적인 예시가 '어떤 자연수에 대해서도, 그다음 자연수가 존재한다.'이다.)

 그리고 여기 수학의 완전무결을 꿈꾸는 한 수학자 있었다. 수학이라는 '틀'에서 의심 없는 하나의 믿음을 만들고자 했던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 그 유명한 힐베르트 프로그램이다. 힐베르트는 수학적으로 참인 명제는 모두 증명이 가능하며, 온전한 공리와 추론 규칙을 통해 모순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것은 괴델이라는 수학자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불완정성 정리'. 모든 무모순적 공리계는 참인 일부 명제(즉, 공리 자체)를 증명할 수 없으며, 공리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정리. 괴델이 이를 증명해 버렸다. 쉽게 말해, 공리는 참인 동시에 증명 불가능한 명제라는 것이다. 공리계에서 공리가 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공리계 내부에서 공리를 증명하려고 하면 순환 논증에 빠진다.


 물론 이 결과를 비약해서 해석하는 철학자도 존재했다. "참인 동시에 거짓인 명제가 있다.' 혹은 '인간은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가 대표적인 예시다.

 내 생각에는, 이 수학적 결과를 철학적으로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하나의 믿음(즉, 진리)이 존재하며, 이 믿음은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떠한 도덕적 믿음을 의심하려고 하면, 순환 논증에 빠지는 것이 종종 있다.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이를 답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쳅터는 무한에 대해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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