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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습일지 #킬

놓쳐버린 연습 기회

by 시크팍

신당역 살인사건 다음날, 금융노조 집회 취재를 위해 아침 일찍 코리아나 호텔 앞에 도착했다.

뼈 선배는 8시 10분까지 발제문을 올려달라고 했다. 마땅히 가있을 곳이 없었기에 집회를 준비 중인 노조와 출근하는 직장인들 사이 길가 한구석에 앉아 발제문을 작성했다. 전 날 퇴근 지시와 함께 집회시위 리포트에 대한 간단한 가이드를 주었던 뼈 선배는 다시 한번 자세한 코칭을 해주었다. 선배 덕에 준비도 수월했고 스탠딩 멘트도 미리 컨펌을 받았다.


영상취재 의뢰도 아침 일찍 올려 배정을 받았는데 운이 좋게도 동기인 안드레아가 배정됐다. 뼈 선배는 동기끼리 일정을 뛰는 김에 연습 삼아 시민 인터뷰도 진행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배정된 영상취재 기자가 바뀌었다. 두 기수 위의 선배였는데 일전에 다른 기사를 쓰며 함께 일정을 뛰어본 선배였다. 이 선배는 일정을 나가면 항상 질문을 통해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는 것 같았지만 무엇 때문인지 결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대참사가 벌어진다.)


이날 일정에 대해 브리핑할 때도 굳이 모든 일정을 다 챙길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아직 기사도 몇 번 써보지 않은 햇병아리에게 항상 판단을 요구했다. 기자라면 당연히 현장에서 즉각적인 판단을 해야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무리였다.


어느덧 집회 본 행사가 시작될 시간이 되어 발언 내용을 워딩으로 풀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옆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는데 뉴시스 입사 동기인 이 기자였다. 이 기자와는 종로서 마와리를 돌며 만나 친해지게 되었는데 현장에서 보니 반가웠다. 지난주 뉴시스 이 기자와 점심을 먹었는데, 사건팀 바바이스라고 했다. MBN 동기인 사회부 장 기자(전 국제부)도 바바이스가 되었던 터라 새삼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회가 시작되기 직전, 뼈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기사를 경제부에서 쓰게 되었으니 집회 일정만 챙겨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내 기사가 아니니 스탠딩도 필요가 없었다. 뼈 선배 연락 직후 경제부 차장 선배에게도 전화가 왔다. 이때는 이미 집회가 시작되었던 터라 주변 소음 때문에 전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대략적으로 집회 싱크를 잘 챙겨달라고 했고, 여유가 되면 시민 인터뷰도 챙겨달라고 했다.


인터뷰까지 일정을 마쳤을 때쯤 영상취재 선배는 행진 일정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라고 했다. 캡이 자리를 비웠던 터라 바이스에게 바로 물어보라고 했다. 바이스는 행진할 때 특별한 충돌이나 교통혼잡이 있는지 파악해서 보고해 달라고 했다. 영상취재 선배는 행진 일정은 챙기지 않기로 하며 돌아갔고 결국 홀로 행진 대열을 따라나섰다.


다행히 삼각지까지 행진을 하며 특이사항은 없었고 뼈 선배는 점심을 먹으라고 했다. 점심시간도 여유 있게 주었다. 삼각지역 근처에서 식사할 곳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함께 일정을 뛰었던 영상취재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일정이 다 끝났으면 함께 식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선배를 만나 회사 차를 타고 남산으로 가서 선배, 오디오맨, 차량 형님과 함께 돈가스를 먹었다. 처음 먹는 남산 돈가스를 회사 동료들과 먹었다.


식사를 마친 뒤 회사에 도착해 뼈 선배에게 보고하니 선배는 회사 로비에 있는 카페로 오라고 했다. 선배 기사에 취재지원을 요청했고, 당시 내가 준비하고 있던 단독에 대해서도 추가 취재가 필요한 부분을 짚어주었다. 취재지원을 마치고 라인에 복귀해 다시 마와리를 돌다가 퇴근할 수 있었다.


이날을 비롯해 거의 매주 총을 맞았지만 이상하리만큼 기사는 계속 킬 됐다. 당시에는 기사를 쓰지 않고 퇴근할 수 있다며 좋아했지만, 오히려 그때 기사를 하나라도 더 써보았으면 연습이 되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책부에 처음 갔던 날도 차장 선배는 기사를 얼마나 써봤느냐고 물었다. 대답을 들은 선배는 말했다.


“음, 기사 좀 많이 써보면서 연습해야겠네.”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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