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꾸준한거북 Feb 22. 2023

공짜

댓가

세 아이들을 데리고 나홀로 속초여행을 감행했던 전적이 있는 나는 이번에도 삼척여행에 나섰다.

리조트 숙박권을 무료로 얻게되서 마침 아이들 유치원 방학도 시작되는터라 이때다 싶었다.

'아줌마'타이틀을 달고나니 왜이리 공짜가 달콤한것인가. 주변에 아줌마들의 공짜얻기위해 다소 뻔뻔하면서도 푼수같은, 어찌보면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는 없는 귀여운 행태를 겪을 때면 '저 돈 아끼느니 내 돈 내는게 낫지 않나'생각했는데 막상 공짜를 내 손에 거머쥘 기회가 생기다보니 4시간 걸리는 운전이라는 댓가를 치러서라도 가겠다는 나도 보통아줌마는 아니지싶다.


그래도 유치원방학기간에 두명의 아들과 딸을 우찌 놀릴까 고민하던것이 이런 방식으로 해결이 되는거라면 조금 힘들어도 that's ok! 삼척에 오는 동안 8살 큰아들은 두 동생들을 챙기느라 차 안에서 맏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동생들이 쌀과자 달라, 물 달라, 웬만한 식당 진상고객들 저리가라싶게 요구가 넘쳐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은 "다음부터 안해줘" 툴툴대면서도 다 해준다. 참 고맙고 든든하면서 맏이 역할을 당연하게 짊어지우고 싶진 않은데..하는 미안한 마음이 같이 든다.


힘든 마음보다 아이들과 집에서 떠나는 길은 난 그저 무조건 설렌다. 큰아들에게 너도 지금 설레냐며 다양한 감정들 속, 간질거리는 단어를 꺼내어 먹여준다. 그 감정 잘 간직하라고. 이게 바로 '설레임'이라고. 요럴 때 감정표현법을 가르쳐주면 더 깊고 진하게 새겨지는 것 같다.


삼척중앙시장에 먼저 도착했다. 사실 리조트 무료 숙박은 내 설레임 순위 중에는 없었다. 삼척의 음식과 길거리, 강원도 소도시의 분위기를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느끼고자 하는게 1순위였다. 그러면서 하루 묵을 곳이 있으니 감사할 따름인 것이고. 시장에서도 큰아들은 막내동생 유모차를 밀어주겠다고 나섰고 그 덕에 나는 둘째만 잘 챙기면 되어서 한결 마음이 편했다.


시장도 복잡하고 시끌벅쩍하기보단 조용했다. 사람 소리보단 바람 소리가 더했다. 전, 튀김, 전병을 파는 골목 쪽으로 먼저 들어섰다. 그 곳에서 호떡을 한 개씩 입에 물고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늦은 점심으로 나는 장칼국수, 아이들은 잔치국수 한 그릇씩을 시켜 나눠먹었다. 그야말로 만원의 행복. 신발 벗고들어가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있던 국수집이었는데 저지레 안하고 먹을꺼면 들어가도된다는 조금은 투박한 말투의 할머니사장님의 안내를 받고 들어가 앉았는데 사실 국수가 나올 때까지 아이들의 텐션이 조금씩 올라가서 방금 전 들은 '저지레'를 해댈까봐 노심초사 했으나 다행이도 내 목소리가 커지는 일은 없었다.


메밀전병과 떡을 사서 리조트에 왔다.어젯밤 내내 삼척에 있으면서 무얼할까 검색엔진을 돌리느라 바빴다. 급기야 내 마음은 태백까지 뻗어나갔고 태백에서의 숙박시설까지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그러지말고 나한테 있는 호텔쿠폰 줄테니 거기가. 2만원만 더 내면 키즈룸으로 업그레이드도 되니까.' 언니의 말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예~ 두번째 날도 공짜숙소다! 이번엔 숙소 복이 있구나~!'


그렇게 좋아하다가 갑자기 든 생각. 아니 그럼 태백일정은? 태백에서 가보려했던 석탄박물관을 비롯해서 다양한 체험관, 놀이터는 모두 취소? 고로, 내 열심과 기대로 내린 선택들은 공짜숙소에 의해 한 번에 무너진 것?태백을 느껴보고싶은 마음이 공짜숙소에 무너졌다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왜 그토록 뻔뻔해보이면서까지 웃는 얼굴로 공짜를 열망하는지 주변의 아줌마들을 완.전. 이해하게도 되었고 말이다.


그러고는 마음을 곧바로 바꾸어 언니제공 호텔이 있는 도시의 갈만한 곳들을 써치하기 시작했다. 다행인건가, 그 곳엔 갈만한 '공짜'박물관과 체험관들, 저렴한 놀이공간이 많았다. 그래서 내 여행신념(?)을 조금이나마 살려줄 수 있었다. 나만 아는 내 체면도 조금은 살릴 수 있었달까.

마침 그 주변엔 아들이 어릴 때부터 가고싶어했던 박물관이 있어서 일정을 변경한 게 오히려 잘한거네!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이 우스운 아줌마의 여행을 진정한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얻은 것은 있다. 공짜 좋아하는 뻔뻔하지만 밉지 않은 그 아줌마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무리엔 나도 포함되있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는 사실말이다.(^^)그리고 공짜 속엔 수많은 댓가가 따른다는 것도 다시금 깨닫는다. 오가는 시간과 주유비, 그리고 어느 정도는 내 결정을 내려놓아야 했기에 공짜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나만 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