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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Feb 25. 2023

아이를 잃어버린 '잠시'

아이 셋과 함께 삼척 해상 케이블카를 타러 장호항에 갔다.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이 곳은 에메랄드 빛의 잔잔한 물결이 해변 주위를 고요하고 평화롭게 넘실거렸다. 케이블카에 탑승하기 위해 주차장에서부터 걸어서 전망대를 향해갔다. 평일 오전시간이라 사람들이 없었고 한산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도 편하게 탑승장으로 향했다. 5층 탑승장에서 우리는 기대감을 안고 빨간 케이블카에 탔다.


우리 외에 한 팀이 더 있었는데 충청도에서 오신 할머니 부대였다. 우리 아이들을 보며 셋이라서 좋겠다, 아이고 이쁘다, 등등 칭찬일색. 둘째는 타고난 친화력으로 할머니들께 일일이 답변을 해드리고 케이블카에서 내린 후에도 할머니들과 함께 다니면 좋겠다고 "엄마, 할머니들은 같이 안가?"를 반복했다. "할머니~어디가세요?"계속 물으며 할머니들을 향해 질문해대는 둘째아이. 우리와 함께 전망대 구경 가실꺼라고 하니 즐거워하며 씨익 미소를 날린다.


용화역 5층 전망대에서 새파란 하늘이 곧 봄이 옴을 예고하며 나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그 하늘에 바로 맞닿아있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그 곳에 한참을 머물고싶다는 생각을 안겨주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세 아이들이 저마다 흩어져 전망대를 놀이터 삼았기 때문이다. 첫째는 구석에 쌓여서 얼어버린 눈더미 위에서, 둘째와 셋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탐색을 시전하고 있었기에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도 모르겠고 마음이 불안해져만 갔기 때문이다. 내 눈은 하늘과 바다에 고정시키고 싶었는데...이 곳에서 아무 방해 받지 않고 책 읽으면 정말 환상적이겠다..는 꿈만 잔뜩 품은 채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3층 탑승장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장호항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무사히 귀환하는가 싶더니 일이 생겨버렸다. 요즘따라 어디건물을 가면 혼자서 계단을 이용하겠다는 첫째 아이가 이번에도 그러겠다 하길래 그리하라고, 우리는 엘레베이터로 내려갈테니 '1층'에서 만나자고 했고 그렇게 나와 둘째, 셋째는 엘레베이터에 탔다. 1층으로 내려왔는데 아직 첫째가 없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첫째가 엘레베이터 앞에서 짠!하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없길래 조금있으면 오겠지 하고 기다릴까 하다가 계단을 향해 불러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이기에 더 불안했던 나는 처음엔 대답하는 아이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길래 두번 세번 아이 이름을 더 불러보았는데 대답이 없다.


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고 1층 안내하는 할머니께 두 아이들을 맡긴 채 계단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첫째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생각했다. 첫째가 3살무렵인가 소아과건물에서 혼자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던 그 기억. 나는 소아과에서 나와 약국에 들르려고 했는데 아이가 없어졌던 것이다. 당연하게 엄마랑 늘 타는 엘레베이터 였기에 아이는 그대로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빨려들어가듯이 탔던 것이었고 나는 너무 놀라 계단을 내려가며 포효했던 기억. 그 당시 아이는 감사하게도 주차장에서 발견이 되었다. 어느 차가 후진하려할 때 우리 아이가 그 뒤에 있었는데 한 엄마가 소리를 질러 막아주었던 건데, 계단을 올라가며 또 한번 그 트라우마가 나를 집어삼켰다.


전망대에는 2층이 없었기에 계단이 더 멀고도 높게만 느껴졌다. 전망대이기에 계단이 더 많았다. 숨이 차올랐고 불안감도 같이 상승했다. 5층에 도착해서 일하는 할머니들께 여쭈었다. 저희 아이 혹시 못보셨냐고. 못봤다고 하신다. 여기엔 없다하신다. 어찌해야할지 우왕좌왕 하고있는데 한 남자직원분께서 우리아이, 엘레베이터 타고 1층으로 내려보내고 올라온거라고 하신다. 함께 내려가면 있을꺼라고. 그렇게 마음의 1층에 내려가 큰 아이를 보자마자 일순간에 사라졌다.


아들은 1층에서 만나자고 했던 말을 잘 못 들었던가보다. 어? 하며 순간적으로 당황을 했고, 어디로 가야되지? 하고 있는데 마침 옆에 직원아저씨가 계시길래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예수님께 기도도 했다고 한다. 아들을 발견했을 때 얼굴 빛은 조금 놀라기도, 멎쩍기도 한 듯 보였다. 그 표정은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도 남아있었고 나는 운전하다말고 고속도로 갓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는 아들을 한번 더 안아주며 말했다. 많이 놀랐지 무서웠지 하면서.. (실은 나 자신을 안아준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들이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아저씨께 여쭙고 도움을 요청해 준 것에 대해서 참 잘한 행동이라고 칭찬해주면서 동시에 엄마는 놀라고 불안했던 것이 조금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노라고 전했다. 어차피 너는 그 건물 안에 있을 건데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요란을 피웠을까... 엄마가 너에게 배워야겠다...이런 상황에서 좀 더 침착해지는 훈련을 엄마가 해야겠다... 고 말했다.


정말이었다. 사실 조금만 기다려도 되는 거였다. 아들을 기다려주면 되는 거였다. 아마 아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무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내가 더 무섭고 더 불안하고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아서 몸을 혹사시켰던 것이다.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대답을 들으려고 5층까지 기어코 뛰어올라갔던 것이다. 아들은 생각보다 많이 자라있었는데 나는 자꾸 후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고, 조급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고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교만도 버리겠다고 기도문에 써 놓고도 이 모양이다. 그 자리에서 기도하며 기다릴 순 없었을까? 기어코 두 아이까지 할머니께 맡기며 뛰어가야했을까? 남겨진 두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또 얼마나 불안했을까?


아이들과 쉽고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그렇기에 불안하고 근심하며 걱정하는 나의 상태를 더 내려놓아야 한다. 나의 이런 상태로부터 아이들이 얻어갈 것은 조급증, 초조함, 불안밖에 더 있겠는가. 이번 상황을 통해 아이가 "이럴 땐 이렇게"를 배워서 그 부분에 있어서는 얻은 게 있으니 또 감사하다는 마음이 있지만, 나 자신의 정신적 상태가 육체적 징표를 너무도 크게 유발했던 만큼 그것이 다시 정신적 상태를 촉진시키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되새기고 1분1초씩 기다리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이 글을 쓰며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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