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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Mar 04. 2023

부루마블 지옥

미안하다 사랑한다 아들아

첫째 6살후반에 부루마블을 사준 건 나다. 즐기려는 목적보다 더 깊은 속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경.제.관.념. 심어주기. 부루마블 가지고 얼마나 원대한 경제관념을 심어줄 수 있겠냐마는 돈 주고 받고 나라별 건물 거래도 해보고 무엇보다도 엄마랑 아빠랑 낄낄거리며 놀 수 있는 문물이니까. 선택을 했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적어도 아이에게만큼은. 우리 부부는 부루마블을 할 때마다 허리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해서, '이거 도대체 언제 끝나나 내가 빨리 파산해야 끝날텐데' 하며 부루마블에 임하곤 했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떠 넘기는 공포의 부루마블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마침 동생들이 모두 낮잠을 자는 틈을 타 아들이 부루마블을 슬며시 가지고 다가온다. "엄마, 동생들 다 자서 방해 안받으니까 부루마블 한 번 하자." 그런데 그때 내 손엔 너무나 읽고싶은 책이 한 권 들려있었다. "엄마도 엄마시간 좀 보내자. 엄마는 지금 이 책이 너무 읽고싶은데..?" 그러자 아들이 "이거 엄마가 사준거잖아. 엄마가 사줘놓고, 왜 안해줘?음..그럼 엄마, 그 책 한 시간 동안 읽어~ 내가 미리 세팅하고 있을께." 한다. 한 시간 지나면 동생들 다 깰텐데... 나에게 한시간이나 주다니.. 나름 시간개념이 들어차있는 아이인데 왜 한시간이나 준다는거지? 한시간동안 세팅만 할껀가?


"한 시간은 너무 길지.. 동생들 다 깨어날 시간이야.. 그냥 엄마가 구글타이머 20분 설정해놓고 딱 20분만 책 읽고나서 부루마블 해줄께." 결국 지고 말았다.

그의 '짠함'에 지고말았다. 홀로 세팅을 하든 말든, 1인2역을 하든말든 냅두고 냉정하게 나의 갈 길 다 가야 했었는데...왜 이리 냉정하지 못한고. 짠함을 그냥 냅둬버리면 내 마음이 죄스러우니 어쩐단 말인가.. 나를 한 방에 움직일 수 있는 건 아이들의 '짠함'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 그것이 그들의 가장 쎈 무기인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무기인지도 모를텐데 나혼자 그 무기에 찔려 스스로 끌려가고만다. 결국 꿈만같은 20분이 지나갔고 부루마블에 세계에 뛰어들었다. 어쩌겠는가, 아들 말처럼 내가 사줬는데, 내가 그 세계에 발 들여놓게 해줬는데. 내 발등 내가 찍고 나혼자 자책하고 나혼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니까 내 시간 양보해서 널 위해 놀아준다는 자만감에 취해 부루마블을 하는 이 굴레.

부루마블을 신나고 짜릿하고 '30분 안에' 끝내는 묘책이 있다면 누가 좀 알려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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