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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May 11. 2023

구멍난 양말

등교준비가 한창인 아침, 아들이 구멍난 줄무늬 양말을 신고는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했다. 남편과 나는 양말이 구멍났으니 다른 양말을 신는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사실 나는 아들이 원하는대로 하게끔 두자는 주의라 머리에 새집을 짓든 촌스럽게 스타일링을 해서 학교에가든, 아빠구두를 한번만 신고 간다고 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신경이 쓰이지만 참아낸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남편은 그 신경쓰임을 참지 않는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시선을 나보다 더 신경쓰는 성향이라 적재적소에 맞는 차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들이 새집을 지은 머리로 학교가려고 하면 욕실로 끌고가 멀리감기고 드라이를 해주고 츄리닝 바지에 줄무늬 남방을 걸친 꼴(?)을 못마땅해하며 비웃는다. 사실 그건 나도 못봐주겠지만 어쩌랴, 그게 멋있다고 여기는 것을.


헌데 그날따라 구멍난 양말은 나조차도 넘어가줄수가 없었다. 아빠가 아들더러 구멍난 양말을 신고가면 친구들이 "얼레리꼴레리"할 수도 있고 구멍이 더 커져서 불편할 수도 있다고 조언을 빙자한 참견을 일삼으니 아들은 더이상 듣기가 싫었던건지 아빠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던건지 왜 아빠는 나를 놀리냐며 삐쳐서는 나가려했다. 아빠는 너한테 놀린게 아니라 친구들이 그럴 수 있다는거였다고 설명해 주는데도 아빠의 말이 못내 서운했던가 보다. 그 말을 했던 아빠도 마음이 쓰였는지 가방에 멀쩡한 양말을 한켤레 넣어주라고 한다. 거기까진 그래도 괜찮았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나가버리는건 너의 잘못이니 아빠한테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다시 나가라고 더 큰 엄포를 놓은 건 다름아닌 나였다. 아들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하단 말을 남긴 채 학교에 갔다.


그 날 학교에 다녀온 아들은 여전히 아침의 크기 그대로의 구멍난 양말을 당당하게 신고있었다. 거실에 앉아 놀던 아들이 하는 말, "엄마 오늘 친구들이 양말보고 안놀렸어." 그래... 너희들은 그런걸로 놀리는 아이들이 아닌지도 몰라, 그런걸로 놀리고 비난하고 여러가지 판단을 내려버리는 건 바로 우리 어른이지. 설령 놀림을 받는다한들 그마저도 너의 몫이고 네가 해결할 일이지. 아침부터 학교가는 너의 마음에 별 거 아닌 일을 가지고 실갱이 하며 속상함을 퍼부은 엄마아빠의 어리석음이 오늘 놀림받지 않은 너의 다행스러움(?)으로 결론이 나는구나. 나는 그날 이후로 여전히 구멍난 양말들을 다 골라내지 않은 게으른 엄마다. 그 이후 두차례나 구멍난 양말을 신은 채 학교에 갔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엔 아들에게 구멍난 양말을 건넸다가 한쪽 발을 다 넣은 뒤 알아챈 나는 시간여유 있으니 구멍나지 않은 양말로 갈아신는게 어떻겠냐며 제안을 했고 아들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구멍난 양말로 자유의지를 존중해주는 데에 한 몫 더할 수  있다니. 참으로 경이롭다. 구멍난 양말 하나로 친구들에게 놀림받을 권리는 아들에게 있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 권리를 아들에게 양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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