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우리는 끊임없이 학습하고 혁신해야 합니다. (중략) 여러 분야를 공부하는 팁을 드리자면 자신의 기대치를 조금 낮추십시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는 21세기 인간의 생존법을 이 같이 제시합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과학기술에 의해 경제와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현재를 놓고 "솔직히 이런 일은 인류 역사상 처음"이라고 경탄해합니다. "예측을 할 수 없으니 미래에 추구할 목표나 가치를 결정할 수도, 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는 냉정한 진단과 함께 말이죠.
과학기술의 발달로 정보가 넘쳐나고 이로 인해 오히려 어떤 진단과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진 현재, 일본의 저널리스트 오노 가즈모토는 세계적 석학 8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예측합니다.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처럼 일반에 잘 알려진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먼저 눈에 띕니다.
또 AI 전문가 닉 보스트롬 옥스퍼드대·스탠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 소장, '100세 인생'의 저자 린다 그랜튼,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저자 다니엘 코엘 프랑스 파리경제학교 교수, '백인 노동자 계급'의 저자 조앤 윌리엄스, '백인의 역사'를 쓴 넬 페인터 프린스턴대 명예교수,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이끈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 등 AI·고령사회·미국 정치·페미니즘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인터뷰도 함께 담았습니다.
유발 하라리, AI를 넘는 인간만의 능력 제시 못해
아무래도 이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면서 근래에도 활발히 저작 활동을 하고 있는 유발 하라리의 진단에 가장 눈이 먼저 갑니다. 이 책을 구성한 오노 가즈모토 역시 책 전체 분량의 30%를 유발 하라리와의 인터뷰에 할애합니다.
유발 하라리의 미래 전망은 "전망하기 어렵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너무나 빨리 발달하고 있고 이것이 우리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을 거론하며 "30년 후 노동시장은 불투명하며 대학교에서는 어떤 것을 가르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또 "앞으로 인공지능이 기존의 사회 질서와 경제 구조를 완전히 파괴하고 수십억 명의 사람을 노동시장에서 퇴출시켜 대규모의 무용(無用)계급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라고 예측합니다.
구체적으로 AI는 저널리스트, 번역가, 의사 등 전문직의 업무 상당 부분을 자동화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럼에도 이들 직업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번역하는 일은 번역가들 중 극히 일부에게 주어질 것"이라며 "토요타의 취급 설명서를 번역했던 대다수 번역가는 다른 일거리를 알아봐야 할 것"이라고 비교합니다.
그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현재의 역사를 진행시키는 강력한 추동력으로 지목하지만, '과학기술 결정론'까지는 인정하지 않으며 그 반례로 한국과 북한을 지목합니다. 그는 "한국은 지금 남북이 갈라져 있지만 둘은 같은 민족, 같은 언어, 같은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같은 20세기의 과학기술을 이용한다"며 "한쪽은 핵으로 무장한 독재국가가 됐고, 다른 한쪽은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IT 강국이 됐다"라고 비교합니다.
다만 유발 하라리는 AI에 대응한 '인간만의 능력'이 무엇인지 정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그는 "우리는 육체적 능력이나 인지적 능력 외에 인간만이 확실한 우위를 갖는 제3의 능력을 아직 알지 못한다"라고 밝힙니다.
그는 21세기의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신을 바꿔나갈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여러 분야를 공부하는 팁을 드리자면, 자신의 기대치를 조금 낮추라"라고 조언합니다. 과연 '사피엔스'의 저자 답습니다. 그는 사피엔스에서 수십만 년 전 고대 인류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역사학뿐 아니라 정치학, 경제학, 생물학, 심리학, 철학 등 전분야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횡단적으로 연구해 풀어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인터뷰에서 또 하나 메모해 두고 싶은 게 있다면 '허구의 노예가 되지 말고 허구를 이용하라'는 조언입니다. 그는 민족, 국가, 기업 등 인간이 허구를 믿었기 때문에 역사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해석하며 이 허구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다만 개개인이 여기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기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 대상이 고통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가령 국가는 허구의 존재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국가 간 전쟁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은 그 국가에 소속돼 전쟁에 나가 희생된 군인과 그 가족들이죠.
제러드 다이아몬드 "인구 감소는 환영할 일...정년폐지해야"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일본의 저출생 현상에 대해 "인구 감소는 환영할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도 앞서 '총·균·쇠' '문명의 붕괴'를 읽으며 그가 한국의 저출생 현상에 대해 어떤 진단을 궁금해졌었습니다. 그는 그간 많은 문명이 붕괴한 주요 요인으로 인구의 급증과 이에 따른 자원 부족 현상을 꼽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저널리스트와의 인터뷰였기에 일본의 사례를 들었지만,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가입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지난해 기준 0.7명으로 일본(1.2명)보다도 훨씬 낮습니다. "미래의 큰 위기 중 하나는 자원 부족이 될 것"이라는 재레드 다이아몬드로서는 일본이 아닌 한국의 저출생 현상에 대해서도 같은 진단을 내놓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가 일본에 내놓는 대책은 한국에도 유효하다고 보입니다. 정년제 폐지와 이민을 통한 다양성 확대가 그것입니다. 그는 정년제에 대해 "굉장히 잔인한 제도"라고 지적하고 "미국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덕분에 가장 야심만만한 국민을 얻은 셈"이라고 설명합니다.
미국은 1986년 정년제를 폐지했는데 이를 시행한 법 이름이 고용상연령차별금지법(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이라는 점이 특기할 만합니다. 정년제도를 '나이를 근거로 한 차별'로 바라보는 것이죠.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인생 100년 시대 구상 회의'라는 전문가 심의회의 전문위원으로 기용됐던 린다 그래튼 교수도 같은 진단을 내놓습니다. 그는 "에이지즘(연령 차별)은 일본의 나쁜 면 중 하나"라며 "영국에서는 직원을 구할 때 연령 제한을 두면 위법이다. 이력서에도 나이나 생년월일을 기재하지 않는다"라고 비교합니다. 이와 함께 "여성의 경제 활동도 장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린드 그랜튼 "100세 시대, 80세까지 일할 수 있어야...끊임없이 배워야"
린다 그래튼 교수는 '평생교육' 개념을 구체화합니다. 인간에게는 '유형 자산(주택, 현금 등)'과 '무형 자산(건강, 동료애, 변화에의 대응력 등)'이 있는데 100세 시대가 되면서 점차 무형 자산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100세까지 여유롭게 살려면 80세까지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이 나이까지 일을 하려면 건강, 동료애, 변화에의 대응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린다 그래튼 교수가 제시하는 결론은 유발 하라리의 결론과도 궤가 같습니다. 그는 여가 시간을 오락이 아니라 재창조에 투자하라고 밝힙니다. 끊임없이 배우라는 것이죠. 세부적으로는 △5분 자투리 시간에 배울 것 △주말을 이용해 배울 것 △2~3개월 동안의 장기 휴가에서 배울 것을 시간 단위마다 정리해 계획을 세우라고 조언합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계발하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야 회사에도 퇴사 등의 전략으로 회사를 압박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시장에서 인정받는 인력이 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 외의 기억해 둘 것들
ㅇ다니엘 코엔 프랑스 파리 경제학교 경제학 교수
-과거에 비해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과학기술 발전이 일부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파바로티 효과. 이탈리아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같은 최고의 아티스트 외의 음반은 팔리지 않는 현상.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현상 또한 더욱 가속될 것이다.
ㅇ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 대학교 워크라이프 법률센터 소장
-미국 백인의 계급론.
-백인 노동자는 전체 미국인의 53%를 차지하는 중산층 백인 노동자들을 지칭. 백인 노동자는 과거에 비해 수입이 줄고 제조업 몰락으로 일자리가 감소해 화가 나 있다.
-투박하고 직설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화법은 노동자 계급에게 높은 점수를 얻었다. 반면에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투는 엘리트 그 자체였다.
-미국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지위가 노동자 계급보다 더 뛰어난 능력과 더 많은 노력에 기인한 결과라고 착각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관심은 성차별, 인종차별, LGBTQ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엘리트 계층은 가족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를 무시해 왔다.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은 계급에 대해 너무 몰랐다.
-'정체성 정치'는 억압박고 소외당한 집단이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는 정치인데, 최근에는 백인들도 이를 쓰고 있다.
ㅇ넬 페인터 프린스턴대 명예교수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를 상대로 예기치 못한 패배를 당한 것은 미국에 존재하는 여성 혐오 때문이라는 견해에 동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없었으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없었을 것. 트럼프는 백인의 불만, 백인의 민족주의, 백인의 힘이라는 움직임에 운 좋게 편승.
-미국 민주당은 노동자 계급을 인종으로만 분류. 같은 백인 안에서도 계급과 성별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단순히 백인과 비백인으로 뭉뚱그리고 안일하게 선거운동을 한 것.
-미국 주류를 지칭하는 WASP(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는 어느새 앵글로색슨족이 아닌 서유럽 백인(이탈리아계, 동유럽계 등)도 포괄하기 시작.
ㅇ윌리엄 페리 전 클린턴 행정부 국방부 장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당장 이루고 싶은 목표는 전쟁 억지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한 핵무기를 보유하면서도 비핵화에 상응하는 경제 지원을 받는 것.
-빌 클리턴이 이끌었던 민주당 정부는 결국 북미 제네바 합의에 성공. "미국은 2001년 대북 관계에서 발을 뺐다. 공화당 정권으로 바뀌고 난 뒤였다"
-"북한은 비핵화에 합의한다고 해도 또다시 철회할 것. 성공의 열쇠는 핵 억지력 외에 북한 체제의 존속을 보장해 줄 다른 대체 수단을 찾아내는 것"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이었음. 원래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면 핵보유국의 원자력 기술과 물질을 제공받을 수 있고 북한도 그 수혜를 누렸음. 그러니 추후 탈퇴를 선언하고 핵 개발에 나서면 당연히 제재 대상이 됨.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미래는 참 알 수 없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석학들조차 미래에 대해 전망이 엇갈립니다. 인공지능이 초래할 사회 변화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한다'라고 우려한 반면 AI 전문가 닉 보스트롬 옥스퍼드대·스탠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 소장 '인간은 더 많은 여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낙관합니다.
적어도 우리의 미래가 AI의 고도화와 100세 이상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개개인은 여기에 맞춰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반복돼 온 지적이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며 변화에 적응하고, AI가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되어야겠지요. 세계 8명의 석학으로부터 우리 미래 전망을 들어 본 '초예측'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