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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T Jun 22. 2024

"독재 강화"...수도 이전의 한국사

함규진 서울교대 교수의 '30개 도시로 읽는 한국사'

'역사덕후' 친구와 함께하듯 한국사 산책

고려 공민왕 '왕권강화' 한양 천도 시도
태조 이성계도 반발 부딪혀 개성 돌아가
9대왕 성종 돼서야 개성행차 관례 중단
저자의 '천도는 기득권 혁파' 프레임 속
'행정수도 이전' 노무현 지지 시각 읽혀


"여기가 이완용이가 칼 맞은 곳이잖어."


대학 시절, 서울 명동성당 앞을 지날 때 친구가 문득 꺼낸 말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을사오적' 이완용이 1909년 벨기에 왕 레오폴 2세 추도미사를 참석하기 위해 인력거에 오르던 중 이재명이라는 인물에게 옆구리와 어깨 등을 3차례 찔린 사건을 꺼낸 것이었습니다. 역사덕후인 그 친구는 명동성당 앞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그 얘기를 꺼낸 것이죠.


함규진 서울교육대 교수가 쓴 '30개 도시로 읽는 한국사'는 역사덕후 친구처럼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도시 공간들의 역사를 찬찬히 풀어냅니다. 서울, 수원, 공주, 천안, 주, 광주, 남원, 여수, 제주, 부산, 울산, 경주, 안동, 강릉, 파주 등 국내 도시와 북한의 개성, 해주, 평양, 원산, 함흥은 물론 일본 대마도와 중국의 단둥, 지안, 룽징, 닝안 등 인접 국가의 도시까지 함께 다룹니다.


그중에서도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가장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도 전체 책 분량의 10%가량을 서울에 할애합니다.  


저자의 설명은 구석기시대 암사동, 고덕동 유적지부터 시작하지만 이목이 쏠리는 것은 지금의 서울의 윤곽이 언제부터 잡히기 시작했는지부터입니다. 백제 위례성이 지금의 서울 지역에 있었다고는 하나 역사적 단절이 있으니까요. 저자는 "고구려가 위례성을 무너뜨린 5세기말부터 10세기초까지 서울은 역사적 암흑기에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라고 말합니다.


고려 양주에서 서울의 역사 시작

지금의 서울과 발전상 이어지는 과거는 995년 고려시대 정도로 풀이됩니다. 당시 고려는 양주에 수도 개경을 보위할 '좌신책군'을 주둔시킵니다. 이때 양주는 지금의 양주시와 서울 북부, 북한산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었습니다.


북한산 일대가 군사적 요충지로 개발되면서 그 남쪽 지역(종로구, 중구 지역)도 발전합니다. 고려 조정은 풍수지리설도 감안해 양주에 아예 남경을 설치하기로 합니다. 도선 대사는 개경 이외에 서경(평양)과 남경을 두고 주기적으로 왕이 순행하면 대길한다는 가르침을 남긴 터였습니다.


이에 1104년 지금의 종로구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에 행궁을 짓고 이후 고려 왕들은 서경과 남경을 들러 머물다 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원나라의 간섭을 심화된 후 고려 조정은 1308년 남경을 한양부로 격하합니다.


흔히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서울로 천도를 처음 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이미 고려 말 천도가 시도됩니다. 공민왕은 반원 정책을 추진하며 서울(한양)로 천도를 추진합니다. 천도는 기득권 세력(귀족) 견제를 위해 왕이 추진하는 주요 개혁 방안이었습니다. 실제로 1390년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 대에 와서 천도가 이뤄지지만 반년도 못 채우고 개경으로 환도합니다. 개경 귀족들의 반발이 컸을 겁니다.


조선 초기에도 반발에 한양 정착 난항...성종 돼서야 안착

위화도 회군 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다시 한양 천도를 추진하지만 이 역시 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고려 귀족 출신 신하들은 "송경(개성)에 머물되 궁궐만 새로 짓자"라며 끈질기게 간언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태조 역시 천도 5년 만에 개경으로 돌아갔고 재위 중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정종에 이어 태종까지도 개경에 머무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정치9단 태종은 묘수를 냅니다. 1404년 한양으로 내려가 "한양은 풍수지리상 완벽하지 않다고 하니 무악산 쪽에 새로 도읍을 정하겠다"라고 선언한 겁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지은 궁궐과 종묘사직을 놔두고 다시 대규모 공사를 하겠다니요. 대신들은 "차라리 한양에 거쳐를 정하시라"며 한발 물러섭니다.


이로써 조선 왕실은 본격적으로 한양에 정착할 수 있게 됩니다. 개성에 행차해 머물다 오는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은 제9대 왕인 성종 때라고 하니 조선 개국 초의 개성 기득권 세력과의 파워게임이 얼마나 질겼는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효창공원, DDP...역사덕후 친구처럼 방방곡곡 역사 풀어내

저자는 제 역사덕후 친구처럼 서울 이곳저곳의 연원을 풀어냅니다.

한양의 발전이 지금의 종로구 지역 중심에서 점차 중구 지역으로 확대돼 왔다는 점도 재밌습니다.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의 사이에 낀 북촌(가회동, 안국동 일대)은 '조선 1%' 명문가가 살았다면 지금의 회현동, 장충동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남인이나 소론 명망가들이 주로 살았던 것이죠.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의 기원이 전혀 다르다는 것도 재밌습니다. 남대문시장은 종로 육의전의 금난전권 때문에 한양 도성에서 장사할 수 없던 다른 상인들이 서소문(소의문) 밖에서 장사를 하던 것을 개화 시에 남대문 근처 선혜청 앞으로 옮긴 것이 기원입니다. 반면 동대문시장은 1905년 조성된 최초의 근대식 시장인 광장시장이 번성한 뒤 동대문 앞까지 상권이 확대된 것이라고 하네요.


용산구의 효창공원의 역사도 기구합니다. 문효세자 모자의 묘가 있던 효창원에서 묘를 고양 서삼릉으로 이장하고 효창공원이 만들어집니다. 일제가 패망한 뒤 이곳은 조선 왕실 묘를 복원하는 대신 항일운동가들의 묘지로 조성됩니다. 1946년에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사람의 무덤이 만들어졌고 1949년 암살된 김구도 이곳에 묻혔습니다. 안중근의 유해가 발견되면 안장되기 위해 마련한 빈 무덤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만들었다는 '독립문'의 현판은 이완용이 썼다는 설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독립문 자체가 당시 친일 세력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저도 언젠가 배운 기억이 있지만 까먹고 있었습니다).


당시 독립협회와 급진 개화파들은 반청친일 성격을 띠었습니다. 그 독립이라는 것도 청나라의 종주권을 부정하고 근대 주권국가로서 독립한다는 뜻이었지요. 일본의 강압으로 맺은 강화도조약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가 있고요.


현대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들어서있던 곳에 2008년까지 동대문운동장이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의 10대들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번에 처음 안 사실들이 많습니다. 이 동대문운동장이 1925년 일제가 히로히토 당시 황세자의 결혼을 축하하며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 서울숲이 있는 뚝섬이 2000년대 초반까지 경마장이 있던 곳이라는 것도 이번에 안 사실입니다.


'수도 이전=기득권 혁파' 세계관...정치적 성향 감안해야

이 책을 읽으며 수도라는 개념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신라 수도 경주의 기득권 세력이 후삼국, 고려, 조선을 이어서까지 주류 세력의 일부로 살아남은 것은 '한번 강하면 계속 강하다'는 많은 역사에서 반복돼 온 경향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려 초만 해도 수도 개념이 희박했던 듯한 정황도 재밌습니다. 고려 성종은 개경을 개성부로 바꾸고, 이후 거주 인구가 적어졌다고 개성현으로 격하했다고 합니다. 궁궐은 궁궐이고, 궁궐이 있는 고을을 별개라며  중시하지 않은 것일까요.


수도에 대한 생각은 행정수도 이전과 이에 따른 지금의 세종시까지로 이어집니다. 헌법재판소가 '불문헌법' 개념으로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놓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도 이전은 행정수도 건설로 축소돼 버렸죠.


세종시에는 현재 세종국회의사당 부지가 마련돼 있고 지난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조차 국회를 세종으로 완전히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습니다. 주요 부처들이 세종으로 이전한 지 10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고위 공무원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에 가족을 남겨놓고 있는 것이 조선 초 한양 천도 당시의 혼란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책에는 '수도 이전은 기득권을 혁파하기 위한 것'이라는 역사관이 강하게 묻어 있습니다. 또 역사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그렇듯 저자에게서도 특정 정치 성향이 묻어납니다. 2016년 촛불 시위와 다섯 차례에 걸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 등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이 책 전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도 이전 시도는 선이고 이를 보수 기득권 세력이 저지했다'는 인식이 느껴지는 것은 과한 해석일까요?


그래서 이번 리뷰 제목은 저자가 심어놓은 '수도 이전은 기득권 혁파'라는 프레임을 비틀어 제시했습니다. 역대 왕조에서 천도하려 했던 것은 왕권 강화를 위해서인데,'(왕의) 독재 강화'라고 달리 표현할 수 있습니다. '독재 강화'라는 표현이 나빠 보이는 것이 프레임의 효과이듯 '기득권 혁파'가 왠지 옳은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 역시 프레임의 효과일 뿐입니다. 종합적 판단을 위해서라면 개별 사안의 맥락과 사정을 살펴봐야지요.


이 책에는 서울을 포함해 국내외 30개 도시를 다뤘으니 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자기 지역 얘기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이름 그대로 '30개 도시로 보는 한국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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