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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T Jul 20. 2024

2400년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우리가 읽는 이유

작가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


헤로도토스부터 유발 하라리까지
2500년간 16명의 '역사가' 다루며
'역사 서술의 역사' 이야기로 풀어내
'사실 그대로의 역사' 랑케 배격하며
현재 우리에 의미주는 '이야기' 강조


"또 한 번 대규모 문명 충돌이 벌어진다면 그 결말은 사피엔스를 포함한 지구 생태계의 완전한 절멸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유추해 낼 수 있기에 오늘도 누군가는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책을 읽는 것이리라."


유시민 작가의 책 '역사의 역사'에 담긴 역사관은 이 문장으로 대표될 수 있습니다. 현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이나 메시지를 줄 수 있는가에 역사의 역할이 있다고 그는 시종일관 강조합니다.


유 작가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역사가 16명은 모두 쟁쟁한 인물들입니다. 이들 책을 직접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이븐 할둔을 빼고는)이들의 이름이나 그들이 지은 역사서에 대해서는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저는 이 중에서  읽었던 책이 세 권 밖에 되지 않아 충격을 받았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사마천의 '사기',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 레오폴트 폰 랑케의 '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관하여' ' 강대 세력들 정치 대담 자서전',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박은식의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오스발트 A. G.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아널드 J.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유시민 작가의 독서 평을 통해 간접적으로 내용을 접했지만 아직 직접 원문들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이들 책을 요약하는 것은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표현을 응용하자면 아테네를 자유여행(원전 읽기) 하지 않고 하루 패키지여행('역사의 역사'를 통한 간접 독서)만 다녀와서 '아테네는 이렇더라'라고 장황하게 떠드는 셈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대신 '그 패키지여행 가이드(유시민 작가)가 어떻다더라'라는 패키지 상품 리뷰만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패키지여행 가이드인 유시민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역사의 역할이 현대의 우리에게 어떤 감정이나 메시지를 주는 이야기여야 함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펠로폰네소스 내전으로 망한 그리스...2000년간 자체 국가 수립 못해

유 작가는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같은 민족끼리 화합하지 못했다가 2000년 넘게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는 교훈을 뽑아내려는 듯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년~404년)은 당시 그리스의 패권국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동맹과 또 다른 패권국 스파르타를 한 동맹 간의 전투로, 그리스 세계 내의 내전입니다. 80년 전에는 페르시아에 맞서 싸운 스파르타(영화 '300'의 배경이 된 테르모필라이 전투. 기원전 480년)는 내전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는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아 아테네를 굴복시킵니다.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 영향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그리스 세계는 얼마 안 있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당한 데 이어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됩니다. 유시민 작가는 "그 후 2000년 동안 그리스 사람들은 그리스 땅에 자기의 국가를 세우지 못했다" "19세기 들어 오스만제국이 돌이킬 수 없는 붕괴의 징후를 드러낸 후에야 그리스 사람들은 아테네를 수도로 하는 그리스인의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라고 강조합니다.


유 작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미래에도 반복해서 나타날 행동 패턴과 사회 현상에 주목함으로써 인간의 본성 가운데 역사의 시간이 바꾼 것과 바꾸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게 만든다"며 "우리가 옛 역사서를 읽는 것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다시금 친절히 설명합니다.


예언 족족 빗나간 마르크스...그럼에도 갖는 가치

유 작가의 이 같은 '교훈주의적 태도'는 번번이 미래에 대한 예언이 틀린 카를 마르크스를 옹호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는 "(마르크스의)예언이 거의 모든 면에서 현실을 비껴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기계는 노동의 차이를 완전히 없애지 않았으며 임금을 모든 곳에서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리지도 않았다. 소상공인과 수공업자가 모두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지도 않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과 정당으로 결속하지도 않았다. 결국 이것은 논증이 아니라 희망 사항이었을 뿐이다"라고 명시합니다.


또한 '계급 간 투쟁이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된다'는 유물사관의 논리가 오류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 같은 원리는 계급과 계급의 대립이 폐지될 '공산주의 천년왕국'에서는 적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유 작가는 마르크스를 옹호합니다. 그는 "논리의 천재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이 내포한 논리적 모순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건 아마도 열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사회의 불평등과 인간에 대한 인간의 억압을 지독하게 혐오했으며 그만큼 간절하게 계급적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원했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유 작가가 '역사 그대로의 역사'를 주창한 레오폴트 폰 랑케를 배격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겁니다. 그가 이 책에서 다룬 16명의 역사가 중 유 작가가 직접적으로 정면 비판을 하는 역사가는 랑케가 유일합니다.

랑케는 '1494년부터 1514년까지 라틴족과 게르만족의 역사' 서문에서 "흔히들 과거를 평가하고 미래에 대비하도록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이 역사 서술의 과업이라고 하지만 이 책은 그처럼 고매한 과업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 책은 단지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보이려 할 뿐이다"라고 밝힙니다.


유 작가는 우선 역사가 스스로가 그가 처해 있는 환경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에 '역사 그대로의 역사'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역사는 과거에 있던 어떤 사건들 중에서 역사가가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선별해 서술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역사가가 속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또 랑케가 전적으로 문헌 자료에 의지해 역사를 서술한 점도 비판합니다. 유 작가는 "랑케의 작업 방식을 순수한 마음으로 추종할 경우 역사 서술은 자칫 문헌 사료를 가위로 오려서 풀로 이어 붙이는 편집 작업으로 전락하며, 역사가는 이미 죽고 없는 사람들의 꼭두각시가 될 위험에 빠진다"라고 설명합니다.


이어 "역사가는 해부학을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노련한 과학수사대 요원과 법의학자가 시신을 다루는 자세로 역사의 사실을 대면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랑케는 과거 문헌을 작성한 사람들의 의도에 놀아나는 '해부학 실습생'이라는 것이죠.


인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담긴 '사피엔스'..."역사다운 역사"

유 작가가 현대의 작가 유발 하라리를 높이 치하하는 것은 그가 쓴 '사피엔스'에는 현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있어서입니다. 그는 "하라리는 과학혁명이 불러올 인류의 미래에 대해 경고하고, 사피엔스와 지구 생태계의 생존을 도모하는 길을 제안하려는 목적을 품은 채 그에 맞게 인류의 과거사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했다"며 "하라리가 사피엔스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나는 그 두려움의 근원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라고 밝힙니다.


또 "그런 점에서 사피엔스는 훌륭한 역사책이다. 하라리는 독자에게 자신이 사피엔스의 역사를 보면서 느낀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고 공감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역사는, 그래야 역사다운 역사 아니겠는가"라며 화룡정점을 찍습니다.


유 작가가 이 같은 '교훈주의로서의 역사'를 강조한 것은 1980년대 학생운동에 투신했고 진보 정당 정치인으로 살아온 그의 이력 상 당연한 흐름일 것 입니다. 젊은 시절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줬을 사회주의 사상들은 역사나 문학, 미술에 있어서 '효용성'을 강조하니까요. 역사든 예술이든 그것은 사회주의 사상을 노동자 등에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았지요.


그 대척점에 선 것이 '유미주의'일 테지요. 예술을 어떤 수단으로 쓰이는 것을 배격하고 미의 창조를 유일지상 목표로 삼는 사조,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자들의 향락주의'라고 비판했던 것들입니다.


이쯤에서 역사가 E.H. 카의 말을 인용할 수도 있겠네요. "역사책을 집어 들 때 책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간 일자나 집필 일자가 때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누설한다".

작가 유시민이 살아온 정치적, 사회적 환경이 '교훈주의적 역사'로서 역사를 서술한 '역사의 역사'를 있게 했을 겁니다.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부터 현대의 유발 하라리까지 16명의 역사가들과 그들이 집필한 역사서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서술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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