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가 만든 유발 하라리 등 5인 인터뷰 다큐 '초예측-부의 미래'
초거대 플랫폼 기업...독점하며 성장
신규기업 인수해 미래 경쟁자 없애고
각국 경쟁 속 법인세 등 세제 혜택 받아
고용효과 적어 중산층↓...양극화 키워
최근 EU의 對 구글·애플 승소 의미 커
韓도 네이버·쿠팡 등 '플랫폼 지배' 막아야
이 책에 세 가지 점에서 '낚시성' 성격이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이 책의 제목에 들어간 '부의 미래'라는 표현은 분명 낚시성 성격이 있습니다. 이 문구는 '유발 하라리 같은 세계적인 석학이 가까운 미래에 어떤 산업이 뜨고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될 수 있을지를 제시하겠구나'라는 기대를 품게 하기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재테크와는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실은 초거대 플랫폼 기업의 지배가 강화될 가까운 미래의 자본주의의 모습을 담습니다. '초예측-자본주의의 미래' 정도가 적당한 제목이 되겠지만, 책과 다큐멘터리의 흥행을 위해 제목을 '부의 미래'로 달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이 책은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 스콧 갤러웨이, 이더리움 개발자 찰스 호스킨슨, 독과점 규제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장 티롤 교수, 신실재론을 주장하는 마르쿠스 가브리엘 독일 본 대학 철학과 교수 등 세계적 석학과 개발자의 인터뷰를 담습니다. 이를 통해 가까운 미래 자본주의가 어떤 모습이 될지를 예측합니다.
또 하나 낚시(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지점)는 유발 하라리의 존재입니다. 이 책에서 유발 하라리의 통찰은 그다지 새롭지 않습니다. 많은 석학들이 그렇듯 자신의 출세작에 모든 에너지를 쓰고 그 이후에는 자신의 명성에 기대어 별 힘들이지 않은 통찰을 내놓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심지어 이미 다른 책에서 밝힌 통찰을 재탕하기에 이릅니다. 기술결정론을 부정하면서 한국과 북한을 예시로 든 게 대표적입니다. 그는 "증기기관차를 발명했다고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는 게 아니다. 기술은 결정론적이지 않다"며 "이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오늘날의 한반도다. 동일한 언어와 역사를 공유하는 하나의 민족이 동시대의 과학기술을 사용해서 이렇게 다른 사회를 만들 줄 누가 알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낚시는 이 책의 저자들이 밝히는 미래상이 '초예측'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앞서 제시된 유발 하라리의 기술결정론 부정과도 연결됩니다. 그는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나노기술 등의 첨단 과학과 신기술은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세계를 극적으로 바꿀 것"이라면서도 "결정된 바는 아무것도 없다. 누구도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다만 "우리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지금 상태에 머무르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뿐"이라고 부연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분명히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이 우리 일반 대중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이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독점에 대한 규제가 필요할 것을 웅변합니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독점 기업은 GAFA로 대표됩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입니다. 이중 애플을 빼고는 플랫폼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스콧 갤러웨이 교수는 "구글은 신, 애플은 섹스, 페이스북은 사랑, 아마존은 소비를 향한 욕구에 호소한다"라고 정리합니다. 구글은 답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에 부합하는 현대의 신으로, 애플은 '고수입 종사자로 도시에 살면서 창조적인 일을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섹스어필 도구로서 인간의 욕구를 충족한다는 해석입니다. 페이스북은 말 그대로 인간관계를 촉진하고, 아마존은 굶주림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해소한다는 해석입니다. 각 기업들의 사업 성격을 단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하려니 해석과 생략이 과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이런 시도 자체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스콧 갤러웨이 교수의 가치는 이런 정의보다는 독과점 기업에 대한 규제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논거에 있습니다. 그는 "GAFA는 숭고한 비전을 내걸고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며 법률을 무시하고 경쟁 상대를 자금력으로 짓밟아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며 "다른 기업에게는 적용되는 규제들이 GAFA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합니다.
미국에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10년간 월마트가 낸 법인세는 640억 달러였지만, 아마존은 14억 달러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아마존은 그간 수익을 다른 사업에 재투자함으로써 법인세로 빠져나가는 돈을 절약했다고 합니다. 구글과 애플 등이 아일랜드에 유럽 본사를 세워 법인세를 절약해 왔다는 점도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 이들 초거대 기업들은 고용 부문에서 양극화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고용'을 창출하고 '다수의 고용'을 파괴한다는 지적입니다. 페이스북과 구글이 230억~250억 달러 규모의 수익을 추가로 내는 데는 2만8000명의 고용이 더 필요한데, 전통적 광고업계 대기업들이 이 정도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약 25만명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는 "GAFA는 성공의 열매를 수십만 중산층 대신 소수의 혁신가 계급하고만 나눈다. 중산층은 빠른 속도로 몰락하고 있고 오프라인 매장과 도시는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라고 지적합니다.
이들 독점 기업들은 자본력으로 새로운 경쟁도 미리 차단합니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했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장 티롤 교수는 "시장에 경쟁을 촉진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꼭 필요하다"며 기업의 신규 진입이 가능해야 하고, 신생 기업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신생 기업을 인수하면서 이와 경쟁할 소셜 미디어 기업이 사라졌습니다.
장 티롤 교수는 "기존 기업에 매수되기를 원하는 신규 사업자가 늘고 있다"며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서라도 독점기업이 경쟁 기업을 매수하거나 합병하는 걸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같은 규제로 대중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콧 교수는 가령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 왓츠앱과 분리되면 각 플랫폼들이 혐오 발언 메시지를 삭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기 플랫폼은 혐오 발언이 없는 청정 플랫폼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 노력할 유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실제 미국 법무부가 1984년 AT&T를 분리한 뒤에도 경쟁으로 인한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당시까지 AT&T는 미국 통신 사업의 80%를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법무부의 조치로 회사를 7개 지역 전화 회사와 장거리 전화 회사인 AT&T로 분할하자 경제는 타격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눈부시게 성장했다는 게 스콧 교수의 주장입니다. 그간 AT&T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연구실에 묵혀두었던 광통신이나 휴대전화, 데이터 통신 기술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고 그 결과 새로운 서비스들이 개발된 것이죠.
이더리움을 개발한 찰스 호스킨스 인풋아웃풋홍콩 CEO는 블록체인 기술이 GAFA의 독점 상황을 해소할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가령 우버와 에어비앤비 같은 중개 플랫폼은 블록체인을 이용한 '스마트 콘트랙트'로 간단히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스마트 콘트랙트란 프로그래밍된 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계약 내용이 자동 이행되는 시스템입니다. 제3자 없이 개인 간 직접 거래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찰스 호스킨스 CEO는 "그렇게 되면 시장을 독점하고 운전기사를 착취하는 중앙 집권화된 기업은 소멸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또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의 본질을 '모든 자산을 각 정부, 중앙은행을 거치지 않고 화폐화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사람들은 통화, 금, 은, 상품, 토지, 노동력, 지적 재산권, 항공사의 마일리지 등 가치를 지닌 것이면 뭐든 월렛(암호화폐 지갑)에 넣어 다니면서 스타벅스, 애플스토어, 맥도날드에서 토큰을 이용해 원하는 방식으로 결제할 것"이라며 "국가의 개입 없이도 가치가 교환되고 평가되며, 누구나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꿈의 시대'"라고 주장합니다.
다만 제 눈에는 이는 가상화폐 개발자인 입장에서 내놓는 대의명분에 불과해 보입니다. 현재 가상화폐에 투자한 개인들이 이런 목적으로 투자를 한 것은 아니지 않나요. 무엇보다 등락이 심한 가상화폐가 이 같은 역할을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장 티롤 교수는 가상화폐의 악영향을 또 지적합니다. 바로 중앙은행 기능 약화입니다. 그는 "암호화폐 때문에 통화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의 시뇨리지(화폐 주조 차익)가 줄어든다"라고 말합니다. 각국 중앙은행은 민간 은행으로부터 국채를 사들이고 대금을 민간 은행에 지불하는 형태로 화폐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국채에는 금리가 붙지만 현금에는 금리가 붙지 않는데 그 차액이 중앙은행의 이익이 되게 됩니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확산되면 중앙은행에서 얻는 시뇨리지가 줄어들어서 공공 부문의 수익이 감소하게 됩니다.
또 금융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습니다. 암호화폐가 주거래 화폐인 산황에서는 양적완화 등의 부양책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교수 역시 현재 실리콘기업들의 행보를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는 "오늘날 인터넷 세계는 법보다는 총이 더 가 가까웠던 개척 시대의 미국 서부 지역과 닮았다"라며 "이들은 인터넷 세계에 규제가 도입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자기자본을 늘리느라 분주하다"라고 평가합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교수는 "우리는 이런 기업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다"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매일 인터넷을 통해 메일을 주고받거나 뉴스를 읽거나 검색을 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행위가 모두 부가가치를 가진 데이터를 생성한다는 점에서 사실은 노동에 가깝다는 지적입니다. 물론 이 노동의 결과물로 플랫폼기업들은 막대한 수익을 가져갑니다.
이런 와중 그나마 희망적인 뉴스가 최근 있었습니다. 유럽연합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지난 10일 아일랜드 정부가 애플에 130억 유로 상당의 불법적 법인세 혜택을 제공했다는 EU 집행위원회 판단이 유효하다는 최종 판결을 한 것입니다. ECJ는 이와 함께 아일랜드가 애플에 제공한 조세 혜택이 불법 보조금에 해당한다며 아일랜드에 세금으로 회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같은 행보는 유럽연합 정도 돼야 가능하지 않을까, 애플이나 구글 같은 초거대 기업이 한국 정부나 사법부의 말을 들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각 국가나 연합체가 기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힘이 남아 있구나 하는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플랫폼 기업의 성장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카카오택시의 경우 서비스 초기에는 지원금을 줘가며 택시 기사들을 영입했지만 성장 후에는 수수료를 올리며 수익성을 키웠습니다. 배달의민족 등 배달 플랫폼의 모습도 유사합니다. 이들 플랫폼기업들이 사악해서가 아니가 플랫폼 사업의 경영전략이 '초기에는 시장 확대, 확대 이후 수익 극대화'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플랫폼의 종횡무진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가까운 미래를 담은 '초예측-부의 미래'에서도 그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