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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띠의 하루 Nov 19. 2024

[엄마 편지] 육아? 힘들진 않아. 대신…

피곤하긴 한데, 
힘들진 않아. 
대신 엄청나게 피곤해!



요새 많이 힘들지 않냐고 안부를 물어온 지인에게 한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냐고? 

피곤하다는 건 몸의 문제고, 힘들다는 건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해. 


모두가 잠든 새벽에 혼자 벌떡 일어나 네가 먹을 분유를 준비하고, 대낮엔 쪽잠으로 못다한 잠을 채우고, 네가 깨어있을 땐 오로지 너에게 집중하고, 잠들었을 땐 종종거리며 집안일을 하지. 임신 전에 운동을 꾸준히 해둘 걸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체력이 고파. 몸은 솔직하지. 매일 일어날 때마다 온 몸이 두들갸 맞은 것 처럼 아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니까. 겪고나니 2주 내내 쉬는 날 없이 출근한 건 전혀 피곤한 일이 아니었더라.  


하지만 무거운 눈꺼풀과 욱신거리는 관절이 내 피로를 증명하는 것과는 반대로, 마음 속에는 그 어떠한 힘듦의 증거가 없어. 너만 바라보면 내 안에는 푸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은은한 향기가 콧속을 가득 채우는, 또 언제나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동산이 생긴 것만 같았어. 


여보.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 


그런데 오늘 처음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빠가 집에 오자마자 쇼피에 잠깐 누워 쉰다는 게 나도 모르게 골아떨어졌어. 오후 10시가 훌쩍지나 할머니가 끓여다 주신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들이키는 데 눈물이 차더라.



● 언젠가 우리가 후퇴할 걸 알았지만… 


저번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엄마는 언제나 후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 대표적으로 수면 교육을 할 때 늘 마음에 담아두지. 


오늘은 반쯤 잠든 너를 침대에 눕히니 곧 잘 잠들더라. 유독 피곤한 날이었는데, 다행히 네 옆에서 조금씩 쉴 수 있었지. 물론 쌓인 피로를 모두 풀기엔 역부족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네가 잘자는 것만 봐도 마음 속 동산이 커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런데 낮잠 마지막 시간이 문제였어. 너는 늘 오후 5시부터 7시 사이 잠깐 자는 잠에 들기 어려워했어. 낮잠 양이 부족해서 눈을 감으면서도 내 품에 안겨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잠을 이기려했지. 

오늘도 여느때와 같은 안고 집안을 걸어다기를 수십 분. 피곤하지만 느껴지는 네 온기에 오히려 미소를 짓는 데 네가 잠이 든거야. 너는 안겨서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반수면 상태가 되기도 쉽지않은데 말이야. 


침대에 너를 살포시 내려 놨는데 그대로 잠에 빠져들더라. 내 휴식보다 네가 조금이라도 더 자면서 피로를 풀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게 내게 더 큰 기쁨이라 아빠에게 자랑까지 했지.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네가 다시 울기 시작하는거야. 평소 늘 있는 일이라 언제나처럼 네게 갈 준비를 하는 데 오늘은 뭔가 달랐어. 



● 수면 교육 26일 차, 스스로 진정하는 너


지금까지 너는 울기 시작하면 점진적으로 목소리가 커지기만하고 도통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 

하지만 오늘은 벌떡 일어나 방 문 앞에 섰는데 네 울음 소리가 점점 잦아드는 거야. 


들어갈 타이밍을 놓치길 어려번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8분이나 흘러있었어. 엄마는 불필요한 울음이라는 판단이 들면 즉각 너를 안아왔어. 아직 어린 네게 가혹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 네 울음 소리를 들은 건 처음 이었어. 

곧장 달려가고싶은 마음을 참아 낸 보람일까. 네가 스스로 다시 잠들더라. 물론 곧 다시 깨긴 했지만 네 성장에 또 감사했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네 감정 표현도 함께 자라난 걸 잊었지. 



요즘 부쩍 네가 감정 표현를 잘 해. 하루 수유량은 960ml를 넘지 않아야하는데 어느 날은 수유텀이 너무 짧아서 초과할 위기였지. 배고파 하는 너를 쉼없이 안아 달랜 뒤 아빠가 마지막 수유를 하는 데 네가 내 눈을 마주치지 않는 거야. 아빠에게는 한없이 시선을 주면서 말이지. 착각이겠거니 했는데 전혀. 네가 보고있는 빛을 내 쪽으로 옳겼는데도 요지부동이더라니까. 


엄마, 왜 날 혼자 내버려 뒀어. 
정말 미워. 


스스로 네가 진정한 뒤에 수유를 하는 데 네가 날 바라보지 않는 거야. 눈를 마주치려 얼굴을 이리저리 옮겨 쳐다봤더니 오히려 아래로 눈을 내리깔기도 하고 애매하게 초점을 다른 곳에 맞추기도 하더라. 가까스로 눈을 마주쳤을 때는 한 껏 서운한 눈동자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말하는 것 같더라. 


누군가는 기분 탓이라고 하겠지만 난 네 엄마잖아. 확실히 느껴지는 네 진한 감정에 나도 모르게 속이 상하더라. 



● 서운한 마음이 들었어?


아빠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내 마음 몰라주는 네게 서운하냐고 되묻더라. 


아니, 전혀. 
어떻게 그런 마음이 들겠어. 
단지 미움 받은 것 같아서 그래.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건 전혀 상관없어. 부모의 사정을 자식이 헤아릴 수 없고, 또 그럴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 해주면 고마운 일이지 그렇지 않다해서 어떻게 서운하겠니. 난 네 엄마인걸. 

하지만 네가 나를 한 순간이라도 미워했다는 사실은 마음에 꽤 큰 생채기를 내더라. 너는 그저 한 순간 감정표현에 솔직했던 거 알아. 비난과 증오가 아닌 것도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미움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끝없는 지하구덩이에 빠지는 느낌이었어.



● 육아는 대문자 T도 변하게 해. 


네 세대에도 mbti가 있을까? 엄마는 T성향이 강해. 감정보다는 문제해결에 집중하지. F성향인 아빠와 정반대라 연애 시절 아빠가 상처를 많이 받았어. 그래서 결혼기간, 6년 동안 아빠와 서로 이해하고 맞추는데 오래 걸렸지. 


당신이 F가 되다니…



육아 73일 만에 감정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아빠가 한 말이야. 그 말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지 뭐야. 6년 동안 어려웠던 일이, 단 73일 만에 이뤄지다니. 그만큼 내게 너는 절대적인 존재인가봐. 


네 손짓, 발짓, 시선하나에 마음이 요동을 쳐. 그런 사람은 내 생에 처음이야. 맞아. 너는 나를 지배하고 있는지도 몰라. 



● 육아가 힘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평생 육아 피로가 지속된다해도 힘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바꿔 말하면 네게 상처받는 일이 없었으면 해. 넌 내게 정말 소중하니까. 

하지만 이건 이뤄질 수 없는 일이겠지. 확실해.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했던 걸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 밖에 없거든. 


내일은 괜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어제도 딸 먹이겠다고 집에서부터 반찬을 바리바리 싸온 것도 모자라, 딸 집 청소와 빨래, 요리부터 너를 케어하는 것까지 모두 해주시는 모습에 참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인데 부모가 되보니 알겠더라.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어. 


육아는 더 힘들어 질거야. 
하지만 더 행복해 지겠지. 


앞으로도 분명 너는 나를 힘들게 할거야. 하지만 그 어떠한 위로를 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그래도 너를 언제나 사랑할거니까. 


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거든. 엄마가 힘들때는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니까 걱정마. 너는 있는 그대로 내게 표현해도 돼. 절대 네 손을 놓지 않을게. 


오늘의 힘듦은 여기 묻고, 내일 그 위에 너와 함께 손잡고 서있어야겠다. 


오늘도, 내일도 사랑한다.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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