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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희 Feb 17. 2024

아이를 혼내다가 남편이 너무 안쓰러워 울뻔했다.

남편은 남의 편이 아니라 남겨진 내 편이 아닐까 싶다.

둘째 어린이집 등원을 챙기는데 첫째가 휴대폰을 들고 와 사진을 보여줬다.


"엄마 이거 엊그제 다이소에서 찍은 건데, 이 인형 예쁘지? 나 놀러 가서 용돈 받으면 이 인형 살 거다."

순간 나는 머릿속에서 화가 번쩍했지만 우선 참았다.

"근데 엄마, 이거 다 팔리면 어쩌지?"

큰애는 나의 화가 부르르 떨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인형이 팔릴까 걱정이라는 소리를 더 했다.

"야~~~~~~아!! 김!!! 너! 이리 와 이리 오라고!!"


나는 결국 화를 못 참았다. 참을 수가 없었다.

다이소, 일주일에 열 번은 들르는 다이소. 아이들의 문구, 완구의 천국. 그 다이소에 안 그래도 이틀 전에 가서 필요한 것들과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사 왔었다.


우리 집은 아이들이 청소를 알아서 하면 500원을 주는데

보통은 한 개, 정말 열심히 청소했으면 두 개를 준다.

500원은 그래서 아이들이 돈을 쓰는 기본 단위로 생각하는데 문구점을 가거나 혹은 마트에 가서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저건 500원이 몇 개냐고 물어본다.

"저건 500원  10개라 비싸, 저건 500원 20개라 생일 때나 사야 해"

라고 알려준다. 거꾸로 500원이 한 개 정도 되는 문방구 뽑기는 큰돈이 아니라는 계산을 한다.


다이소의 물건은 보통 500원 4개~6개 정도다. 항상 그 정도 기준에서 구입 허용을 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큰애는

"저건 500원 겨우 4개네, 싸~네"

라는 기준이 생겼다.  대형 마트의 티니핑 피규어의 가격이  500원 24개나 필요한 것보다는 물론 저렴하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 '싸다'라는 단어가 걸렸다.


다시 아침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불같이 화가 난 나는 그 다이소 좀 그만 가자고 했다. 아니 그 전날 도서관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제 엄마랑 도서관 갔는데, 너 뭐 했어? 책 보고 가자고 했더니 은근슬쩍 엄마 휴대폰 손댔지? 도서관에 갔으면 책을 봐야지! 왜 손이 휴대폰으로 가?!!!!

그러다가 밖에 나가자고 했지? 비바람 치는데 우산까지 쓰고도서관 앞에 나가더니 기껏 한다는 이야기가 길 건너 편의점 가자고 했지?!!

야~~~~ 아!!! 그놈의 편의점! 겨우 삼각김밥 사자고 도서관까지 가서 편의점 가자고???!!!  

도서관까지 갔으면 책을 봐야지!!!

내가 뭐 안 사주는 거 있어?!

필요한 거 다 사주는데 정말 너무 하잖아!!"


여기까지 소리를 지르며 말하고 있는데 눈치를 슬슬 보던 둘째가 자기가 늘어놓은 자동차 및 각종 장난감들을 슬금슬금 바구니에 담아 치우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가야 해서 옷을 다 입혀 두고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둘째 입장에서는 안 혼나려면 무언가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나 보다. 겨우 여섯 살인데 와.. 미안함과 동시에 지가 늘어놓은 거 이럴 때라도 알아서 치우라고 뒀다.

다시 첫째에게 돌아와서.

"너, 맨날 500원 몇 개냐고 물어보잖아. 500원이 두 개건, 세 개건 너 나가서 돈 벌 수 있어? 생각해 봐. 밖에 나가서 500원 하나라도 구걸해서 받아 올 수 있겠냐고? 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낯선 사람한테 가서 말이라도 걸 수 있어? 돈은 적은 금액이라도 벌기 어려운 거야.

우리 집!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돈 벌어 오는 줄 알아?!!

아빠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책 보고, 수영장 가고 그러는 게그냥 좋아서 하는 게 아니야.

돈을 계속 벌려면 공부도 해야 하고, 체력도 있어야 하니까 운동도 결국 돈 벌려고 몸 만드는 거야.

야~! 어른도 돈 벌기 힘들어. 아빠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회사에서 싫은 소리 참아가며 일하는 거야. 남들이랑 일 하면서 돈 받아 오는 게 쉬운 게 아니라고. 어른이라서 참고하는 거뿐이야. 어른도 힘든 건 마찬 가지야."


이 말을 하다가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전공부터 계산하면 30년 동안 전자공학을 변함없이 붙잡고 있다. 회사를 좋다, 싫다 말없이 다니고 평소엔 새벽부터 일어나 책을 보고 운동을 가고, 사치도 없어서 운동화가 구멍 날 때까지 신는다. 감정의 낙폭이 적어서 같이 있으면 옆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살아봐야 아는 게 성격인데 나는 매번 ‘이 사람은 참 존경스럽다.’ 라고 생각을 한다. (단점이 없다는 게 아니고 단점은 다음에 기회 되면 나열.. 할 게 좀 있다.)

아이에게 아빠의 고생을 설명하다가 남편의 모습이 연상되면서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다. 정신을 차리고 울컥한 감정은 밀어냈다.


"그러니까 네가 벌지 않으면 싸다는 말 하지 말고, 아빠 밖에서 고생해서 벌어 오는 돈이니까 고마워해야 해.  500원은 밖에 나가서 막 벌어 올 수 있는 돈이 아니야."


그 사이 둘째는 잔뜩 늘어진 장난감을 다 치우고 어린이집 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둘째에게 고생했다고 500원 한 개를 쥐어주니 첫째가 자기도 이틀 전에 청소한 거 못 받았다고 달란다. 첫째에겐 혼낸 와중에도 500원 두 개를 쥐어 주니 눈물을 줄줄 흘리는 와중에도 돈은 꼼꼼하니 받아갔다.


점심에 남편과 통화하면서 큰애 혼낸 이야기를 했다.

"내가 예지 혼내다가 여보 생각이 나서 울컥했어. 여보 고생이 참 많아요."

라고 말을 남편에게 말을 해 주었다.


그런데 남편이 나의 감성 젖은 통화에 아랑곳없이 말을 꺼냈다.

"그래서 돈 아낀다는 예지엄마는 왜? 전자레인지를 오브제 샀어? 일반 모델이 더 저렴하지 않아?"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의 집 첫 구매로 2만 원 쿠폰이 있었어. 그걸로 일반 전자레인지 값으로 오브제 모델 산 거야~"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예지엄마 아끼고 사는 거 맞지? 예지랑 싸우지 말고 점심 맛있게 먹어~~~"


남편 생각에 눈물이 왈칵했었건만 애처로워 보였던 남편의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내 눈물도 쏙 들어가 버렸다.

자녀의 훈육은 왜 혼이 나야 하는지, 어떤 부분이 잘 못 된 것인지 짚어 주며 정리를 해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안 그랬다. 부모님은 소리만 지르고 종종 뜬금없이 이유 없이 왜 혼나는지도 모르고 혼내서 그냥 기분만 상했다. 그러다 식구니까 밥 먹다가 다음날까지 시간이 흘러 그냥 풀렸다.


나의 아이들은 이유를 알고 혼이 나는 상황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또한 어릴 때  경험을 내 아이에게 반복하는 어른이 안 되길 노력해 본다.


**첫째가 혼난 뒤에 물어왔다.

“근데 엄마 구걸이 뭐야? ” 그 흔한 단어를 모를 줄이야.

부분적으론 그냥 혼나고 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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