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 밥 먹을 기력도 없고, 주말엔 침대에서 못 일어나는 당신에게
나는 지금 번아웃이다. 아마도 번아웃이 맞을 거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할 생각만으로 답답하다.
퇴근하면 밥 먹을 기력도 없어서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대충 때운다. (귀찮다고 굶진 않는다...)
주말에는 침대에서 못 일어난다. 친구와의 약속도 부담스럽다.
솔직히 이게 번아웃인 줄 몰랐다. 그냥 "요즘 좀 힘드네?" 정도로 생각했다.
근데 우연치 않게 블라인드에서 번아웃 체크리스트를 보고 해봤다.
연인과 이별 후 듣는 발라드 가사처럼 대부분 내 얘기다. 젠장.....
- 번아웃이 온 OOO 대리 -
블라인드에 이런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해야하지. 게다가 일도 하려니까 업무 강도가 2배는 되는것 같아요ㅜㅜ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 불안하고 퇴근 후에는 밥 챙겨 먹을 에너지도 없어서 대충 때우거나 배달 시켜서 먹습니다. 주말에는 종일 침대에서 나오질 못하겠어요. 시체처럼 누워있구요. 친구랑 약속도 부담스럽습니다.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연애나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ㅠㅠ"
공감하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저랑 똑같으시네요. 저전력모드"
"주말에 침대 밖으로 못 나가는거 개공감 ㅋㅋㅋ"
"쓰니 번아웃 맞는 듯 무조건 쉬어야 함"
리멤버 커뮤니티에도 아래와 같은 글이 있었다.
"이제 꼴랑 이직 3개월차인데 출근만 생각하면 답답하고 불안해요. 일은 많은데 흥미는 없고, 동료들한테도 짜증나기 시작함.. 이게 번아웃인가요?"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9회까지 다룬 내용들은 아래와 같다.
관계 맺기 (1~5회)
거절하기, 선 긋기, 빌런 대처하기 (6~9회)
근데 이 모든 걸 하다 보면... 솔직히 지친다. '이걸 내가 왜 다 하고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도 들고, 거절하는 것도 에너지가 든다. 선을 긋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빌런과 싸우는 것도 힘이 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번아웃이 온다.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매슬락(Christina Maslach)은 번아웃의 세 가지 요소를 제시했다:
1. 정서적 소진: 에너지가 바닥남
2. 비인격화: 나와 타인을 사물처럼 대함
3. 성취감 저하: 뭘 해도 뿌듯하지 않음
구체적으로 체크해보자.
[번아웃 체크리스트]
(0점: 전혀 아니다, 1점: 가끔 그렇다, 2점: 자주 그렇다, 3점: 거의 항상 그렇다)
1)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지쳐있다.
2) 요즘 감정을 느끼기조차 힘들다.
3)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4) 일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5)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곤하다.
6)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줄었다.
7)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고 싶다.
8) 예전처럼 일을 진심으로 대하지 못한다.
9) 일이든 사람이든 모두 귀찮다.
10) 요즘 나는 내가 무능하다고 느낀다.
11) 뭘 해도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12)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13) 성취감이 거의 없다.
[점수 해석]
0~10점: 정상 범위. 일시적 피로일 가능성 高
11~20점: 경미한 번아웃 상태. 회복 루틴 점검 필요
21~30점: 중등도 번아웃. 회복 개입과 환경 조정이 필요
31점 이상: 고위험 번아웃. 상담 및 적극적 지원 권장
(출처: 마음코칭연구소 이음)
총점 기준 11점~20점 사이라면 회복 루틴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만약 총점 기준 21점이 넘는다면? 스스로가 괜찮은지 '각 잡고' 살펴봐야 하는 상태다.
필자는 회사 후배들과 함께 해봤다.
체크리스트로 4명이 해봤는데 10점 이하가 단 1명도 없었다. 모든 점수 대에 골고루 포진해 있었으며, 대부분 모든 문항에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런 게 육각형일 필요는 없는데....ㅎㅎ)
번아웃의 세 가지 요소 중, '비인격화'를 살펴보는 일이 출발점이다.
정서적 소진과 성취감 저하 역시 비인격화된 개인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비인격화는 자신을 일이라는 목적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로 여기는 상태를 말한다.
'나'라는 개인은 업무를 해내기 위한 존재만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존재이자,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존재이며, 넷플릭스를 정주행하기 시작하면 아침이 올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번아웃 상태에 있을 때는 이 모든 의미가 사라지고, 자신을 오로지 일과 관련한 도구적인 존재로만 취급하게 된다.
사실 필자가 그랬다. 출근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서 또 일하고, 잠자고... 심지어 회사나 회사 동료들이 나오는 꿈을 꾸는 날이 많았고, 샤워를 하면서도 회사 일을 생각하는 적이 많았다. 퇴근해서 와이프와 저녁을 먹을 때도 회사 얘기를 했다. 번아웃이기 때문에 회사, 업무, 동료에 대한 좋은 얘기가 나갈 일이 없다. 와이프는 싫어도 내 얘기를 매번 끝까지 다 들어줬다. (사실 내가 고위험 번아웃까지 가지 않은 것은 전부 와이프 덕분이다. 지면을 통해 와이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일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수준의 일이라는 가정 하에) 일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물질, 명예, 심리적인 보상을 받는 상호과정이다.
그러나 일상이 일과 관련한 생각과 감정에만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면, 그때는 나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소모감, 허무감, 분노 등이 커질 수 있다.
비인격화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향한다.
내가 상대하는 고객과 동료에 대한 비인격화 정도는 틀림없이 자신에 대한 비인격화 정도에 비례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남을 관찰하듯 나를 관찰하면서 자기 자신을 판단하고 자책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냉소가 커지고, 우리가 타인을 오직 그들의 기능이나 역할로만 정의하는 순간:
고객을 '처리해야 할 업무 목록'
동료를 '나의 목표 달성을 위해 조종하거나 감내해야 할 도구'
로 인식하는 순간, 그것이 비인격화 상태이자 번아웃의 위험성을 가진 상태임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리멤버에 이런 글이 있었다.
"요즘 동료들 얼굴 보기도 싫고, 고객 응대할 때 마다 짜증이 난다. 그런데 이게 타인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 자신한테도 그런 거 같다... 나를 그냥 일하는 기계로만 보는 느낌이랄까?"
충분히 이해가 되는 글이었다. 나도 그랬다.
일단은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이것저것 쭉 적어보고, 마지막에는 5개를 넘지 않는 정도로 줄여본다.
이렇게 써보는 행위만으로도 현재 나의 삶을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① 내가 어떤 가치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는지, ② 어떤 가치에는 눈길을 주지 못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처음에 이렇게 적었다.
내 가치 리스트 (초기 버전)
1. 커리어 성취
2. OO억 모으기
3. XXX 업무 성과
4. 승진
5. 회사에서 인정받기
5개 모두 일과 관련된 거였다.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전부 일 밖에 없나?'
노트패드를 찢어내고 다시 적었다.
내 가치 리스트 (수정 버전)
1. 건강하게 오래 살기
2.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주기적으로 좋은 시간 보내기
3. 내 커리어에서 좋은 성취를 해내기
4. 넉넉한 삶을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돈 모으기
5. 나만의 취미를 즐기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일단 일은 3번과 4번. 5개 중 2개로 줄었고, 게다가 사실 4번의 경우는 꼭 일과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없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은 근로소득 이외에도 안정적인 노후자산 파이프라인 구축 필요성을 잘 알고 실천하고 계실 꺼라 본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결해보자!
추상적인 가치만 적으면 끝이 아니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결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적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 아픈 증상 해결을 위해 빠르게 병원 진료 후 이번 달부터 PT 시작하기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 보내기" → 저녁 식사는 와이프와 반드시 함께 하기, 퇴근 후 회사 노트북 안켜기
"나만의 취미 즐기기" → 캘리그라피, 베이스기타 배우기
당장은 못 하더라도, 이걸 마음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독자님들도 한번 해보시라~
업무와 관련된 자극에만 노출되면 자연스럽게 그 루틴에 익숙해진다.
자신을 다양한 자극에 노출시키면서 주의를 분산시키는 행위는 스스로를 통합적인 개인으로 인식하는 데 유용하다.
정신적인 자극도 좋지만, 이미 업무에 대한 너무 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져 있을 테니 신체에 자극을 주는 편이 더 낫다.
속 시끄러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땀 흘리는 것이 최고다!!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는 필자의 가까운 지인은 X세대이지만,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인 러닝을 시작했다. "나이키 런 클럽", "아디다스 러너스", 동네 러닝 크루 등. 혼자 뛰는 게 아니라 함께 뛰는 문화.
내 지인은 사는 곳 근처 러닝 크루에 들어갔다.
주 2회, 저녁 7시, 한강.
처음엔 3km도 힘들었는데, 한 달 지나니 10km도 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뛰는 동안만큼은 회사 생각이 안 난다고 한다.
블라인드에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이번에 러닝크루 들어갔는데요. 번아웃 진짜 많이 나아진 거 같아요. 주2회 저녁에 한강 뛰는데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랄까? 누워 있어도 나던 회사 생각이 하나도 안나요."
러닝 이외에 다른 운동들도 좋다. 필자처럼 남들이 모두 하는 건 일부러 안하는 청개구리들은 참고하시길...ㅋ
클라이밍: 요즘 핫한 실내 스포츠. 생각보다 저렴하고, 문제 푸는 재미가 있다고 함
서핑: 양양, 부산 등 주말 서핑 여행. 바다에서 파도 타면 머리가 비워진다고 함
골프: (필자는 허리디스크로 못치지만) 스크린 골프, 필드 모두 좋음. 집중하다 보면 일 생각이 안 난다고...
필라테스: 코어 운동, 자세 교정. 부부 필라테스 해봤는데 강추!!
요가: 호습에 집중하면서 스트레칭, 명상에 효과적이라고 함
그냥 걷기: 복잡하게 생각하기 어렵다면, 하루에 음악 들으면서 딱 30분만 걸어보자.
운동은 행복감과 관련된 물질인 세로토닌과 신경세포의 성장을 유도하는 물질인 BDNF(뇌유래 신경영양인자)의 생성을 증가시킨다.
블라인드에 관련 내용이 있었다.
"얼마 전에 클라이밍 시작했는데 문제푸는데 집중하다보면 회사 생각 전혀 안남. 퇴근 후에 주2회 가는데 번아웃이 뭔지 까먹음.ㅋㅋㅋ"
"따로 시간 내서 운동하기 그래서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음악 들으면서 20~30분정도? 이 정도만 해도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요."
의식주의 질 향상은 자기 돌봄의 시작이다.
자기 돌봄의 행위는 그 자체도 중요하며, 스스로를 인간적인 취약함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사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면서도 은근히 쉽지 않은 일들이다.
개인위생을 잘 챙기면서 내가 좋아하는 깨끗한 옷을 입어보자.
지인의 사례를 소개한다:
홈웨어 업그레이드: 집에서도 기분 좋은 옷 입기. 유니클로 라운지웨어 샀다. (겨울에는 후리스가 짱임!)
향수 뿌리기: 좋아하는 향 하나 정해서 매일 뿌리기. 조말론 우드 세이지 앤 씨 솔트.
스킨케어 루틴: 세안 → 토너 → 세럼 → 크림. 이 과정 자체가 자기 돌봄. (남녀노소 불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번아웃 왔을 때 스킨케어 루틴 만들었어요. 세안하고 토너 바르고 세럼 바르고 크림 바르는데 이 과정이 나를챙기는 느낌이랄까? 기부니가 좋아집니닿ㅎㅎ"
배달 음식을 줄이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한다.
아직 싱글인 나의 후배는 이렇게 했다.
밀키트 활용: 마켓컬리 밀키트. 10분이면 근사한 한 끼.
샐러드 정기 배송: 샐러디. 매일 신선한 샐러드 배달.
단백질 챙기기: 매일 아침 그릭 요거트에 그래놀라 넣어 먹기.
카페 대신 집에서 커피: 캡슐 커피 머신 (네스프레소). 커피 내리는 과정 자체가 힐링.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들이 있었다.
"밀키트 정기배송 시작했는데 배달음식 먹을 때보다 죄책감도 없고 기분도 좋음. 게다가 10분이면 요리 끝!"
"매일 아침 그릭요거트에 그래놀라 넣어먹기 시작했어요. 단백질이 채워지니까 점심때까지 든든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나를 챙기는 느낌이라서 뭔가 뿌듯합니다요"
최대한 비슷한 시간에 침대에 들어가고 침대에서 나온다.
회사 선배의 사례이다.
수면 루틴 만들기: 자기 1시간 전부터 폰 안 보기, 디밍 조명, 라벤더 향 디퓨저 켜기.
수면 앱 활용: 캄(Calm) 앱. 명상 음악, 백색 소음.
침구 업그레이드: 좋은 베개 구입. 목도 안 아프고 숙면.
기상 후: 일어나자마자 커튼 열고 햇빛 쬐기. 세로토닌 분비. (단, 주말만 가능함. 평일은 새벽 출근ㅜㅜ)
커뮤니티의 글이다.
"수면 루틴을 만들었어요 11시 되면 폰은 절대 안보고, 조명 켜고 명상 음악 틀고 12시에 무조건 잡니다. 7시에 일어나구요. 규칙적으로 자니까 번아웃 많이 나아지는거 같아요."
"사람들 말듣고 좋은 베개 샀는데 진짜 인생이 바뀌었어요. 목도 안 아프고 레드썬 했습니다. 침구에 투자하는거 강추"
번아웃은 "일을 내 전부가 아닌 내 삶의 '일부'로 잘 데려가기"의 문제다.
일이 나쁜 게 아니다. 일은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일이 당신 삶의 전부가 되는 순간, 번아웃이 온다.
솔직히 얘기하면, 나는 지금도 번아웃과 싸우고 있다.
완벽하게 극복한 건 아니다.
가끔은 다시 무너진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뭔지
신체에 자극을 줘야 한다는 것
나를 돌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실천하면, 조금씩 나아진다.
번아웃 극복 3단계
삶에서 중요한 가치 적어보기 (균형 회복)
신체에 자극 주기 (러닝, 클라이밍, 걷기, 필라테스 등)
의식주의 질 높이기 (홈웨어, 밀키트, 수면 루틴 등)
번아웃이 왔을 때 3가지 솔루션을 다 해보기 바란다. 내 삶의 가치를 한번 적어보고, 러닝크루에도 들어가고, 밀키트 주문해서 나를 위한 요리도 만들어서 먹고, 수면 루틴 만들고.. 하다보면 아마도 3개월 뒤에 극복은 아니더라도 많이 나아질 것이다. 당장은어렵겠지만 하나씩 해보길 추천한다. 천천히, 하나씩.
다음 11회에서는 "퇴근하고 나서 회사 생각 안 하는 방법"을 다룰 것이다.
번아웃을 극복했는데, 퇴근하고도 회사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면?
일과 삶을 분리하는 법, 함께 알아보자.
[Point]
1. 번아웃 체크리스트: 총점 기준 21점 넘으면, 각 잡고 스스로 괜찮은지 살펴봐야 한다.
2. 번아웃의 핵심은 비인격화. 나를 일의 도구로만 보는 순간, 번아웃이 온다
3. 삶에서 중요한 가치 5개를 적어보고, 구체적 행동으로 연결해보자.
4. 신체에 자극 주기: 러닝, 클라이밍, 서핑, 골프, 필라테스, 요가,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걷기라도 해보자.
5. 의식주의 질 높이기: 나를 위해 홈웨어, 스킨케어, 밀키트, 단백질, 수면 루틴, 좋은 침구를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