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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의 우주 Jun 10. 2019

그냥 해보자 시리즈-1

[퇴사] 해보자

그냥 해보자 시리즈의 첫 번째는 바로 퇴사다.


아무 생각 없이 극단적으로 그냥 한 퇴사는 아니다. 5개월간의 대장정의 시간이 필요했다. 월급쟁이에겐 온전히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가 바로 급여를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매달 정해진 날 꼬박꼬박 찍히는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건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였다. 물론 잔고가 남아있는 시간이 매우 짧고 찍히는 금액이 적고 귀여울지라도 말이다. 한 달 정말 잘 살아냈다! 라며 사회가 나에게 물질적으로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았다.


월급은 또한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데 필요한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돈을 벌면서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거나 배우는데 투자하기 시작했고 사십 대에는 20평대의 자가에서 강아지와 오손도손 내 삶을 꾸려가고 싶다는 행복한 꿈도 꿀 수 있게 만들어줬다. 돈을 번다는 것과 모은다는 것은 멈춤 없이 이어져야 하는 습관과도 같았다. 그래서 퇴사를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인적 성장과 더 큰 야망을 위해 당장에 퇴사를 선택하겠어!라고 패기 있게 행동하기엔 나에게 월급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5개월의 고민 끝에 결국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이 결정에 만족스러운 바보보다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를 선택했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부여해 본다. 퇴사를 고민하는 5개월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고통스럽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토록 치열하게 나 자신을 모든 생각의 한가운데에 놓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때 온전한 기쁨을 느끼는지, 어떤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나에 대해 사유했다. 이런 근본적인 생각들이 정리되어야만 나아가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항상 강해야 하며 완벽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야만 내 능력을 인정받고 나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믿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스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결국엔 나를 좀먹었다.


일하면서 내가 실수하는 부분이 있거나 무언가를 혼자 해내지 못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때, 내가 한 일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있을 경우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쉽게 예민해졌다. 이런 나약한 모습들은 부끄럽고 용납할 수 없는 나의 그림자였다. 더 강해져야 해, 더 완벽하게 일을 해야 해, 나만 잘하면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압박했다. 물론 이러한 성향이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스타트업 특성상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빠르게 적응했고 잘 해냈으며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헛헛함과 공허함에 시달렸다. 완벽에 대한 집착이 커갈수록 나에 대한 실망감은 비대해졌고 항상 부족하다 느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바닥을 칠수록 자존심은 얼마 남아 있지 않던 자신감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잘도 자라줬다. 결국 나는 최악의 상태에 다다랐다. 보잘것없는 밑천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 언제나 곤두서 있었다. 냉소적이었고 부정적이었으며 논리적인 척하는 남 탓 쟁이가 되어 있었다. 최악 중에도 이런 최악이 없었다. 이렇게 되지는 말자고 생각했던 모습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나를 마주하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받아들였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아집이었고 나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자만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완벽하게 일을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흠이 없는 구슬처럼 결함 없이 무언가를 해낼 수 없다. 사람이란 응당 살아가면서 어떤 식으로든 깎이며 자신만의 결을 만들어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완전무결의 상태는 경이로울 순 있지만 무언가와 섞이기는 어렵다. 세상은 자신만의 결을 빚은 사람들이 교류하면서 풍성해지는 곳이기에 완벽보다는 자기가 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퇴사를 마음먹은 순간부터 하고 난 후 한 달 여가 지난 현재까지 여전히 나는 나와 분투 중이다. 하지만 약 6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변했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조금씩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혹은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사람들과 같이 주어진 일을 담대하게 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온전히 쉼에 몰입하는 시간을 가지며 깨달은 것은 누구나 나 자신이 되는 것에 집중해야 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퇴사는 삶의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확장의 발판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수없이 많이 퇴사를 고민하는 시간들을 맡이 할 텐데 지금의 경험을 밑거름 삼을 수 있게 오늘을 더 가득 채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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