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아 Feb 15. 2024

목욕탕의 의미

탕 속은 타임머신.

 

설날이 끝이 났다.

이번에도 하지 못했다.

어김없이 가을은 오고 추석도 돌아올 것이다.     


‘추석에는 갈 수 있을까?’     


아들이 훌쩍 크고 나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무엇이든 함께하는 재미가 제법 크다.

장기를 가르쳐도 곧 잘 이해하고,

한자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모습에 가르치는 재미도 있고,

달리기 하나만 해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함께 앉아 초코우유 한잔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재미도 날이 갈수록 커진다.     


무엇보다 최근 목욕탕에 함께 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집 근처 도보로 6~7분 거리에는 동네 목욕탕이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런 동네 목욕탕이다.

2년 전 이사를 오고 나서 동네에 목욕탕이 있는 것을 알고 가게 되었다.

시설이 좋은 곳도 아니고 규모가 큰 곳도 아니다.

그런데 아들과 함께 가는 목욕탕이 큰 기쁨과 더불어 재미가 될지 몰랐다.     


나는 아들에게 등을 내주고 

아들은 나에게 등을 내준다.     


탕에 들어가 함께 평소 못한 이야기도 해보고 장난도 해보고 있으면 

세상근심 걱정은 모두 물에 씻겨 내려져가고는 한다.

어느덧 목욕탕은 아들과 나의 긴밀함 아지트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곱디곱고, 

부드럽다 못해 만지기도 아까운

아들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씻겨보기도 한다.

아들을 씻기고 있자면 어릴 적 나의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난다.    

 

사실 나는 목욕탕을 즐겨 가지도 않았다. 

친구들과 가던 목욕탕도 서로 먹고사는 일에 바빠서 갈 일이 없어졌고, 

목욕탕은 답답하기도 하기에 자주 찾아가지는 않았다.

아들과 함께 다시 목욕탕으로 발걸음을 시작했을 때 문득 생각이 난 두 사람이 있었다.    

 

'아들 둘이지만 금연한 마냥 그 아들들과 함께 목욕탕을 못 가고 있는 아버지'

'딸 둘을 키웠기에 아들과 목욕탕을 가보지 못한  또 다른 아버지 장인어른'     


장인어른과는 손주가 조금 크면 꼭 함께 가서 소원을 이루어드리려고 했지만 

아들이 크기 전 하늘나라로 먼저 가셨다.

손자 핑계가 아니라 진작 ‘사위가 등 한번 시원하게 밀어드렸더라면’ 하고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후회가 밀려든다.    

 

아버지와는 어릴 적 목욕탕을 자주 다녔다.

아마도 지금 나와 아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내가 중학교가 되었을 무렵 아버지와 함께한 목욕탕의 기억은 사라졌다.

마지막이 언제였는지도 알 수 없다.  

   

이제 시간이 흘러서 아들이 손자와 함께 목욕탕을 한번 모시고 가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쉽게 발걸음과 시간이 그리고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목욕탕 가는 게 뭐가 어렵다고... 자꾸 미루고 미루게 된다.

핑계를 좋아하는 아들의 결말은 뻔하다.

행동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이다.      


어릴 적 이태리타월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문지르던 아버지.

태평양처럼 넓디넓은 아버지의 등을 밀다가

팔이 아파서 온갖 하기 싫은 표정을 지은 나.     

이제는 그 넓은 등이 많이 굽었고 작게만 느껴진다. 

고생의 흔적이 세월이 흔적이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느껴진다.    

  

아들과 탕에 있으면 가만히 목욕탕에 온 사람들을 살펴본다.

혼자 온 사람.

아들과 온 젊은 아빠.

친구들과 온 젊은 사람.    

 

올해 추석이 다가오기 전에는 뿌연 목욕탕 안에서 아버지의 등을 밀어주고 있는 

나와 내 등을 밀어주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 목욕탕이 아닐까 싶다.     


당신에게 목욕탕은 무슨 의미가 있나요?

혹시 저처럼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가지고 있지는 않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