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의 <투명사회>를 읽다
한병철 교수의 책은 <피로사회>와 <시간의 향기>에 이어 세 번째 맞이한다. 전 편의 책들에서도 그랬지만 첫 장을 넘기면서 부딪히게 되는 철학적 언어들의 난해함이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나만의 오만일 수도 있지만, 책의 맥락을 이해하고 저자의 관심사와 책에서 반복되는 핵심 개념을 찾는다면 어렵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투명사회... 정치권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말들이라 익숙하기도 하지만 투명이라는 말 겉표면에 흐르는 맑다는 이미지 때문에 우리는 투명사회라는 단어를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이상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온 정치적 과거사, 권력 중심의 경제개발 속에서 겪어야 했던 불합리성에 대한 반발 심리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투명사회를 추구하면서 '왜 투명해져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누가 투명을 외치는가?' 하는 주체적 의문을 품고 투명사회에서 나타나는 의도와는 무관하게 발생되는 파생적 문제들을 검토한다면 우리가 그동안 경험적으로 가져왔던 단순한 생각들에 물음표를 달 수 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든 것을 드러내는 정보 향유의 평등을 이야기 하듯 투명하다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이 통제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투명사회라는 것은 더 통제적이고 비도덕적이 되며, 성과라는 몰인격적 목적과 결부되는 순간, 그것은 성과 중심의 자기 착취의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논리적 연결고리는 한교수가 앞선 책에서 주장하는 '피로사회'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시간을 쪼개서 사용하는데도 항상 바빠야 하는 예속적 삶으로 가는 지름길과 연결되기도 한다.
투명사회가 권력에 의한 정보의 투명성이 외쳐지고 무작위적인 투명성으로 인하며 인간미를 상실하고 자신을 찾지 못하게 되는 단초가 되는 것처럼, 포르노 영화에서 처럼 욕구가 거세된 '보여주기식' 전시사회로 탈바꿈 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린다. 자본주의의 속성인 대량 생산과 소비로 인하여 과속사회가 되기도 하고 자신이 페놉티콘 속의 사람들인지도 모르고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게 만드는 폭로사회와 통제사회 속의 호모 사케르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의 근원적인 출발점을, 바로 속도와 대량유통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사회'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화된 온라인 사회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이 '긍정, 명백, 전시, 가속, 정보'라는 좋은 말로 포장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포르노, 폭로, 통제사회에 더욱 한 걸음씩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투명사회는 현대사회가 추가하는 행동양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으로 본다면 현대사회에서 발생되는 사회적 문제들의 근원이 되는지도 모른다.
어렵지만 우리의 사회를 이해한다면 결코 어렵지 않은 책.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권력형 사건들에 대해 조금의 관심이 있다면 오히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재미있다는 것이 조금은 서글프지만...말이다.
저자의 의견을 100% 존중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현재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문제점들과 연결시켜 읽는다면 더욱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10년 전 책이지만 우리가 자본주의 디지털 사회를 살고 있는 한 투명사회가 불러오는 문제들은 항상 유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