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생각과 글쓰기에서 배우는 것들,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에서..
유시민. 또렷이 기억난다.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초임 국회의원으로 첫 대면을 할 때, 정장에 넥타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많은 의원들로부터 사과를 요청 받았지만 기죽지 않고 버티어냈던 그 장면.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틴핵의결이 되자 울부짓으며 본회의장 바닥에서 통곡을 하던 장면. 상대 패널들을 할 말 없게 만드는 뛰어난 말솜씨을 자랑하던 토론의 여러장면,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보여줬던 슬픔들... 이렇게 유시민은 몇몇의 장면들과 함께 내 마음 속에는 정치인으로서, 논객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자유주의자로 자리잡고 있다.
(아이러니인지, 그가 선구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가 맞다고 믿었던 그 시절 국회의원 복장의 자유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렇게 시기와 질투, 능멸에 가까운 무시를 당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은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국민과 가장 가깝게 소통한 대통령으로 회자된다.)
그런 유 작가가 여러 책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의 책을 지금까지 찾아서 읽지 않았다. 그의 생각에 동조하거나 따르기가 싫어서라기 보다는,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보면 생각이 너무 같았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해 보면 다른 점도 많았기에 그의 사상을 배우기 보다는 한 마디 말 속에서 나오는 배움의 지식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자기의 생각과 달라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이 책 <표현의 기술>은 유 작가의 정치적 색깔과는 다소 거리를 둔, 하지만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생각을 표현하는 기술'에 대한 글이다. 작가의 말처럼 생각의 표현은 사상이 자유로워야 하고 표현의 구속이 없어야 하며, 받아들이는 객체의 다양성이 존재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선입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봐도 안되고 다른 이의 생각이 다만 다르다는 이유로 적으로 규정해서도 안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표현의 준비가 부족하고 표현한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건강함이 부족한 사회인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를 문제삼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 자체를 폄하하고 매도하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에 맞추기 위해 예단된 결론에 도달시키는 논리의 비약이 난무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 혹은 읽으려 하지 않고, 공격적인 글로 도배해 나가는 상황은, 작가의 말대로 '진리에 대한 맹목적 추구가 자유를 파괴하게 되는 자가당착적인 행위'임에 분명하다. 말 한마디로 인한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속 뜻 보다는 자신의 이익, 자신의 정치적 상황에 이용하려는 색깔론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도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만이 진리이기 때문에 자신과 다르다는 것은 사회의 건강함이 아니라 단지 나의 반대편에 있는 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건강한 글쓰기도 중요하겠지만,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폐쇄적 자기강화 매커니즘의 해소, 그것을 바탕으로 한 독자들의 건강한 사고가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논리의 비약, 표절, 악플과 같은 정신을 파괴하는 글쓰기가 아닌 건강한 생각을 이끌어내는 글쓰기와 글읽기를 기대해 본다. 비록 사이다와 같은 정치적 발언은 없다 하더라도 글로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배우게 만든 책. 아마 '유시민'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표현의 기술>의 한 장면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조금 더 팩트에 바탕을 둔 토론 문화와 협의의 문화가 더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쓰기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큰 수단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s.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사고를 이해하고 지식적인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작가가 인용하는 많은 책들을 소개 받으며 나도 읽고 싶다는 독서 욕구를 자극받는 경우가 많다. 유시민 작가도 마찬가지... 유작가 덕분에 글쓰기의 자세 뿐만 아니라 많은 책들을 소개받는 덤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이 글도 내 맘에 들지 않는다. 글을 쓰기 보다는 생각의 나열이 오히려 더 맞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