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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n Apr 18. 2022

'알아서 한다' 말 속에 숨겨진 의미

우리의 말 속에는 책임회피와 폭력 그리고 기대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을까?

장면 #1

'알아서 해 주세요!' 단골 음식점이나 맛집의 사장님과 친분이 있을 때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다. 주인의 판단에 믿고 맡긴다는 의미에서 정이 스며든 표현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알아서 해달라는 말을 들은 주인은 그 손님의 취향을 미리 알아야 되고, 지금 먹고 싶은 것을 정확히 캐치해야 되고, 자신을 믿는 만큼 기대에 충족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장면 #2

몇 달 전 유력 대선 후보의 아내가 한 말이 문제가 되었다. '알아서 할 거야.' 그 짧은 말을 들고 나서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비슷한 상상을 했을 것이다. 이야기 하지 않고, 지시 하지 않아도 권력은 그렇게 묵시적인 판단과 알아서 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말을 뱉은 입장에서는 강압적 지시에 따른 위법성을 피해갈 수 있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엄청난 폭력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가만히 뒤돌아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알아서 한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생활 속에서야 '알아서', '스스로' 하는 것은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이고 선생님들이 학생에게, 교도관이 재소자에게 말할 수 있는 그 말이 '알아서'이듯, 알아서 하기를 기대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알아서'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또 하나, '알아서' 해야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반드시 '정의로운' 일일 필요도, '선의의 가치판단'도 필요 없다. 그저 자신에게 '알아서' 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기대'만을 충족시켜 주면 된다. 자신이 판단해서 올바른 일 보다는 그 사람의 '기대'에 맞추는 것이 '정의'가 되는 가치의 역전이 발생된다. 물론 '기대'에 충족하는 일을 하더라도 '결과'가 잘못되면 그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 그래서 '알아서'해야 하는 사람들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예측 #1

그렇게 본다면 '알아서' 한다는 말이  지시와 복종의 관계, 상하 관계에서 사용되고, 권력이 가미되고 정의와 부조리의 가치 판단의 내용이 들어가게 되면 강압적인 지시나 강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통제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알아서' 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책임회피와 지시에 따른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이익이 있지만, '알아서' 해야 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책임감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알아서' 한다는 말이, 장면 #2의 모습처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사용되하는 말이라면, 우리는 앞으로 훨씬 더 위장되고 고도화된 양아치 권력 집단과 싸워야 할지도 모를 것 같다. 


서로 믿는다는 의미로 사용된 이 말이, 권력자가 사용하는 순간 우리의 삶을 옥죄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죄는 있어도 죄를 지은 사람을 발견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 법꾸라지를 자처하며 법의 구멍을 숭숭 빠져 나가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어쩌면 우리가 자주 쓰는 말들에서 비롯되지 않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추측 #2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사기관이나 언론이 책임을 지면서까지 '알아서' 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알아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껏 아니까 말이다. 세상 참 무섭기도 우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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