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 , 취준하다 사장되다.

우당탕탕 그냥 내던져진 퍼스널 브랜딩의 길, 그 솔직한 기록들

by 설기로운 서리

지금 이 글 2022년 5월에 기록을 남기고 딱 1달이 되었을 시점 나는 뷰티업계로서 세계 1위 회사 로레알에 합격했다. 마케팅 사관학교로 유명한 로레알의 공채 소위 '로레알 베이비'였다. 회사를 다니는 3년간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2025년 7월 22일 퇴사한 지 근 3개월이 되어 간다.


가진 것 없어도 불안정해도 도전할 수는 있잖아.

이건 SNS에서만 보던 완성된 성공기가 아닌 설익은 도전기다.



<아래 글은 2022년에 남긴 비공개 글입니다. 지우고 현재의 기록으로 새롭게 시작할까 하다 과거의 내 솔직한 마음과 기록이기에 함께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아 공개합니다. >


스물 아홉 디자이너, 취준하다 사장되다.

가볍게 시작한 사진 계정을 시작으로 퍼스널 브랜딩의 길로 스르륵 스며들었다. 갓생 피곤하고 관심 없다 생각했는데, 불안함과 초조함에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갓생의 중심이다. 본업 그래픽 디자이너를 넘어 소셜 마케터, 브랜드 아트디렉터, 콘텐츠 에디터까지 N잡러가 되어버렸다. N잡러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까지 우당탕탕 부딪히며 배우는 퍼스널 브랜딩 그리고 스물 아홉 인생의 미래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기록한다.




1월, 가볍게 시작한 사진계정이 내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3개월 반만에 팔로워 6천 달성

아이디어스 온라인 클래스 오픈

오프라인 전시 참여

공간/여행 플랫폼 데이트리퍼 활동

개인 디자인 굿즈 브랜드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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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팔로워 220 / 5월 20일 팔로워 6200이상 / 여행,공간 플랫폼 데이트립에서 정식 데이트리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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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스 사진 색감보정법 클래스 오픈 / 개인 브랜드 오픈 예정




처음에는 정말 가볍게 시작했던 취미 계정이었는데,

점점 관심을 받고 협업 제안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콘텐츠 분석과 브랜딩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회사에서 콘텐츠 마케팅과 디자인 경력이 있긴 했지만, 직접 데이터를 분석하고 자유롭게 시도해 본 적은 없었다. 다양한 콘텐츠 시도와 실험을 통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소셜 콘텐츠 마케팅, 퍼스널 브랜딩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내 삶에 대해 솔직하게 풀어보려 한다.




스물 여덟 9월

‘무언가가 되기 전 꿈꾸는 시기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해’


작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방황했던 시기였다.

어릴 적 부터 매순간 하고싶은 게 넘쳐났던 나에게 하고싶은 일이 없다는 것은 상상해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작년, 이제는 무언가가 되어야만 하던 시기에 나는 길을 잃었다.


대학생 시절, 사실 나는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내왔다. 수많은 서포터즈, 대외활동, 아르바이트, 2번의 인턴, 4개의 언어 자격증, 그리고 외주 작업들. 그래서 계약 연장을 제안하던 회사를 그만 두면서도 나는 정말 자신 있었다. 어디든 갈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막상 본격적으로 취준에 뛰어들고 내가 해온 것들을 정리하고 뒤돌아보면서 정말 충격받았다. 정말 놀랍게도 나는 단 한순간도 내가 결국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내가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었던 거지?


정말 많은 일을 해오고 열심히 살았다 자부했는데, 되돌아보니 나는 당장 눈 앞의 내 생계를 위해 하루살이로 해왔던 것이었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나의 모든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나의 우선 순위는 한달 치 생활비를 미리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내 나이에 남들이 하는 것을 또 잃고 싶지 않아했다. 그래서 꾸역꾸역 대외활동, 여행, 인턴을 하며 나름 잘 해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이 모든게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닥치는대로 해온 것이라 돌아보니 그냥 중구난방 스펙인 것이다. 정말 억울하게도 난 쉬지않고 그 중요하다는 스펙이란 것을 쌓았고, 일했고, 노력해왔는데, 내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그 알량한 자소서로 증명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레임, 얕게 남아있던 자신감, 자존감까지 빠르게 추락했다.



그리고 가장 나를 괴롭혔던 건 내가 동경했던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스물 여덟 그리고 곧 스물 아홉, 그것도 여자 나이 스물 아홉이면 취준 시장은 물론 그냥 모든 기회는 끝난다는 것처럼 대하는 현실에 나는 숨이 막혔다. 유학을 다녀오며 어린 나이에 그저 시키는 데로 학교를 다니고 문화차이로 그리고 시스템상 늦어진 학년이 내 평생 발목을 잡았다. 그냥 묵묵히 주어진 일을 열심히 그것도 나름 잘 해내어 왔는데 나는 항상 뒤쳐져 있었고 이상하게 변명을 해야만했다. 차근히 올라왔는데 내 인생은 이상하게 기회는 늘지않고 줄어갔다. 내가 생각한 어른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사회에 나왔는데 내게 주어진 일이라곤 떨어지면 날아가는 이력서 자소서 쓰는 일 뿐 의미있는 일이 없고, 그 와중에 사람들은 내 나이면 시작이 아니라 결과를 보여달라고 한다. 막연히 10년 전 내가 상상한 내 모습은 정말 멋있었는데, 현실의 나는 너무 초라하고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나이는 어른인데 나는 길을 잃었고 내 인생 하나 결정하지 못하니 나는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니 뭐란 말인가.



이 때 아이러니 하게도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이 있다.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

사실 본 의미는 이런 상황에 쓰이는게 단연 아니지만,

쉬지 않고 무언가를 했는데도 바라던 일이 일어나지 않던 나에게

이 말은 약간의 위로가 됐다.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기분이랄까.

내 인생 정말 처음으로 아무 일도 하지않고 그냥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그만큼 패배감과 나에 대한 실망에 지쳐있었을 때였다.

취준이란 건 사람을 정말 갉아먹더라고.


취준을 시작하고 처음은 방황하면서도 불안함에

우대에 ‘사진,영상 제작 가능자’ ‘포토샵 활용’ ‘SNS 운영 경험’만 있으면 그냥 넣고봤다. 그 직무가 나랑 맞는 지는 일단 붙고 보자 식이었다.

그러니 될리가 있나. 방황하고 이리저리 섞여있는 내 생각이 자소서에서도 분명 보였을 테다. 그러길 몇 달, 탈락 메일에 익숙해지면서 마음이 조금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물 여덟의 끝자락,

나는 내 인생에 다시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문구를 보게 된다.

“무언가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정말 웃기게도 지원서에 좌우명을 적기 위해 검색하다가 찾았다.

그런데 이 말을 보고 내 생각이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

‘취준’이라는 시간을 단편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일부분으로 본다면 이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쓴다는게 너무 아까웠다. 내가 무언가가 되지 않은 자유로운 이 시간을 내가 ‘무언가’가 되기 위해 선택하는 시간으로 쓰고 싶었다. 그러니 결국 ‘취업준비’라는것도 내가 선택 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미래를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진지하게 내 미래와 인생의 목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직업이란 내 삶의 일부분일 뿐이데, 젊은 내 인생의 모든 시간을 무슨 직업을 가지느냐에만 집중하는게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미래에 이루고 싶은 것들, 그리고 우리 가족과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한번 뿐인 인생을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이 최적으로 행복할지 고민했다.



이런 고민들을 사실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나는 자유로움과 그걸 기록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직업을 얻자가 궁극적인 직업적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2022년 내 목표로 ‘기록하자’를 세우게 되었다. 내가 보고 느꼈던 모든 영감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내 2022년의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목표들의 결과, 전반전인 지금 2022년 5월

나름 선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록하지 않아 아쉬웠던 1순위 유럽 여행 사진으로 사진 계정을 만들었는데, 급속도로 성장해 삼개월 반만에 6천명의 팔로워가 넘어버렸다. 그러면서 온라인 클래스, 전시, 브랜드 오픈까지 작년의 나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불안한 프리랜서의 마음을 조금 안정시켜줄 일로는 외국 기업 외국 지사에 합격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전 원격 근무로 완벽한 디지털 노마드의 삶도 지켜냈다.




여기까지가 2022년의 나의 고민과 방향, 그리고 그에 대한 지금까지의 나의 대답과 이에 대응하여 이루어온 큼직한 일들 몇가지이다. 취준을 하고 있을 대방황의 시기로 심지어 이때는 이렇게 아득바득 취직한 곳을 때려치고 나올 줄 몰랐지. 지금 이 글 2022년 5월에 기록을 남기고 딱 1달이 되었을 시점 나는 뷰티업계로서 세계 1위 회사로레알에 합격했다. 마케팅 사관학교로 유명한 로레알의 공채 소위 '로레알 베이비'였다. 회사를 다니는 3년간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2025년 7월 22일 퇴사한 지 근 3개월이 되어 간다.


과연 아무것도 없는 서른 하나 여자가 모험을 하면 인생이 망할까? 내가 퇴사를 생각하며 반복해서 나에게 되물었던 질문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하지만 서른 인생을 살면서 배운거라고는 ‘넘어져도 깨져도 나는 안울어’ 캔디 근성과 ‘아무리 힘들어도 죽으라는 법은 없더라’ 라는 운명적인 낙관론이라 어떻게서든 미래의 나는 내가 굶어죽거나 뒤쳐지게 두지 않을 거란 것만 믿고 있다.


가진 것 없어도 불안정해도 도전할 수는 있잖아.

이건 SNS에서만 보던 완성된 성공기가 아닌 설익은 도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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