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zy Office 4화] 서울살이에서 만난 동물들 (1)
서울에서 시작한 첫 번째 직장은 경쟁사를 넘어서기 위해
대표의 강한 푸시 속에서 여유 없이 쫓기듯 지내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사세를 확장하며 대기업 출신의 관리자들이 이직해서 넘어왔고,
기존 관리자들과의 신구 세력 갈등 / 꼰대 선배의 관리자 선임 등으로
영업팀 내부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직장생활에선 상사에게 잘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상사에게만 잘하고 후배들은 쥐 잡듯 잡으려고만 하는
선배 관리자에 대한 반감을 크게 가졌고 출근을 하는 나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난 동료나 파트원들을 보호하려 노력하는 파트장이었지만,
자신의 실수는 관대하게 넘어가고 타인의 실수는 용납하지 못하는
인성을 가진 이에게 계속해서 휘둘리며 점차 퇴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직장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산책을 하다 생각지도 못한 귀여운 동물들을 만나게 될 때이다.
어릴 때부터 애완견은 아니지만, 시고르자브종과 함께 커왔었기에
서울살이를 하는 1인 가구인 나에게 한 가지 로망이 있다면
귀여운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것이었다.
(물론 혼자서 강아지의 케어가 불가능하므로 이룰 수 없는 로망이다.)
강아지뿐 아니라 거의 모든 동물들을 좋아하는데,
곤란한 상황에 처해 도움이 필요한 동물 친구들을 만난 적도 여러 번 있다.
어느 날 도림천에 산책하러 나가던 길.
주택 골목가 배수로 쪽에 몇몇 어르신들께서 모여 계신 걸 봤다.
휴대폰이라도 빠진 건가 해서 가까이 다가가서 여쭤보니
새끼 강아지가 배수로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다.
"아..... 이건!?
강아지가 아니라 너구리 같아요~새끼 너구리!!!"
구해달라는 듯 애처로운 눈빛으로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
흡사 강아지처럼 보이기도 했고 동물원에서 너구리를 본 기억이 있는진 가물하지만,
라면 봉지에서 자주 봤던.... 롯데월드 로고로 봐왔던
바로 그 너구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밖으로 나오고 싶어서 몸을 일으키다가 자꾸 넘어지며 낑낑대는 녀석을 보니,
얼른 구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손으로 배수로 덮개를 잡아
힘껏 당겨봤지만 꿈쩍도 않는다.
이 모습을 본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더 모이기 시작하고,
지렛대 비슷한 것도 구해준 분도 있었지만 마땅히
지지할 곳이 없어서 들어 올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야생동물인데 구조해서 방생도 어디에 해줘야 안전할지 잘 모르니
동물구조관리협회 같은 곳에 물어봐야 할 듯싶었다.
결국 119로 전화해야 할 거 같다고 말씀드리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연락을 취해주셨고 소방대원들께서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녀석이 나올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갑자기 배수로 안쪽으로 들어가 버려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윽고 119가 도착했고 빠루로 금방 배수로 덮개를 열었지만,
아무래도 직접 나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듯하니
기다리지 마시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신다.
119가 올 때까지 기다렸던 분들은 다들 지나가던 길이었지만,
새끼 너구리가 너무 안돼 보여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분들이셨다.
하지만, 기약 없이 언제까지 대기할 수도 없으니 119를 믿고 돌아가기로 했다.
....... 그리고 난 산책을 하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녀석이 잘 빠져나왔을지 영 신경이 계속 쓰인다.
그 캄캄한 배수로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라도 본다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은데.......
도저히 궁금해서 잠시 후에 다시 나가보았더니, 이젠 새로운 분 몇몇이 그곳에 모여있는 게 아닌가?
다행히 녀석이 배수로를 빠져나와서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밑에서 낑낑대며 울고 있었던 것이다.
좀 전에 배수로에 갇혔던 너구리라고 설명드리고, 사람을 피해서 이리저리 도망치는 녀석을 계속 쫓다가.......
다른 배수로 옆에 난 좁은 구멍을 발견하고는 자신을 구조하려 했던 귀인(?)을 몰라보고
다시 기어들어가려고 머리부터 끙끙대며 집어넣는 녀석을
간신히 목덜미를 잡아서 건져 올렸다.
외모는 너무 귀엽지만, 야생 너구리다 보니 손가락을 물려고 계속 시도하였고
나중에 알았지만 물리면 광견병에 걸릴 수 있다고 한다.
고양이 잡듯이 목덜미를 잡은 채, 바로 근처에 있는 파출소로 우선 데리고 가려는데
계속해서 몸부림을 친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저씨께서 장갑드려요? 하길래,
내 가방만 좀 열어달라고 부탁드려서 겨우겨우 가방 속에 쏙~집어넣었다.
야행성이라 그런지 가방 속에선 얌전하게 잘 있는다.
가까이 있는 파출소에 도착해서, 상황 설명을 드리고 지금 이 가방 속에 새끼 너구리가 있다고 하니......
"와~나 너구리 한 번도 못 봤는데~!!!" 하며 눈이 하트로 변하시는 여경님.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아닌 경우엔 산에 방생을 해주면,
잘 살 수 있다고 관계 부서에서 확인을 해주시고선
종이 박스로 옮겨서 파출소 뒷산에 풀어주기로 했다.
아마도 얼마 전 많이 왔던 비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서 배수로까지 흘러 들어온 게 아닐까 한다.
물릴까 봐 장갑도 챙겨주시는 친절한 경찰 두 분과 함께 뒷산을 조금 올라서,
박스를 열어주니 잠시 후에 쏜살같이 뛰쳐나가는 너구리.
도로가에서 차에 치이는 건 아닌지 오늘 하루동안 많이 걱정 됐었는데 그제야 맘이 편해지고,
도와주셨던 관악구 119 대원분들, 미성파출소 경찰분들,
이름 모를 지나가던 분들께 감사한 생각이 든다.
너구리야~앞으론 배수로에 빠지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동물농장 내레이션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