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zy Office 8화] 서울살이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노부부
서울살이를 하며 월세방을 구해 살고
몇 차례 이사를 하다 보면,
서러운 경험을 하게 될 때가 많다.
한겨울에 고장 난 보일러 수리를 차일피일 미루거나,
이사 갈 때 과도한 청소비를 청구하는 등의 집주인을 만났을 때인데
둥지를 틀고 지냈던 보금자리에 대한 정이 뚝 떨어지게 된다.
지금은 잊고 싶은 기억들이지만 부산으로 돌아와서도 이따금씩 추억하게 되는 한 노부부가 있다.
새로 이사하게 된 원룸 건물은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최상층에는 건물주 노부부가 거주하며, 건물 관리를 직접 하고 계셨다.
오가다 주로 할머니를 마주쳤었고 인사드리면
그때마다 짧은 안부 말을 건네시곤 하셨다.
쓰레기 분리수거 정리는 직접 할머니가 하셨는데,
어느 세입자가 엉망으로 쓰레기를 뒤섞어둔 걸 보셨을 때면
올라오는 역정과 하소연을 내게 말씀하시며 풀기도 하셨다.
왠지 눈치 보여서 나도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가다
분리수거 중이신 할머니를 뵙게 되면 도로 다시 되돌아간 적도 있다.
어느 날은 명절을 앞두고 고향 가서 부모님을 뵙는지 물어보셨고,
그냥 솔직하게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안 내려간다고 말씀드렸다.
많이 놀래시며, 안타까워하셨던 할머니.
이후로 종종 내 방문을 노크하시며 갑작스레 찾아오시곤 했는데.....
깜짝 놀라 문을 열어보면, 뜨거운 열기가 나는 냄비를 전해주고 가시며
"방금 한 거니, 한 번 먹어봐~." 라는 짧은 한마디.
감사하면서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나고.....
복잡 미묘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릇은 깨끗이 설거지하고,
쇼핑백에 넣어서 할머니 댁 문 앞에 놓아두었다.
이렇게 몇 차례나 직접 한 음식을 가져다주셨고,
이후에 내가 이사를 가게 되던 날.
항상 무뚝뚝하고 말수도 없으셨던 건물주 할아버지께서
내게 오만원권 한 장을 내미신다.
이사 끝나고서
식사라도 하게.
여기 오래 살아줘서.....
고마웠네.
마음이 뭉클해지며, 이번 이사는 전과 달리
정말 정든 곳을 떠나는 시원섭섭함이 함께였다.
살았던 원룸보다 훨씬 넓고 쾌적한 환경의 오피스텔로 이사하게 되었지만,
그때처럼 약간의 잔소리와 함께
내 삶에 관심을 가져주셨던 정이 이따금씩 그리워질 때가 있다.
언젠가 서울에 다시 가게 되면 그 할머니, 할아버지를 다시 뵙고
인사드리고 싶은데..... 건강히 잘 지내시고 계실는지.
너무 늦지 않게 찾아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