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시절, 엄마는 집에서 파마를 말아 주셨다. 파마롯드, 파마지, 고무줄, 파마약 등 모든 재료를 미용실 하는 친척에게 빌려왔다. 단독주택 2층집 야외 베란다에서 나를 위한 미용실을 차리면 동네친구들이 몰려와 구경했다. 그 시절 사진 속 내 머리는 밝은 갈색에 꼬불꼬불한 파마머리였다. 머리가 얇고 숱이 별로 없는 머리에 최적의 헤어스타일이었으리라.
2년 전 이맘때쯤, 첫째 아이가 파마를 하고 싶다고 해서 프랜차이즈 헤어숍을 데리고 갔다. 회원권을 끊어 할인을 받았지만 어른 파마비용과 별 차이가 없었고 예쁘긴 했지만 금방 풀려 다시 또 가야 했다. 아무리 서비스라지만 워킹맘이 아이를 데리고 또 방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번 미용실 가는 어미 입장에서 비용 역시 부담이었다.
딸 둘 맘이나 딸 둘과 나란히 미용실을 간 적은 없었다. 애들 머리를 잘라줘야 하는데 어딜 봐도 싸게 자를 수 있는 미용실이 근처에 없었다. 친정에 내려가서 엄마한테 푸념하자 집 앞 미용실을 가자고 하셨다. 내 학창 시절에도 있었던 가게였다. 아이 두 명 커트가격이 서울에서 한 명 가격이었다. 정말 만족하고, 앞으로 친정에서 애들 커트를 하리라 다짐했다.
이번 추석 연휴에 내려가자마자 엄마한테 애들 파마를 하러 미용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머리길이만 잘라도 됐지만 둘째 아이의 염색타령을 파마로 달래 놓았기 때문에 당장 해야 할 파마였다. 엄마는 사촌오빠의 아내가 하는 미용실로 가자고 하셨다. 집 앞에서 해도 충분히 서울보다 싼 가격일 텐데 뭐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따라나섰다. 자동차로 20분 거리였다.
대학가 뒤편 단독주택 1층 한 칸에 있는 미용실이었다. 자리는 딱 두 개였고 이미 한자리에는 짧은 백발의 할머니가 앉아서 파마 중이셨다. 엄마, 나, 딸 둘이 들어가자 미용실이 꽉 찼다. 아이들의 머리를 책임져줄 헤어디자이너는 바로 우리 첫째 아이와 같은 나이의 손녀를 둔 할머니셨다.
첫째 아이부터 파마롯드를 말았다. 앉은 아이는 머리에 쓸 얇은 파마피를 한 장씩 전달해야 했다. 손이 빠른 베테랑 할머니 미용사는 뚝딱 마쳤다. 비닐캡을 쓰고 전기파마모자를 썼다. 그리고 대기시간은 2시간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간식을 먹어도 텔레비전을 봐도 시간은 안 갔다.
애 둘을 데리고 일단 나왔다. 대학교 후문 상권이 발달한 곳이라 뭐라도 있을 테니. 머리는 수건으로 돌돌 말았다. 다행히 약냄새는 거의 안 났다. 손 잡고 길거리로 나오는데 전혀 아무렇지 않아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가끔 힐끔힐끔 쳐다보는 어른들의 눈길도 나만 느꼈다. 문구점, 캐릭터 샵에 들러 용돈으로 쇼핑을 했다. 도넛집에 가서 허기도 채웠다. 1시간 반이 훌쩍 넘었다.
파마롯드를 풀고 중화제를 뿌리고 대망의 샴푸시간이 왔다. 여기에는 샴푸의자가 없었다. 허리를 수그리고 머리를 감았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아이들은 당황하지 않고 지시에 따랐다. 나만 괜히 걱정했다. 머리의 컬은 완벽한 용수철이었다. 예민한 둘째 아이는 스프링컬을 보고 당황하며 안 예쁘다고 다들리는 귓속말을 했다. 우리 애들 머리카락은 얇은 직모라 컬이 잘 나올 수가 없는데 이런 컬이라니. 2시간 동안 애들과 놀아준 스스로를 칭찬했다. 단순한 둘째 아이는 향기로운 에센스를 바르며 컬을 다듬어주자 이제야 마음에 든다고 했고, 첫째 아이는 처음부터 예쁘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아줌마 파마'는 아이들에게 최적화된 파마가 아닌가 싶다. 오히려 아줌마인 나는 파마할 때 너무 세게 말지 말아 달라고, '아줌마 파마'같이 안 나오게 해달라고 하는데. 아줌마도 싫어하는 그 '아줌마 파마'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어린이 파마' 쯤으로.
그래서 이 긴 여정의 시술비는 얼마?
단 돈 만오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