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독감을 앓은 날부터 입맛을 잃었다. 회사에서 11시가 넘으면 울리던 배꼽시계도 고장이 났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오후에 일하기 위해 잠을 택했다. 하루 한 끼 먹는 날들이었다.
허기가 지지 않는 상태가 오히려 나았다. 점심시간에 나가서 밥 먹을 에너지는 없었고, 집에서는 누군가 나를 위해 밥을 챙겨줄 사람도 없었다. 주말에 엄마가 오시기 전까지. 아프다고 올라오시면 좋겠다고 하자 한달음에 SRT 타고 오셨다. 만 2년 반만의 재방문이셨다.
일주일 내내 하루에 한 끼 먹었지만 몸무게의 범위는 평소와 같았다. 뭔가 억울한 기분이었다. 먹은 게 없는데 왜 몸무게는 줄어들지 않는지. 아픈 김에 살이라도 빠지면 아플만할 텐데. 한편으로 이해가 가는 게 딱 한 끼 분량의 움직임이 있었다. 하루 내 걸은 걸음수가 평소의 절반에 한참 못 미쳤다.
가을과 겨울 사이 쌀쌀해진 날씨에 마시는 부드러운 라떼를 머릿속에 그렸다. 아무 감흥이 없었다. 어떤 종류의 커피를 떠올려도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크림커피조차도. 왠지 슬펐다. 라떼의 계절에 라떼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다니.
오늘은 11시가 넘자 배가 고팠다. 그 배고픔이 느껴지는 순간 흥이 났다. 식욕이 다시 생겼다는 게 감사했다. 여전히 목소리는 갈라져서 영 불편했지만 식욕의 귀환은 왠지 반가웠다. 딱 열흘만이었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지만 몸무게를 매일 재는 여자에게 지금까지 식욕은 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반갑고 고맙고 기쁨을 주는 녀석이 되었다. 이제 몸이 좀 회복되려나 하는 기대감도 같이 왔다.
커피 입맛은 아직도 없다. 매일같이 생강청만 마신다. 몸이 스스로 필요한 것과 해 되는 것을 구분한다. 커피를 맛있게 먹는 그날이 진정한 건강을 되찾는 날이려나.
내일 또 몸무게를 재면서 맘이 바뀔까 봐 그전에 감사의 글을 식욕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