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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Dec 27. 2023

비열한 팀장

직장 내 괴롭힘

일 년에 한 번 긴 휴가를 쓸 때마다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었다. 혹시나 전의 업무처리가 잘못되어 회사에서 연락이 올까 봐 또는 대직하는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였는데 업무파일에 내용이 없어 당황할까 봐 등. 닥치면 별거 아니고 다 해결가능한 일일 텐데 마음 한편은 늘 무거웠다.

 

이번 휴가는 달랐다.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기분이 살랑살랑 가볍고 스멀스멀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해방감이었다. 휴가를 다녀오면 더 이상 팀장이 없다는 사실이 그간의 휴가와 다른 점이었다. 휴가기간은 공휴일 포함 11일이나 되었지만 특별한 계획이 없이 시작했다. 휴가 일정의 기대감으로 기쁨이 생긴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비열하다는 단어가 위로가 되었다. 직장 선배에게 팀장의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를 풀어놓았다. 우리 직장에 비열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유레카! 아무리 이해하려 애써서 머리로 납득시켜도 가슴에 얹혀서 소화가 안되던 그의 언행에 이보다 더 알맞은 단어가 있을까. 적확한 단어는 마음을 시원케 할 뿐만 아니라 위안도 줄 수 있구나. 그동안 직장 내에 사람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보긴 처음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 ]


1.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함.

2. 정당한 이유 없이 훈련, 승진, 보상, 일상적인 대우  등에서 차별함.

3. 다른 근로자들과는 달리 특정 근로자에 대해서만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되어있지 않은 모두가 꺼리는 힘든 업무를 반복적으로 부여함.

4.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을 거의 주지 않음.

5.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제공이나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시킴.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교육을 듣던 친구가 내 이야기라고 하며 PPT 장표를 하나 찍어 보내줬다. 마치 개안한 것 같은 깨달음이 이어졌다. 욕을 동반한 폭언과 위협을 가하는 행동 등의 극단적 경우만 괴롭힘이라고 생각했다. 고의성이 없고, 팀장으로서의 역할 수행이 서툴다고 치부했다. 상한 내 마음은 뒤로하고 그의 성격과 행동을 연결하고 이해하기 바빴다. 그럴 수는 있지만 그래서는 안되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다른 사람한테 가 있고, 온갖 잡무는 다 붙어있었다. 팀장이니까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책임자들 싹 다 무시하고 본인이 제어하기 쉬운 대리들에게 중요도 높은 업무를 지시하는 것도 팀장의 권한이라 여겼다. 업무 분장에 의도가 다분했지만 상사니까 수긍했다.  모든 팀원들이 힘들어하고 있었으니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자명했지만 무의식 중에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다.


어렴풋하던 불편하고 힘든 상태를 명확하게 가닥을 잡아주는 단어와 상황의 표현이 어스름하고 두루뭉술한 위로보다 격려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가 떠나는 기일이 정해진 현실은 하루하루 버틸 희망을 주었다.




업무 돌아가는 판을 보고 올해 마지막주를 주욱 휴가로 그어놓은 지 오래였다. 이유는 아이들의 방학이었다. 뒤늦게 그 휴가를 본 팀장은 본인의 휴직이야기는 쏙 뺀 채 나를 이리저리 떠보면서 일정을 바꾸게 하려고 했다. 안되자 내 휴가와 딱 겹치는 출국일자와 휴직을 공표했다. 내로남불도 유분수지, 개인사로 정기인사보다 3주를 앞서 들어가면서 팀원들한테 미리 말도 않다가 뒤늦게 휴가 지적질은.


원래 회사는 힘에 부친 곳이었다. 늘 일에만 치이다가 사람과 부딪히니 또 다른 부침이 있었을 뿐. 일은 지나가면 해결이 되어 잊혔다. 사람과의 기억이 흐릿해져서 힘들었던 일이 그냥 추억이 되는 꼴을 이번에는 못 보겠다. 회사에서 업무 외에 목소리를 잘 내지 않던 내가 팀장의 송별선물 이야기에 '굳이'라는 토를 달았던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팀장 때문에 몇 번을 울었던 다른 책임자도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선물을 준비하겠다는데 쌍수 들고 반대했다. (물론 결국은 했다.)


다음 팀장으로 어떤 사람이 올 지는 아직 관심 밖이다. 오기 전까지 충분히 나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싶다.


고생했다.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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