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아침 7시 회사에 왔다. 사무실리모델링으로 돌아가며 당직을 서고있고 오늘은 내차례 였다. 정각에 도착했으나 문앞에 일하시는 분들과 트럭들이 이미 대기중 이었다. 현장소장님이 6시나 7시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에게 12시간이 주어졌다.
일단 차에 들어가 잤다. 전날 드라마 '손해보기싫어서'를 새벽 3시 넘어서까지 봤다. 유튜브 편집본을 2배속으로 돌렸다. 12회짜리 드라마를 4시간만에 봤다. 가슴이 아린 장면에서는 일반 배속으로 바꿨다. 가끔 뜬금없이 남들 다보는 드라마가 아닌 덜 인기있는, 시기가 지난 드라마를 몰아볼 때가 있다. 보통 할일을 한껏 미루고싶을 떄나 가슴이 텅 빈 느낌이 들떄였다. 이번엔 주기가 좀 빨리 왔다.
도무지 무엇을 해야할지 정할 수 없었다. 회사 근처에 어딜 가서 시간을 보내야할 지도. 일단 배가고파 밥부터 먹었다. 배가 꽉 차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서점을 갈지, 유명 카페를 갈지 선택지를 떠올렸다. 근처에 카페가 많지만 그 카페는 수년전부터 아인슈페너가 유명한 곳으로 집에서는 멀고 회사에서도 한참 걸어야해서 맘먹고 가야했다. 그날이 오늘이었다.
부지런히 걸어가 주문한 그 커피는 분명 맛있었다. 크림도 커피도 흠잡을 데 없었다. 그러나 뭔가 아쉬웠다. 누군가 같이 있었으면 했다. 들고간 책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냥 앉아서 후루룩 마시고 나왔다. 이상했다. 새로운 카페와 커피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바뀐 걸까. 좋아하는 게 별로 없는 나는 조금 불안했다. 맛있는 커피와 빵을 먹으며 누렸던 기쁨의 부피는 30대보다 줄었다. 그래도 이건 오랜 즐길거리였다. 물음표가 생겼지만 그대로 두고 자리를 떴다.
다시 회사 근처로 왔을 때는 9천보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언덕진 공원을 걸었더니 옷에 땀이 스몄다.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던 마음이 바뀌어있었다. 이제 어딘가에 들어사 무언가를 해보자는 생각이 밀물처럼 주욱 들어왔다. 차 안에서 백팩을 들고 나와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마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했다. 새삼스럽지만 특별히 오늘 경험한 일이라 기록하기로 했다. 잊지말자. 마음이 누우면 몸을 세우자. 몸이 부서지면 마음을 다독다독 보듬자.
모든 의욕은 회사에 다 털어놓고 껍데기만 집으로 들어오는 아줌마의 일상은 늘 산만했다. 어제는 그 불만이 아이에게 향했던 날이었다. 잔소리가 이절 삼절이 나오고, 아이를 불안하게 했다. 제발 나나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