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맞지 않아도 새로움은 늘 좋아요.
볼 것이 많은 곳이라 했다. 유적도 많고 그만큼 관광지가 많다고 했다. 한 달 간의 여행도 지칠 때가 온 것일까. 이탈리아의 더위가 우릴 지치게 했던 것일까. 우리들이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아니 왜 유럽 사람들은 에어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더운데) 열심히 돌아다니겠다는 의욕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특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온 얼굴을 눌러앉는 듯한 이탈리아의 습한 더위는, 숨이 탁 막힌다는 게 제일 적합한 표현일까, 여하튼 나에게 ‘너는 이곳에 익숙해질 수 없어'라고 내가 여전히 타지임을 알리는 신호 같기도 했다. 일정 상으로는 이탈리아에 가장 오래 있는데 내가 다른 곳들에 비해 이곳에 좀처럼 정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일까.
그래도 갈만한 곳은 다 갔다. 더웠고 더웠다. 심지어 트레비 분수는 공사 중. 사진은 줄고 땀만 늘었다.
그렸던 모습과 얼마나 다르게 느껴졌길래 그러느냐 라고 묻는다면은 ‘로마의 휴일'의 제목이 로마임에도 그 영화가 대체 로마와 무슨 관련이 있길래 사람들이 자꾸 이야기하는지 스스로 물을 정도였다 해야 하나. 하루 이틀 지나고는 조금씩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지만 정말 그랬다. 더위가 잘못한 걸로.
저녁쯤 도착한 밀라노, 그간의 이탈리아 중 가장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시간대도 그렇고 1박 일정이었던 터라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만 두고 중심가로 서둘러 나갔다. 두오모 성당 이외에는 쇼핑만 해도 충분한 곳이라 해서 그간 지친 몸도 달랠겸 가볍게 둘러보자는 마음으로 향했다. 정말 패션의 도시답게 수많은 상점들이 이어져 있었고 세련된 디자인의 건물들과 골목들이 밀라노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야경이었다. 화려한 상점들이 문을 닫고 차도 잘 지나지 않으며 오래된 트램만이 간간이 지나는 도로. 화려한 도시의 조용한 밤을 느끼며 나란히 길을 걷는 사람들. 많은 나라들과 도시들을 돌아보면서 변함없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해가 지기 시작하는 그 시간의 모습이다. 설레는 시간이다. 바쁜 하루들이 끝이 나는 듯 하지만 모두의 감정들, 감성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시간인 것만 같다.
하지만, 중심지만 벗어나도 정돈되지 않은 거주단지가 나온다. 건물 내부의 사람 사는 곳들은 깔끔할지 몰라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전반적으로 깨끗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흡연자인 만큼 길거리에는 담배꽁초가 널려있고, 가장 놀랐던 것은 애완견의 배설물이 정말 인도 한복판에 그대로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자유롭고 정열적인 나라라 하지만 지금 같은 뜨거운 여름에는 악취까지 더해져 숙소와 중심가를 오갈 때는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밀라노는 중심가가 워낙 세련되고 고급 졌기에 같은 도시에서 보이는 두 가지 모습에 더 큰 괴리감을 느꼈다. 우리나라도 이런 모습이 분명 있을 테지만.
새로운 곳에 오면 평소에는 좀처럼 하지 않던 생각을 한다. 바삐 흘러가는 일상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그것이 긍정적인 생각이던 다소 비판적인 생각이던 차근차근 되짚어볼 수 있게 해주는 이 시간이 무척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