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행복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베네치아체의 열기가 너무 뜨거웠어서인지 피렌체의 더위는 (최소한 첫날만큼은) 견딜만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도착했는데, 숙소에서는 정말 세련되고 깔끔하신 멋쟁이 할아버지가 우릴 반겨주셨다. (아름다운 중년의 여자친구분도 있으셨다.) 짐을 놓아두고 기분 좋게 할아버지가 추천해주신 피제리아로 저녁을 먹기 위해 향했다. 동네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인 듯한 그 식당은 5유로에서 7유로 정도면 모든 종류의 피자를 즐길 수 있었고 우리는 1인 한판씩 이탈리아의 맛을 즐겼다. 파스타를 맛보지 못한 게 한이랄까. 그날 밤이었나 둘째날 밤이었나 친구들과 침대에 옹기종기 누워 무한도전을 봤을 땐, 모든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다 같이 깔깔.
문득 언젠가 한가한 평일 오후 엄마와 가만히 소파에 앉아 본 영화가 생각이 났다. 뉴욕이었나 런던에서 잘 나가던 한 여성 작가의 이야기였다. 한 번의 큰 성과, 그 후로 이어진 수많은 관심과 바쁜 일상들. 젊다기엔 조금 나이가 있지만 함께 미래를 약속한 남부럽지 않은 남자친구도 있고 보장된 미래, 그리고 뭇 여성들이 부러워할 완벽한 몸매와 얼굴을 가진 이 여자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자신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느낀다.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완벽히 갖춰져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모든 것을 위해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제 손에 있던 것들을 모두 놓아버리고 떠난다.
처음으로 떠난 곳은 인도였나. 그 사이 잠깐 만난, 인도 문화에 매료되어있던 남자친구의 영향으로 무작정 떠났을 거다 아마도. 이렇게 사소한 이유들로 정말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여느 영화들처럼 자신과 꼭 맞는 짝을 만나 진정으로 소중한 사랑을 하고 가치 있는 삶을 이어간다. 엔딩도 물론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가 이곳저곳 여행을 하면서 지금까지 잊고 지냈던 것들을 다시금 깨닫는 모습이었다. 바쁘고 화려한 일상에 묻혀 서서히 잊힐 수밖에 없었을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말이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도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 이탈리아 음식에 매료된 탓에 살이 부쩍 올라서 매번 더 큰 치수의 옷을 사면서도 얼굴에선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모습도, 거리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주저 없이 몸을 흔드는 모습도 참 좋았는데.
이탈리아. 맛있는 음식. 잘생긴 남성분들. 낭만적인 도시의 분위기. 이 모든 걸 기대하게 만드는 나라였지만, 마음에 드는 거라곤 저렴하지만 풍족하게 즐길 수 있는 이탈리안 음식. 그렇지만, 여태껏 가장 정신없었고 더웠기에 사랑하는 이탈리아 음식도 포기하게 만드는…
이전의 나라들이 온통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였어서 갑작스러운 이탈리아의 정열이 이질적으로 다가온 것일 수도. 베니스에서도 느낀 바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탈리아는 충분히 매력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단지, 여름의 치명적인 더위가 그 매력을 반감시켰던 것이라고 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