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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스블루 Jun 30. 2016

화장, 감추지 말아요.

(모든 사진은 서울에서 직접 촬영한 필름 사진입니다.)

화장과 나의 관계는 참으로 애틋하다.


작년 초, '나도 이제 대학생인데 화장을 해볼까?'라는 마음에 친한 친구로부터 도움을 받아 화장품을 잔뜩 샀었다. 대들어가서 첫 한 달 간은 그래도 열심히 화장을 하고 다녔던 것 같다. 그래 봤자, 서툴기만 한 기본 화장이었는데, 한 달을 제대로 넘겨보지 못하고 포기했다. 너랑 정말 잘 해보려고 했는데, 하지 않던 일을 갑자기 하기란, 쉽지 않다.


친구들도 처음에는 '아직 화장이 서툴러서 그래', '하다 보면 분명 익숙해져', '귀찮지? 그래도 내일은 꼭 해'라는 식으로 날 격려했었다.


'그래도 이제 대학생인데 어느 정도 꾸밀 줄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예쁘게 화장한 친구들은 연애도 하고... 나도 연애는 하고 싶은데.' '어디 내 모습 이대로 좋아해줄 남자 없어요?' 이런 생각들도 날 화장과 가까워지게 해주진 못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내 친구들은 더 이상 내게 격려도 하지 않는다. 지난 시간 동안, 눈썹 채우기(한번 눈썹을 채우고 난 뒤로는 원래 눈썹이 허전해 보인다.)와 한여름에 선크림을 바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화장을 멀리한 날 지켜본 결과다. "그래, 그냥 너 생긴대로 살아라"라는 마음인 게 분명하다. 그래, 나도 이젠 더 이상 화장 때문에 이래저래 마음 쓰고 싶지 않아.


내가 화장을 멀리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답답해서'다. 난 선크림도 잘 바르지 않는다. 얼굴에 뭔가 얹고 나면 피부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고 싶을 때 신경이 쓰여 만지지 못하는 것도 싫다. 눈 화장을 할 경우, 더 심각하다. 눈을 잘못 비볐다가는 (화장이 번지는 건 둘째 치고) 화장품이 눈에 들어가 한참 따갑다. 난 내 눈을 마음껏 비비고 싶다!


 


적고 보니 이유가 너무 싱거운가. 그냥 난 그렇다. 화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더 선명하고 더 화려하게, 어느 때부터 정해진 것들에 맞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의 몸 상태와 마음 상태에 상관없이 매일 똑같은 피부색, 입술색을 띤다는 것.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건조한 일상이지 않을까. 옆에 앉은 누군가와 같은 눈썹 모양 또는 눈꼬리를 갖고 있다는 것. 자신만의 아이덴티티, 개성을 외치는 요즘, 다소 모순적인 모습이 아닐까.


알고 있다. 화장 또한 개인의 자유다. 많은 사람들이 그 행위를 단순 '꾸미기'를 넘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화장을 달리 미워할 이유가 없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니까. 우리가 말을 하고 표정을 짓고 글을 쓰듯이,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구축하듯이, 화장 또한 그 일부로서 '나'라는 사람을 표현할 수 있게 하니까.


다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 방법이 과해질 경우다. 아, 너무 추상적인가. 화장이라는 행위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닌 나를 감추는 수단이 될 경우다.


화장이라는 행위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닌 나를 감추는 수단이 될 경우다.


얼굴은 얼을 담는 그릇이다. 자신의 영혼을 외적으로 비추는 첫 번째 통로다. 얼굴은 나의 내면을 가장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물론이고 나 자신에게도.


칙칙한 피부톤을 밝게 하기 위해, 얼굴의 트러블을 가리기 위해 얼굴에 무언가를 덧바르는 행위를 생각해보자. 이때 하는 화장은 내 얼굴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를 감추고 개선하기 위한 행위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이런 부분은 보이기 싫어서, 혹은 스스로가 그런 모습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자신의 현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나도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본 뒤, 모든 자신감을 상실해버리곤 하니까. 그리고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시키려는 자세는 훌륭한 자세다. 그렇지만, 나는 그 방법에 의문이 생겼다. 과연 그 부분을 가리는 것이 최선일까? 피부 상태가 나빠졌다면, 내 몸이 내게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몸이 혹은 내 마음이 지금 안 좋다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신경 써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실제로 피부과에 갔다가 별다른 처방 없이, "푹 주무시고 술 많이 드시지 마세요"라거나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나 봐요"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화장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화장을 한 동안에는 날 만족시켜줄 수 있지만, 때론 상태를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피부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는 화장으로 현재의 내 모습을 감추는 것을 시작으로 결국에는 자신을 외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화장에 대한 너무 과격한 해석인가? 나는 지금 화장하기 답답하고 귀찮다는 내 마음을 합리화하기 위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그래도 이 사실만은 확실히 해두고 싶다. 나는 색을 칠하고 무언가를 덧바르는 행위, 그보다는 내면을 가꾸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내가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안에 담긴 나라는 사람을 아름답게 가꿔나간다면 내 얼굴도 날 조금이라도 더 멋지게 비춰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색을 칠하고 무언가를 덧바르는 행위,
그보다는 내면을 가꾸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내가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베를린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귀찮다고 선크림도 바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장 좋아하는 사진들 중 하나다. 내 얼굴에서 그 순간의 감정,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피부의 결, 입술이 가진 색, 눈이 만든 모양. 오목조목 뜯어보며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 전날 밤에 먹은 라면 덕에 부은 눈두덩이, 목이 말랐던 건지 건조한 입술.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부드럽게 휘어진 눈매와 잔뜩 올라간 입꼬리가 보인다. 그렇게 난 1년 전 떠난 여행의 기억으로 빠져들었다. 그 순간들은 처음이라는 이유로 내게 수많은 감정을 선물했고 자유로운 움직임들로 가득 차게 했다. 그때의 사진에 담겨 민낯으로 미소 짓는 내 얼굴을 보자면 아무리 실력 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화장을 해줘도 난 이 모습이 가장 만족스러울 거라는 확신이 든다.


아름다움. 내가 만족스러운 나의 모습. 나 스스로가 진정으로 행복하다면 적어도 내게는 화장이 필요 없다.


 


 스스로가 진정으로 행복하다면 적어도 내게는 화장이 필요 없다.


오늘 2년 만에 한국에 온 사촌언니가 내게 화장품을 종류별로 선물했다. 깔끔한 디자인과 돋보이는 색 때문에 한번 사볼까 했었는데 비싼 가격에 포기했던 립스틱은 물론 기본 쉐도우 하나와 눈썹 그리는 것(아, 아이브로우 펜슬!)까지 세 가지나 사줬다. "기본적인 거라도 좀 해봐. 너 그래도 이제 곧 3학년이야." 애정이 듬뿍 담긴 말이었고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언니의 첫 선물이다.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온 언니가 사회인이 되어 번 돈으로 선물 한 첫 물건, 그것이 화장품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선물을 받고 잔뜩 신이 났던 내가 집에 돌아와서는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사랑하는 언니 덕에 눈썹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잘 어울리는 입술색을 얻었더니 위의 생각들이 살짝 흔들렸다. 그래서 난 '약간의 보정이 날 기분 좋게 한다면 뭐 그것도 내면을 가꾸는 방법 중 하나인 걸로.'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화장이든 뭐든, 그걸 하고 말고 가 그렇게 중요한가?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서 난 행복한가'이다.


그래서 난 행복한가?



[오랜만에 브런치라는 멋진 공간에 남기는 인사]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장 먼저 제 스스로에게 화를 좀 내려고 해요. 그깟 게으름을 못 이기고! 반성해라! 그래도 이제 몇 달 간은 전보다 열심히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마음입니다. 정말 아주 잠깐이라도 '아 모스블루라는 친구는 왜 요즘 글 안 올리지?'라는 생각을 해주셨다면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괜히 죄송하기도 합니다. 저라는 사람에게 그 찰나의 순간이라도 할애해 주셨다니 ㅎㅎ 때론 게을러지고 어떤 날은 조급해져도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에요. 정말 몇 달 만에 올리는 브런치라 괜히 말이 길어졌네요. 가장 하고 싶은 말은요.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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