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에서 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매일 기록을 한다고 말했다. 텍스트를 모으고 정리하며 즐거움을 느낀다고. 메모와 체크리스트는 누구나 하는 것일 테고 글감 정리하기, 13년째 정리중인 독서 목록,필독서 이외의 독후 감상문, 독서 후 디지털 필사까지는 살짝 흥미롭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OOTD(outfit of the day), 그러니까 그날의 복장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니 놀람 일색이다. 이렇게까지 파워 J형 인간은 처음 봤다면서 주변에 얘기해도 되냐, 정리한 목록을 사진 찍어도 되냐 하기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무섭다(?)는 반응도 있어서 괜히 얘기했나 싶었다.
이게 다는 아닌데. 소비 패널 활동을 하고 있어서 '가구 내에서 먹고 씻고 바르는 모든 제품'들을 바코드 스캔하거나 사진을 찍어 가격과프로모션 타입을 앱으로 보고한다. 괜찮은 냉장고 앱이 있을 때는 신선식품 현황과 유통기한을 정리하던 때도 있었다. 이런 기록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모임에서 더 말하지 못했고 대신 글로 떠든 적이 있다.
OOTD를 기록하는 건 스타일링에도 관심이 있어서다. 게다가 Smart Closet 앱이 아주 유용하다. 옷 사진을 찍어서 카테고리를 설정해 두면 계절별, 색상별, 종류별로 정렬이 가능하다. 등록된 데이터베이스로직접 코디를 해서 저장해 둘 수 있고 자동으로 조합해서 추천해 주는 기능도 있다. 이렇게 옷을 DB화하고 달력에 매일의 복장을 사진으로 저장해 두면 좋은 점이 많다.
첫 번째, 옷을 사기 전에 DB에서 같은 색상 옷이 몇 벌인지,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이미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개인이 단독으로 사용하는 물건 중에서 가장 양이 많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무게도 많이 나가는 품목이 바로 옷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대개 방 하나를 통으로 옷에게 내어주었을 것이다. DB를 활용하면 중복 구매를 하지 않을 수 있어서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이롭고 옷장의 쾌적함에도 기여한다.
두 번째, 선호하는 스타일을 파악하고 확장하기 쉽다. 자주 입는 옷을 기준으로 여러 조합을 통해 다양한 패션을 연출하는 것도 경제적인 일이다. 반대로 잘 손이 가지 않는 스타일은 다음번 구매에서 신중해질 수 있다. 나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찾는 일은 셀프브랜딩이나 정체성을 정립할 때도 도움이 된다. 단점보다 장점을 살리는 옷을 입은 날에는 어깨도 허리도 반듯해지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세 번째, 외출 준비를 하면서 고민하거나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입을 옷을 미리 정해 놓으면 수월하다. 조합이 어울리지 않아서 입었다 벗었다를 세 번쯤 반복하는 날엔 외출 시간은 다가오는데 땀은 삐질 나고 그날의 컨디션까지 엉망이 되기 쉽다. 계절이 바뀔 때쯤에도 입을 옷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분명 헐벗고 살지는 않았다. 그럴 때 지난 계절의 복장을 찾아보면 잊고 있었던 옷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이 또한 급발진하는 구매욕구에 브레이크가 된다.
마지막으로 없는 패션 센스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날그날 의식의 흐름대로 옷을 선택하다 보니 이상하게 같은 원피스를 같은 요일에만 입었던 걸 발견했다. 달력으로 복장을 확인하면서 지난번과 겹치는 옷이나 색상을 피하고, 가능하면 다른 실루엣의 옷을 선택하려고 한다. 부족한 감각을 보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도 할 수 있으니, 남들한테 권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좋다는 이야기다. 그 귀찮은 걸...너나 재밌고 너나 하라고 그러겠지만, 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