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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l 02. 2022

어머, 이건 꼭 기록해야 해

도구를 활용한 나 사용법


독서만큼 즐거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독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기록은 힘이 세다. 대학 때 읽고 다이어리 뒤편에 적어 놓은 하루키의 《중국행 슬로 보트》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 나오는 대목이 지금껏 생각나는 걸 보면. 10 전부터는 읽은 책을 엑셀에 기록하고 워드 파일에 감상문을 써왔다.


읽은 책을 엑셀에 정리하니 통계를 낼 수 있었고, 매년 확장되는 게 눈에 보였다. 다른 보상은 필요 없이 이 기록만으로도 기부여가 되었다. 호환이 번거로워서 몇 년 전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이사를 했다. 구글 시트는 모바일과 데스크톱에서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고 실시간으로 저장이 되며, 양식을 공유하기에도 편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


이때부터 밑줄 친 분분과 독후 감상에버노트를 거쳐 네이버 메모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구글 시트처럼 호환성이 좋고 속도가 빠른 장점이 있어서다. 현재까지 총 418개의 메모를 정리해 둔 상태다. 기능은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고 중요 메모를 표시하는 정도로만 이용하고 있으며, 음성 메모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검색 기능이 불편했다. 포스트잇 같은 섬네일이 나열되면서 일일이 들어가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올해 3월, 브런치에 입성하게 되면서 처음 접한 글이 생산성 도구 ‘노션’에 관한 글이었다. 노션은 구글 시트와 네이버 메모를 합치고도 남는 기능을 보유한 도구였다. 바로 설치와 가입하고, 노션 사용법 즐겨찾기 링크부터 만들었다. 노션은 하위 구조를 원하는 형태로, 무한으로 만들 수 있다. 검색도 구글시트보다 편리하다. 구글시트에서는 옵션을 선택해야만 전체 시트에서 검색이 가능하지만, 노션에서는 기본으로 통합 검색이 제공되고 상호 링크가 편하다.


노션 독서기록


제목 앞 문서 아이콘은 하위 페이지에 내용이 있다는 의미다. 제목, 글, 태그처럼 각 셀의 성격을 부여할 수도 있다. 노션은 편리하고 기능이 많은 만큼 진입 장벽이 있지만,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노션에 익숙해지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파헤쳤다. 현재까지 4963개의 단어가 입력된 상태이며, 용 소감은 대만족이라 모든 구글시트 정보와 네이버 메모를 옮겨야 하는 대장정을 앞두고 있다. 천천히 하려고 해도 성격상 미루기가 잘 되지 않는다.




기록을 위해 온라인 기능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연필과 플래그(견출지)는 필수 휴대품이다. 내 책에는 줄을 긋고, 빌린 책에는 플래그를 붙여 중요 부분을 표시한다. 옮겨 적고 나면 플래그를 떼는데, 뗀 플래그는 구겨지거나 먼지가 껴서 더 이상 붙지 않을 때까지 재활용한다. 보통 한 톤으로 붙이는데, 플래그가 많이 붙은 책은 총천연색이 된다. 여러 플래그를 써 봤지만, 디자인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톤 다운된 단색 플래그가 있었으면. (내가 만들어야 되나...)



인상 깊은 구절을 타이핑하는 일은 중요한 의식이다. 내용을 곱씹으면서 내 생각이 우러나오는 과정이 되고, 이렇게 적어둔 텍스트는 글쓰기의 소재이자 자산이 자양분이다. 사진을 찍은 뒤 텍스트를 추출할 수도 있지만, 직접 쓰지는 못할 망정 타이핑하는 과정을 건너뛸 수 없다. 타수가 저절로 빨라진 데다 집 키보드가 기계식이라서 집중해서 치다 보면 가족들이 화난 줄 알았다며 눈치를 봐야겠다는 농담을 건넨다. (이에 나는 화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항변했다. 이 작업을 할 땐 노트북이나 패드보다는 데스크탑이 편하고, 조용히 타이핑할 수 있는 키보드를 갖고 싶지만 미니멀리즘과 충돌한다...)


다 옮겨 적고도 하고 싶은 말이 손목 근처에서 어른거릴 때가 있다.  글을 손끝으로 뽑아내기까지는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책을 소화하기까지는 며칠에서 몇 달이 걸리기도 하니까. 책 반납 기한까지 플래그를 떼지 못한 부분을 곱씹다가 출퇴근길에서, 또는 손을 씻다가 문득 ‘그 책의 4분의 3 지점 왼쪽 상단에 그 부분을 다시 보고 싶다’ 싶으면 그때가 내 이야기가 쏟아지는 순간이다. 



그밖에 책을 읽고 독서통장에 저축을 해보기도 했고, 가계부도 적고, 소비 패턴을 조사하는 기관의 패널 활동도 8년째 지속하고 있다. 구매한 식품과 생활용품의 바코드를 찍어 가격과 구매처, 마케팅 방식을 기록하는 일이다. 조금 많이(?) 귀찮지만 이 활동은 도서상품권으로 돌아온다. 보유한 옷을 DB로 만들어두고 그날의 코디를 기록하는 앱도 매일 이용 중이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기록하는 인간이다. 이런 내 습관이 나를 피곤하게 해도, 어느 날 낭떠러지에서 똑 떨어질지라도 끝까지 몰아붙여 보자고 생각한다.




Cover photo  : pixabay.com 

Photo : @espec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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