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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n 27. 2022

글쓰기로 나를 재현하는 법


작가를 꿈꾸지 않더라도 글쓰기와 말하기는 자신을 재현하는 것, 인생의 전부다.

- 《정희진처럼 읽기》  중에서


매일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잘 쓰고 싶어서라거나 작가가 되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저 하고 싶은 말이 내 속에서 흘러넘치기 때문에 쓴다. 공감받는 것도 좋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탐험처럼 즐겁고 또 조금은 괴롭도 하다. 그것이 아마 정희진 작가가 말한 '자신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일 테다. 이것을 인생의 전부라고까지 한 이유는 나를 알고 이해하는 과정, 나아가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이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최재천 교수님 역시 한 강연에서 '거의 모든 일의 끝에 남는 것은 글쓰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욕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욕구와 욕망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를 전달하고, 소통하기를 원한다. 의사 전달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얻어내는 의도적 행위이며, 의사 소통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고받는 정서적 행위다. 내가 나를 아는 것과 타자에게 이해받는 것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광활한 우주 속에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혼자 남겨지기 싫은 것이다.



말에는 분명 힘이 있다. 어떤 연설은 시대를 바꾸기도 한다. 그런 선구자들이나 위인들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말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감탄이 나온다. 어떻게 저렇게 설득력 있고, 현명하고, 재치마저 있어서 사람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지. 그러나 그보다 더 나를 오래 붙드는 말은 진심이 묻어나온 말들이다. 서툴고 머뭇거리고 정제되지 못했어도 꾸며내지 않은 말들.


나의 말은 그 어느 쪽에도 닿지 못하기도 하고, 내향인이자 계획형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말하기보다는 듣기와 쓰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욕구라는 것이 그렇듯 대화를 하다 보면 말하기 욕구 참아내기 힘들다. 욕구를 즉흥적으로 해소를 하려다 보니 그만큼 실수하기 쉬운 것이 말하기다. 그 실수가 나만 우스워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에 조심스럽다. 말로 입힌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 간다.



말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갔다. 내가 하는 말이 오늘 나의 기분이었으므로, 나 또한 내 말을 들으며 마음을 더듬어보아야 했다. 말과 말 사이의 간격, 그 사이의 묵음, 침묵의 의미들. 뱉어진 말과 그 말을 대체할 수 있었던 말, 그 말의 진정한 속뜻. 말과 말 사이의 순서, 뉘앙스, 맥락 그리고 역학관계. 한 조각 혹은 맺음, 또는 모든 것을 전복하는 말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 양다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중에서


양다솔 작가가 말한 대로다. 사소한 개그 욕심이나, 재치를 드러내고 싶다거나, 순간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으로 말이 나를 앞서갈까봐 나는 두렵다. 전하는 게 아니라 뱉어낸 것이 될까봐 우려스럽다. 그래서 일상 대화에서도 말하기 욕구를 가능한 자제하며 듣는 쪽을 택한다. 말하지 못한 아쉬움은 읽기와 쓰기로 달랜다. 입력된 생각들을 고르고 단단히 뭉치고 순서를 정해서 글로 해소하는 쪽이 난 아무래도 좋다.




말이든 글이든, 이들 행위는 언어와 기호라는 수단을 통해 전달되므로 해석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의사와 정서와 숨어있는 의도까지 포함되어 전달되기에 이 모든 것이 온전히 전달되기란 쉽지 않다. 말하기에는 소리나 기호 언어뿐 아니라 몸짓 언어도 포함되지만 글쓰기는 오로지 글로써만 의사와 정서를 전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구체적이고 은유적 수밖에 없다. 글로 정서를 전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까, 감정이 먹먹해지는 글을 볼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파도를 친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말이 전하기에 실패한 것을 글이, 아주 길고 섬세하게 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


리베카 솔닛의 '공유되는 고독'이라는 표현이 좋다. 나름대로 정의해 보자면 글쓰기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엉켜 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길어올려 조용히 풀어내는 체내수공업이다. 나의 말을 정녕 원하는 사람에게만 몰래 전하는 비밀스런 고백이다. 듣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만 조용히 속삭이는 우리만의 대화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 누군가의 깊은 말을 글로 읽고, 나의 수많은 이야기를 글로 말하기를 좋아한다.




인용한 글 :

《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글, 교양인 펴냄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양다솔 글, 놀 펴냄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글, 김현우 옮김, 반비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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