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호 Jun 15. 2024

그걸 왜 당신이 결정하세요?


좋은 직업이라고요? 공부가 노력의 척도라니요?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 보셨나요? 여론을 단번에 반전시킨 그 회견이요. 저는 두 시간 내내 정주행했어요. 심지어 제 친구는 치킨 시켰대요. 물론 법은 법대로 진행할 일이지만, 하이브는 그동안 각종 여론 플레이로 민 대표에게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워 왔습니다. 주술 경영이나 700억 부자설 등으로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여론 분야에선 민 대표가 하이브의 "기쒄~을 제압"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기자회견이 있고 다음날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예상치도 못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기사가 아닌 원문을 첨부했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누가 쓴 글일까요? 바로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물론 의대 증원을 반대하기 위해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습니다. 심지어 의사협회의 전 회장이니(물론 의사들도 의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만), 언어들이 조금 과격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 등 보조 장치 없이 의사 수만 무작정 늘리려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도 동의하지 않고요.


그런데 문제는 노 전 회장의 의식입니다. 그는 "남보다 많은 노력을 했을 때, 사람들의 존경 또는 존중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좋은 대우를 받는 소위 '좋은 직업'이라는 것이 존재해야 그런 직업인이 되기 위해 사람들이 노력하는 세상이 유지된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사회 전체를 위한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좋은 직업, 이라는 대목에서 숨이 턱 하고 막혔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존중을 받아야만 좋은 직업일까요? 그건 그냥 '돈 많이 벌고 존경 받는 직업'일 뿐입니다. 좋고 나쁘고 하는 가치판단은, 그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에 달려 있습니다. 일개 의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죠. 그저 '돈'만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공부'에 대한 노 전 회장의 생각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인생의 황금기를 공부하느라 바치고, 황금기만 바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평생을 공부해야 하고, 거기에 가족과 놀아줄 시간까지 바쳐가며 희생하는 의사들이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 비교된다"고 썼습니다.


의사들이 어떤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지 무슨 괴롭힘을 당하는지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그건 차치하고, 저는 공부에 대한 노 전 회장의 생각을 읽고선 섬뜩했습니다. 공부가 곧 노력의 척도고, 이게 '좋은 직업'으로 이어진다는 그의 논리 구조요. 하지만 저는 공부가 노력을 판단하는 지표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선, 아직 '공부할 자격'이 결코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고 있으니까요.


학생들을 365일 학교에 가두고 먹고 재워주지 않는 이상, 환경이 다 다른 탓입니다. 가정 불화나 열악한 공부 환경, 빈곤 등을 겪는 학생이 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까요? 특히 주변 환경이 무엇보다 개인에게 크게 영향을 주는 청소년 시기에요. 알바로 돈 벌다가 다치지나 않으면 다행일 겁니다. 안온한 환경에서 공부에만 신경쓸 수 있는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나라 의대 재학생 중 고소득층 및 수도권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다른 학과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2020년 기준 전체 의대생의 81%는 소득 상위 20% 고소득층 출신이라고 합니다. 지난해엔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의대생 중 74.4%가 소득 9·10분위에 속한다고 해요. 9·10분위의 소득인정액은 월 1080만 원을 넘기고요. 8분위가 소득 상위 20~30%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점점 더 '공부할 자격'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부모의 소득 격차가 교육 기회의 격차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이어지는 세상입니다. 이런 와중에 공부가 곧 노력이고, 그게 '좋은 직업'으로 이어진다는 노 전 회장의 발언은 적절했을까요? 직업엔 좋고 나쁘고가 있을까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벌거벗은 윤금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