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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호 Jun 12. 2023

'노가다'에서 배우는 소통의 가치

소통 않는 대한민국, 100년 뒤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2123년 초등 한국사] 대한민국 현대사: 대한민국 몰락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2020년대 대한민국은 '갈등과 분열의 사회'였다.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경쟁이 격화하면서 삶이 팍팍해진 한국인들은 서로를 적대시했다. 경쟁관계가 혐오관계로 바뀐 것이다. 이들은 성별, 이념, 계층, 지역, 세대, 학벌 등 잣대를 들이대며 서로를 평가하고 비교했다. 하나의 기준에서 '기준 미달'로 낙인찍힌 사람들은, 자신이 우월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찾아내 또 특정 집단을 '기준 미달'로 낙인찍었다. 이합집산과 악순환은 계속 반복됐다. 한국인들은 소통하지 않았다.


당시 빠르게 고도화하던 디지털 혁명은 이 상황을 더욱 가속화했다. 챗지피티를 시작으로 각종 AI가 본격적으로 실생활에 보급되면서 삶의 질이 높아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우리나라는 달랐다. 사람들은 고도로 발달한 알고리즘 속에서 각자의 세계에 갇혔다. 확증편향은 건강한 토론장을 파괴했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을 중재하고 통합을 이끌어 내야 할 정치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되레 혐오에 편승해 '쉽게 쉽게' 정치를 하거나, 양극단에 치우쳤다. 국회에서는 여야 협치가 사라졌고, 야당이 발의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하는 악순환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국인들은 소통하지 않았다.


소통 부재의 결과는 출생률 급락으로 나타났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전 세계 최저 수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취업난으로 청년 세대의 자살률도 급증했다. 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건 비단 청년 세대뿐만이 아니었다. 경제난에 시달리던 노인들이나 사회 취약 계층 등 사각지대 사람들의 자살 또한 크게 늘었다. 민생을 살펴야 할 정치권은 맡은 일을 하지 않았다. 필요한 법이 제때 제정되지 않은 탓에 고스란히 국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대한민국의 인구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소멸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소통하지 않았다. 위기의식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00년 뒤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한심한 분열의 시대'로 생각할 것이다.


갈등과 혐오의 시대에 송주홍의 <노가다 칸타빌레>를 꺼내 읽었다. 이 책은 '막일'이라고 번역되는, 이른바 '노가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가 일하고 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노가다꾼으로 전향하면서 느꼈던 생생한 감정들이 담겨 있다. 가끔은 슬프고, 솔직하고, 또 기쁜 순간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면서 나는 책 속에서 우리 사회가 꼭 배워야 할 가치를 발견했다. 소통이다.


노가다는 거짓과 꾸밈없이 정직하다. 몸을 써서 움직이고 무거운 것을 옮겨야 한다. 그게 확인돼야 일당을 받을 수 있으니, 무엇보다 단순하고 명확하다. 사람들은 땀 뻘뻘 흘리며 일을 하고, 밥을 먹으며, 쉬는 시간에는 함께 낮잠도 자고, 가끔은 다투는, 그런 인간적인 세계다. 싸울 때가 있더라도 함께 소통하고 또 일하며 살아가는 세계. 노가다는 정확히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노가다 노동자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함께 얘기한다. 진솔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서운한 게 있으면 술 한잔 마시며 마음을 푼다. 소통은 갈등을 봉합하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그래서 소통은 중요하다.


도시빈민운동가이자 정치인 고 제정구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삶은 서로에게 짐이 되면서 사는 삶이다. 가난한 자와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가. 가난한 자라면 구름 낀 볕뉘마저 쬐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선하고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으로 그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또한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삶과 생명을 같이 나누면서 섞여 사는 것을 뜻한다. 같이 의논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면서 사는 삶이다. 서로서로가 착한 이웃인 동시에 귀찮은 이웃이 되는 것이며 서로의 삶에 짐으로 사는 삶이다."


우리 사이에 버티고 있는 단단한 울타리를 하나씩 없애 보자. 진솔하게 털어 놓으면서 서로에게 짐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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